남양유업, 대리점 대상 물품 강매 도화선
유니클로 “불매 오래 못간다” 발언이 ‘기름’
쿠팡, 노동문제·안전불감·갑질 복합 작용
절반 이상 “주변인에 구매 중단 직접 권유”
배달 앱 확산으로 블랙컨슈머 확산 문제
혜택 강요에 사소한 이유로 ‘별점 테러’
“쿠팡을 거부합니다.”
직장인 박모(32)씨는 얼마 전 온라인 쇼핑 서비스 ‘쿠팡’과 배달 서비스 ‘쿠팡이츠’를 모두 탈퇴했다. 꽤 오랫동안 매달 2900원을 내는 유료 회원이었던 그에게는 큰 결심이었다. 서비스 자체에 불만은 없었다. 오히려 평소 무엇이든 주문하면 하루 안에 가져다주는 ‘로켓배송’의 편리함에 감탄하던 그였다. 하지만 얼마 전 한 음식점 점주가 고객과 쿠팡이츠로부터 무리한 환불 요구 등을 받다가 뇌출혈로 쓰러져 숨진 ‘새우튀김 환불 갑질’ 사건을 보고 마음이 바뀌었다. 자영업자를 대하는 쿠팡 측의 자세를 보며 ‘이건 아니다’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박씨는 “쿠팡을 계속 이용하는 것은 회사 측 입장에 동조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며 “피해 사장님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어 불매운동에 동참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기업을 혼내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과거에는 업체가 제공하는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불만 때문에 특정 기업을 선택하지 않는 이들이 많았다면, 최근에는 불매운동을 통해 자신의 신념을 드러내는 이들이 많다. 노동 환경이나 영세 자영업자 보호 소홀 등 기업의 ‘윤리적’ 문제에 분노하고 제품을 보이콧하는 ‘가치 소비’ 움직임이 확산하는 것이다.
쿠팡 불매운동의 경우 지난 17일 경기도 이천의 쿠팡 덕평물류센터 화재가 촉발시켰다. 사고 수습 과정에서 최고 책임자가 직책에서 물러나는 등 책임 있는 자세를 보이지 않는 쿠팡의 대처가 도마 위에 오른 것이다. 여기에 쿠팡의 열악한 노동문제가 거론되면서 ‘쿠팡을 이용하지 않겠다’는 불매운동이 번졌다. 최근 새우튀김 환불 갑질 사건까지 발생하면서 불매운동은 빠르게 퍼지는 추세다.
28일 빅데이터 분석 플랫폼 ‘썸트렌드’에 따르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위터와 블로그, 온라인 뉴스 내 ‘쿠팡불매’ 언급량은 화재 사고 다음 날인 18일 144건에서 19일 1114건까지 급증했고, 그다음 날 300건대로 줄었다가 새우튀김 환불 사건 보도 이후인 22일 1204건까지 늘었다. ‘쿠팡 탈퇴’ 언급량도 18일 26건에서 19일 4155건으로 급격히 치솟았고, 이후 20일 3248건, 21일 1286건, 22일 712건을 기록했다. 쿠팡을 탈퇴한 이들은 ‘쿠팡 탈퇴’ 화면을 자신의 SNS에 인증하고 있다. 많은 이들은 탈퇴 사유에 ‘열악한 노동 환경을 개선하라’고 적었다. 노동자를 제대로 대우하지 않는 기업은 이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소비자 80% “특정 기업 제품 구매중단 경험”
이처럼 소비를 통해 자신의 신념과 가치를 드러내는 움직임은 최근 활발히 이어지고 있다. 특히 상대적으로 구매력이 높은 30·40대 소비자는 10명 중 8명 가까이가 제품 구매를 중단하는 식으로 불매운동에 참여한 적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0월 대한가정학회 학술지에 발표된 논문 ‘소비자불매운동에 대한 소비자와 기업 근로자 간의 인식 차이 및 불매운동 참여 영향요인 분석’에 따르면 최근 3년 내 국내 사기업 근무 경험이 없고 현재 회사를 경영하거나 대기업 프랜차이즈 가맹점을 운영하지 않는 30·40대 소비자 205명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78.0%(160명)가 특정 기업 제품 구매를 중단한 적 있었다.
다른 불매운동 행태로 주변인에게 구매중단을 직접 독려한 적 있다는 응답률도 절반 이상인 50.2%(103명)로 조사됐다. 대체 가능한 제품을 추천하는 식으로 불매운동 동참을 설득한 경험이 있는 경우도 절반에 가까운 49.3%(101명)나 됐다. 다만 온라인에 의견을 표명하는 식으로 불매운동에 참여한 적 있다는 답변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연구진은 “자신의 소비생활 내에서 즉각 실천할 수 있는 개인적 불매와 불매 권유 행동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소비자 피해’보다 ‘비윤리 경영’이 더 심각한 문제”
이들은 기업이 제공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로 인한 소비자 피해보다 기업의 비윤리 경영을 근소한 차지만 더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고 있었다. 기업의 문제행동에 대한 심각성 수준을 점수로 평가하도록 한 결과 ‘소비자 피해’와 ‘비윤리 경영’이 모두 5점 만점에 각각 평균 4.02점과 4.03점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연구진은 “최근 기업의 제품과 서비스 품질뿐만 아니라 기업의 경영활동 전반에 대해 소비자의 기대 수준이 높아진 결과”라고 분석했다. 실제 2019년 확산했던 일본 의류업체 유니클로 불매운동은 제품 문제가 아닌 당시 일본 수출규제에 대한 반발로 촉발된 경우였다.
2013년 대리점 상품 강매 사건이 도화선이 돼 오랜 기간 진행된 남양유업 불매운동은 비윤리 경영에 대한 소비자 반발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최근에는 남양유업이 자사 제품인 불가리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바이러스를 저감하는 효과를 확인했다고 발표해 논란을 빚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쿠팡의 경우 노동문제, 안전불감증 문제, 자영업자에 대한 갑질 등이 불매운동의 원인이 됐다”며 ”불매운동 이슈가 단순 제품의 결함, 서비스의 결함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기업 경영 전반에 걸쳐 문제가 포착하면 불매로 연결하는 식으로 소비자들이 활동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과로사나 갑질 등의 문제를 본 소비자들이 ‘이런 문제들이 당연시되면 결국 나한테까지 영향이 오고 내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 피해자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잘못된 기업 관행을 없애려 행동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블랙컨슈머 문제도 잇따라
다만 불매운동이 기업의 전횡을 견제하는 역할을 할 수 있는 건 정확한 정보에 근거했을 때만이다. 명확하게 사실 확인이 되지 않는 사안을 빌미로 시작된 불매운동은 그저 ‘마녀사냥’에 그칠 뿐이다. 과거 한 프랜차이즈 음식점에서 임산부인 고객이 점원에게 발로 배를 걷어차였다는 게시글이 온라인에 올라와 해당 업체에 대한 불매운동이 확산했으나 경찰 수사결과 발로 배를 찬 건 점원이 아니라 임산부 고객이었다는 사실이 확인된 바 있다.
최근 음식 배달 애플리케이션(앱) 리뷰·별점 제도가 확산하면서 블랙컨슈머(악의적 소비자)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도 문제다. 리뷰·별점을 안 좋게 남기겠다며 서비스 음식 등 무리한 혜택을 강요하거나 “비닐 뜯는 칼이 안 들어 있었다”는 등 사소한 이유로 ‘별점 테러’를 가하는 일도 잇따르고 있다. 이런 악의적 평가는 특히 영세 자영업자에게 심대한 피해를 입힐 수밖에 없다. 김민정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 교수는 “거짓 정보가 많은 환경이라 가짜뉴스 때문에 본의 아닌 피해를 줄 수도 있다”며 ”한쪽으로 편향되지 않도록 다양한 방식으로 정보를 접하고, 섣부르게 판단하기보다 신중히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승환·유지혜 기자 hw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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