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건설업계 6위 규모인 대우건설의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중흥건설이 선정되면서 앞으로의 인수 진행 과정에 관심이 쏠린다.
당장 주택건설 분야에 특화된 중흥건설이 토목·플랜트·해외 등 사업 영역이 훨씬 넓은 대우건설을 품는 것을 두고 "새우가 고래를 삼킨 격"이라며 우려 섞인 반응도 나온다.
중흥건설이 강력한 인수 의지를 보이며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꿰찼지만, 불과 3년 전 호반건설이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9일 만에 인수 포기를 선언한 전례가 있어 매각이 순조롭게 완료될지는 남은 절차를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번 대우건설 매각은 다소 급작스럽게 진행됐고, 매각 진행 과정도 매끄럽지 못한 편이다.
우선 대우건설의 최대주주인 KDB인베스트먼트(KDBI)가 이번 매각을 진행하면서 지난달 25일 본입찰을 마감한 뒤 이달 2일 다시 재입찰을 진행한 것을 두고 잡음이 일었다.
본입찰에서 중흥건설 측이 2조3천억원을, 경쟁자인 스카이레이크 컨소시엄이 1조8천억원을 각각 써내 인수가격 격차가 5천억원에 달하자 중흥건설이 인수 조건 조정을 요청했고, KDBI가 이를 수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KDBI는 스카이레이크 측에도 수정 조건을 제시하라고 통보했으나 결국 결과는 바뀌지 않고, 중흥건설은 당초 제시한 2조3천억원보다 낮은 가격에 재입찰의 승자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한 관계자는 "인수·합병 과정에서 제시된 인수가격이 너무 낮아 재입찰을 하는 경우는 봤어도 인수가격이 높아 재입찰을 하는 경우는 처음 봤다"며 "대우건설이 작은 규모의 회사도 아니고 이례적인 케이스"라고 말했다.
재계의 다른 관계자는 "KDBI가 3년 전 인수 포기 사태를 우려해 인수가격을 조정한 것으로 보이지만, 결과적으로 받을 수 있는 돈을 덜 받게 된 셈이어서 배임 논란이 일어날 소지가 있는 것 같다"고 전망했다.
이런 지적에 대해 이대현 KDBI 대표는 5일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제안자 중 한쪽에서 수정 요청을 해왔다. 다음날 다른 제안자한테 이를 알리고, 다른 제안자도 원할 경우 수정을 하도록 말했다"며 "재입찰을 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이 대표는 수정을 요구하는 것은 매수자의 권리이고, 수용 여부는 매도자의 권리임을 이내 안내했다며 "이는 매도자와 매수자가 합의하느냐의 문제"라고 덧붙였다.
중흥건설은 공식 입장을 내지는 않았지만, 내부에서는 강한 의지를 갖고 추진했던 대우건설 인수에 바짝 다가선 것에 만족하며 인수에 필요한 절차를 준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중흥건설은 호남에서 성장한 건설사로, 그룹 내 시공능력평가 15위인 중흥토건과 35위 중흥건설 등 30여개 주택·건설·토목업체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세종 등 신도시와 택지개발지구에서 주택 사업을 확대해 주택건설 경기 호황기에 급성장하며 사세를 확장했다. 2015년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됐고, 2019년에는 신문사 헤럴드와 그 자회사를 인수하며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중흥건설의 지난해 매출액은 1조4천730억원 규모이며 중흥그룹의 자산총액은 9조2천70억원에 달한다.
중흥건설은 그동안 주택사업에 특화돼 있던 사업 영역을 대우건설의 도움으로 토목·플랜트 등으로 확대하거나 해외사업에 진출하는 등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대우건설은 공식적인 입장은 없었지만, 직원들은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모습이다.
대우건설의 한 간부급 직원은 "우리는 이미 금호그룹과 호반건설 등으로 매각, 매각 실패 등 과정을 겪어본 터라 생각보다 차분한 분위기"라며 "앞으로 안정적이면서 공격적인 사업 운영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감도 있다"고 말했다.
다른 직원은 "투자회사에 넘어가는 것 보다 중견 건설사지만 건실한 회사가 인수하게 돼 다행이다. 마지막 본계약까지 잘 마무리돼 어수선했던 회사 분위기도 바로 잡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우건설 노조는 이번 매각 절차가 졸속·비상식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노조 관계자는 "KDBI 측이 회사를 비상식적인 방법으로 졸속 매각하고 있다. 입찰가격을 수정했는데 재입찰이 아니라는 건, 술을 마시고 운전했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라는 말과 뭐가 다르냐"며 "노조 등 당사자의 의견이 반영되는 방식으로 매각이 진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흥건설이 대우건설을 인수하는 것을 두고 건설업계에서는 "예상은 했지만, 놀랍다"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건설만 놓고 볼 때 중흥은 오로지 아파트 사업만 수행해온 주택전문회사라는 점에서 시공능력평가 6위의 대형 건설사를 인수한 것이 능력이 닿는 일인지 우려하면서 앞으로 매각 과정을 더 지켜봐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대우건설은 1973년 설립 이후 국내·해외에서 활발한 수주 활동으로 정상급 건설사로 사세를 확장했으나 'IMF 사태'로 1999년 대우그룹이 해체되면서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갔다.
이후 자산관리공사가 보유하던 지분을 2006년 금호그룹에 6조6천억원에 매각하면서 재도약을 노렸으나 금호그룹이 세계금융위기 여파로 위기를 겪으면서 2010년 산업은행에 지분을 다시 넘겨 현재까지 산은 관리 체제에 있다.
2018년에는 호반건설이 인수 문턱에서 인수 포기를 선언했다. 실사 과정에서 3천억원 규모의 해외 부실이 돌출하면서 부담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대우건설 해외 사업장의 부실이 나올 경우 중흥건설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대형 건설사 한 관계자는 "대우건설이 10년 넘게 주인 없는 회사로 있으면서 해외사업 분야에서 저가 수주 등으로 부실이 발생한 사업장이 얼마나 될지 알 수 없다"며 "3년 전 호반도 1개 해외사업장에서 발생한 3천억원의 부실보다도 건전성을 담보할 수 없는 다른 해외사업장의 리스크까지 감당하기가 어렵다고 판단해 인수를 접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대우건설과의 시너지를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도 많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대우건설 입장에서 자신들보다 작은 업체에 인수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기본적으로 있다. 그동안 해오던 해외사업 등에 경험이 없는 중흥이 관여하기도 어렵고, 주택에서도 '푸르지오'라는 강력한 브랜드를 가진 대우가 'S-클래스'로 알려진 중흥보다 우월하다고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건설사 한 관계자는 "중흥이 인수 이후에 어떤 식으로건 비대해진 대우건설의 조직과 인력을 구조조정을 할 필요가 있을 텐데, 이 과정에서 대우건설 노조와 내부의 반발을 넘어서기가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며 "중흥이 인수 과정을 매끄럽게 정리하고 이런 숙제까지 해낸다면 국내 최상위권 건설사로 비상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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