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삭한 갈치튀김 무한리필
편육까지 세트
모슬포항 ‘미영이네 식당’
고등어회 윤기 자르르~
마른 김에 싸먹으면 고소
공항 근처 ‘태광식당’
한치 주물럭 그릴에 지글지글
맛 향긋하면서도 쫀득
서귀포 ‘대도식당’ 김치복국
빨간 육수 위에 뽀얀 ‘애’
시원한 국물 “끝내줘요”
# 국내산 갈치를 무한정 즐기다
‘갈치로 사치합서’. 들어가는 순간부터 기분이 좋아지는 팻말이다. 그 비싼 갈치로 사치를 하라니. 제주에 오면 갈치에 대한 기대는 꽤나 크지만 관광지 물가의 상당한 가격 압박에 국수, 국밥 등 가성비 노선을 고려했던 경험이 왕왕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공항 근처 ‘동귀리 갈칫집’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 국내산 갈치를 가격 걱정 없이, 무한정으로 신나게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곳 갈치는 튀김으로 제공된다. 한뼘이 조금 안 되는 길이의 갈치를 프라이드 치킨처럼 염지해 감칠맛을 입혔다. 게임 ‘테트리스’처럼 야무지게 블록을 쌓아 나오는 갈치 중에서 가장 큰놈을 양손으로 갈비처럼 잡고 뜯고, 맛보고, 즐긴다. 게다가 밥은 쌀 맛 좋기로 유명한 골드퀸 3호, 수향미로 짓는다. 구수한 향기 진하게 풍기는 새하얀 수향미 솥밥에 갈치 살을 수저로 박박 긁어 고봉을 만들어 올려 먹어 보자. 저절로 엄지가 척, 남부러울 것 하나 없는 천국 같은 순간이다.
뿐만 아니라 게우(전복 내장) 미역국, 제주돼지로 만든 제육볶음과 돈가스, 돔베(도마)편육까지 세트로 꾸려 나온다.
# 갓 잡은 고등어회의 고소한 맛
제주도 서남부 지역의 대표적인 항구이자 최남단 어업기지인 모슬포항 앞바다부터 마라도 남쪽 바다 사이에는 방어, 옥돔, 자리돔 등 다양한 어종이 서식한다. 특히 고등어와 방어가 많이 잡혀 항구를 따라 고등어회, 방어회 전문점들이 자리하고 있다.
사람들이 막연하게 “제주도에 가서 무얼 먹어야 하느냐”고 물을 때마다 나도 막연하게 가장 먼저 이름을 올리는 집, 바로 모슬포항의 ‘미영이네 식당’이다. 얼마나 많이 추천을 했는지 미영이와 응당 아는 사이인 것 같다. 미영이네 식당의 고등어회는 가지런한 칼질이 특히 눈에 띈다. 보기도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윤기가 좔좔 흐르는 고소한 기름 풍미 가득한 고등어의 푸른 등결이 자로 잰 듯 착착 줄지어 서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젓가락이 따라간다. 잘 구운 마른 김에 고등어 한 점, 사각사각 상큼한 야채무침, 쫀득한 조밥과 갈치속젓을 넣어 쌈을 싸 먹는다. 이 재료들 중 하나도 빼놓지 않고, 한번에 다 모여야 ‘어벤저스’가 된다. 특히 새콤달콤 특제 야채무침이 킬링포인트인데, 다른 재료들과 함께 오만가지 복합적인 맛을 선사하는 중추 역할을 한다.
회를 다 먹으면 마성의 고등어탕이 등장한다. 들깨탕처럼 희뿌연 국물은 국물 베이스가 무엇인지 첫인상에 거리감이 느껴진다.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한 수저를 삼키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칼칼하면서 고소하고 향긋하다. 가미된 후추는 감칠맛을 선사하고 양껏 넣은 청양고추와 배추는 시원함이 뭔지 제대로 가르쳐준다.
# 한치의 계절, 한치 주물럭은 반드시 맛보기
여름은 한치가 가장 맛있는 계절이다. 공항 근처의 ‘태광식당’은 한치에 양념을 한 ‘한치 주물럭’이 유명하다.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방문객을 맞이하는 것은 펄펄 끓는 큰 양은솥. 손님이 오면 바로 콩나물국에 갓 썬 파를 송송 뿌려 내는데 여기부터 감이 온다. 뭔가 아는 식당이다.
주문 즉시 주방에서 빨갛게 양념한 한치 주물럭을 그릴판에 직접 구워먹는 방식이다. 뜨겁게 달궈진 판에 주물럭을 붓고 푸릇한 미나리와 팽이버섯, 대파를 올린다. 바글바글 끓기 시작하면 2차로 양념과 야채를 한번 더 붓고 기가 막힌 타이밍에 불을 꺼준다.
잘 익힌 한치는 싱그럽고 또 싱그럽다. 갓 데쳐 숨이 많이 죽지 않은 미나리에 팽이버섯과 한치를 삼합으로 싸먹으면 향긋함과 사각거림, 쫀득함이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무엇보다 황금비율의 양념은 빨갛지만 너무 맵지 않으면서 적당히 알싸한 맛이 중독적이다.
# 안 마신 술도 해장되는 기분, 김치복국
김치복국이 유명한 서귀포의 ‘대도식당’은 이른 아침부터 해장 겸 아침식사를 하려는 사람들이 북적인다. 인원수대로 김치복국을 주문하면 아주 큰 냄비에 빨간 김치 국물육수와 풍성한 미나리, 맨 위에는 뽀얀 애(이리)가 가지런히 자리하고 나온다. 여리고 고운 애가 흐트러질새라, 조심스레 불에 올리며 바글바글 끓으면 시원한 냄새도 함께 끓어오른다.
김치복국의 국물은 그야말로 마시지도 않은 술이 해장되는 기분이다. 수저를 멈출 틈이 없다. 한입 후후 불어 떠 먹으면 수저가 입에서 떨어지기 무섭게 바로 냄비로 향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앞에 두면 ‘보고 있어도 보고 싶다’는 기분이 든다는데 바로 이런 것일까. 이 맛난 김치복국은 ‘먹고 있어도 끊임없이 먹고 싶다’.
복에 대체 무슨 짓을 한 건지, 탕을 아무리 뒤적여봐도 김치와 미나리, 복 외엔 딱히 뭐가 없는 것 같은데 기가 막히게 시원하다. 그 비결은 아마도 좋은 재료에 있는 것 같다. 원산지 표지판에 복은 동해, 쌀은 해남, 고춧가루는 전주로 적혀있다. 제주에서 맛보는 동해의 맛이지만, 동해에는 이 김치복국이 없다. 제주에 갈 때마다 필히 생각나는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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