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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네오섬의 열대우림이 파괴되자 그곳에 사는 페난족이 통나무를 실은 트럭의 길목을 막았다. 그들은 영업 방해 죄목으로 법정에 섰으나 ‘범죄’의 뜻조차 이해하지 못했다. 페난족에게는 범죄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던 까닭이다. 판사가 “그럼, 당신네 마을에서 비난받을 만한 행동으로 어떤 게 있느냐”고 했더니 그들이 한목소리로 말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가 가진 것을 남들과 나누지 않으면 그는 비난을 받을 것입니다.” 그것이 페난족이 생각하는 유일한 범죄였다.

미국 남부의 호박대회에서 매년 우승하는 농부가 있었다. 그는 시상식이 끝나면 항상 좋은 호박씨를 이웃들에게 나눠 주었다. 어떤 이가 “씨앗을 나눠 주면 다른 농부들이 당신보다 더 좋은 호박을 생산할 수도 있지 않느냐”고 물었다. 농부가 대답했다. “제가 좋은 씨를 심더라도 꿀벌이 이웃 농장의 호박 꽃가루를 제 밭으로 옮겨오면 제 호박의 품질도 나빠집니다. 좋은 씨앗을 나눠 주면 그런 염려를 할 필요가 없지요. 제가 품종 개량에만 집중할 수 있으니 더 좋은 호박을 생산할 수 있지 않겠어요?” 나눔이 결국 자기에게도 이익이 된다는 얘기였다.

나눔은 진화의 원리에 부합한다. 진화적 관점에서 가장 성공한 식물은 밀이다. 지구상에 가장 넓은 영토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1만여년 전 밀은 중동 일부에만 자라는 잡초에 불과했다. 밀은 맛있는 열매로 인간을 유혹했다. 인간은 곡식을 얻기 위해 안락한 보금자리를 제공하고 거름을 줬다. 풀을 뽑고 해충도 잡았다. 땡볕에서 온종일 밀을 돌보았다. 인간이 밀을 길들인 게 아니라 밀이 인간을 길들이는 주객전도가 일어난 셈이다. 나누는 자만이 주인의 자리를 꿰찰 수 있다. 나눔과 베풂의 힘이다.

코로나19 여파로 애호박 수요가 줄면서 호박 값이 개당 60원으로 폭락하는 사태가 빚어졌다. 강원도 화천 재배농가에선 애호박 밭을 트랙터로 갈아엎기 시작했다. 애끓는 농심이 전해지자 전국 각지에서 애호박 주문이 쇄도했다. 화천군청의 농산물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25일 하루에만 애호박 1만상자가 팔렸다고 한다. 짜증 무더위를 한방에 날리는 ‘화천의 기적’이다.


배연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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