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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미국 뉴멕시코주의 잭 러브 판사는 인기 만화 ‘스파이더맨’을 보고 있었다. 스파이더맨이 악당을 추적하기 위해 팔에 뭔가를 몰래 붙이는 장면을 본 순간 아이디어가 번쩍 떠올랐다. 송신장치를 활용하면 범죄자를 어디서나 감시할 수 있어 포화 상태인 교도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는 가석방자의 팔목에 담뱃갑 크기의 전자팔찌를 붙여 시범 운영을 했다. 그다음 해 플로리다주는 출소하는 범죄자들에게 송신기를 달아 처음으로 전자감시를 실시했다.

전자발찌는 위치추적 전자장치 등을 이용해 착용자의 위치나 상태를 감시하는 장치다. 우리나라는 1990년대 말부터 제도 도입을 검토했다. 하지만 아무리 범죄자라도 정부가 개인의 동선을 속속들이 파악한다는 점에서 부정적인 여론이 강했다. 그러다 2006년 용산 초등생 여아 성폭행 살해 등 잔혹한 만행이 잇따르면서 기류가 바뀌었다. 2008년 9월 성범죄 재범대책으로 전자발찌 제도가 도입됐다. 13세 미만의 아동 상대 성폭력과 2회 이상 성범죄 사범이 첫 대상이었다. 이후 미성년자 유괴범, 살인범, 상습강도범으로 적용 대상이 확대됐다.

전자발찌는 늘 위치추적을 당하고 있다는 심리적 부담을 줘 성범죄를 차단하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전자발찌를 차고도 범행하는 ‘막가파’가 늘어 문제다. 전자발찌를 찬 상태에서 성범죄를 저지른 사례가 최근 5년간 303건에 이른다. 전자발찌 훼손은 2018년 23건에서 지난해 13건으로 줄었으나, 올해 벌써 13건이다. 이러니 전자발찌 무용론이 나온다. 그럼에도 박범계 법무장관은 지난 7월 말 법무부의 전자감독시스템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자화자찬했다.

지난달 27일 서울에서 전자발찌를 끊고 도주한 50대 성범죄자가 여성 두 명을 살해해 충격을 줬다. 범인은 한 명을 살해한 뒤 전자발찌를 끊고 도망하다 또 다른 이의 목숨을 뺏었다. 박 장관은 그제 국민에게 머리를 숙이면서도 예산과 인원 부족 탓을 했다. 전자발찌를 찬 범죄자가 버젓이 거리를 활보하는 건 소름 끼치는 일이다. 많은 여성들은 불안과 분노에 떨고 있다. 전자발찌는 만능키가 아니다. 법무부는 전자발찌의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


채희창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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