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국정원법 개정
‘경제질서 교란’ 행위 땐 정보 수집
개인·기업정보 수집 가능케 해
野 “민간사찰 기능 강화한 것”
박지원 국정원장이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경선 후보의 ‘고발 사주’ 의혹 제보자를 만난 사실이 드러나면서 정치적 공방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지난해 국가정보원법 개정 당시 ‘국내정보 담당관’(IO)의 각종 기관 출입을 금지하는 법 조항이 삭제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14일 국회 정보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조태용 의원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국정원법 개정안에는 IO가 국가기관과 정당, 언론사 등 민간을 대상으로 파견·상시 출입을 통한 정보 활동을 금지하는 조항이 사라졌다. 대신 방첩 기능 강화 차원에서 ‘경제활동 교란’ 행위, 산업경제정보 유출 등을 직무 범위에 구체적으로 적시했지만, 국내정보 수집의 우회로를 열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IO 출입금지 조항은 2014년부터 시행됐는데, 2017년 취임한 서훈 전 국정원장이 IO 제도 폐지를 지시하면서 이후 기관을 출입하는 IO는 없어진 상태다.
조 의원과 야당 정보위원들은 당시 국정원법 개정안 처리에 반대하는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에서 해당 조항의 삭제 사실을 지적했다. 그러나 개정안 논의 과정에서 국정원의 대공 수사권을 경찰로 넘기는 방안이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해당 조항의 삭제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당시 국정원법 개정안 처리를 주도한 더불어민주당은 국정원의 국내정보 수집활동이 금지된 상황인 점 등을 고려해 사문화된 조항을 삭제한 것뿐이라는 입장이다. 국정원 측도 “국정원법 전면개정으로 직무 범위에서 국내정보가 삭제됐고 관련 부서도 이미 해편됐다”고 밝혔다.
◆ IO, 산업 스파이·투기도 개입 가능해 ‘논란’
지난해 12월 본회의를 통과한 국가정보원법 개정안은 대공수사권 이전과 국정원의 정치 관여 금지 강화가 주요 골자다. 더불어민주당은 국정원의 사찰 등 불법 행위의 악습을 끊겠다는 취지로 국정원이 국내 정치와 관련된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근거도, 조직도 남겨놓지 않았다고 자평했지만, 국내 정보 담당관(IO)의 정당·언론사·부처 출입 제한 규정을 삭제하고 ‘경제질서 교란’ 행위의 정보 수집이 가능하다는 점은 국정원의 국내 정보 수집의 뒷문을 열어줬다는 지적이 나온다.
12일 국민의힘 조태용 의원실에 따르면 개정된 국정원법은 국정원의 업무 수행 범위 중 하나인 방첩 활동의 범주를 산업경제정보 유출, 경제질서 교란 및 방위산업침해에 관한 활동으로 구체적으로 기술했다. 국민의힘은 당시 개정안에 새롭게 포함된 ‘경제질서 교란’ 업무가 국민의 사생활은 물론 기업을 통한 민감한 정보 수집을 가능하게 한다고 우려했다. ‘경제질서 교란‘의 정의가 불분명하며 산업 스파이뿐만 아니라 부동산 투기, 암호화폐 거래 등 국민 경제 전반에 국정원이 개입할 수 있으며 민감한 개인 정보 수집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기업에 대한 정보 수집도 가능하다.
개정안 통과를 주도한 민주당은 정치 관여가 우려되는 정보의 수집·분석을 금지하고, 정치개입 금지 유형도 확대했다. 이와 함께 국정원의 불법 감청과 불법 위치추적 행위를 금지하고 이를 처벌할 수 있는 근거도 신설하는 등 국정원의 정치개입 금지를 보다 엄격히 하면서도 정작 IO의 국가기관·정당·언론사 등의 파견·상시출입을 금지하는 조항은 삭제했다. 2012년 국정원의 사이버심리전 등 대선 개입 의혹으로 인해 2013년 여야 합의로 문제의 조항을 만들어 시행했지만, 지난해 말 법 개정에서 슬그머니 사라진 셈이다. 민주당은 국정원의 국내 정보 담당 조직 폐지에 이어 정보 수집 근거도 사라져 IO 출입 금지 조항이 불필요하다는 취지로 조항을 삭제했다는 입장이다.
야당은 또 국정원장의 타 기관 자료·협조 요청권 강화가 국정원의 정보 수집 창구를 합법화했다고 지적했다. 국정원법에 따르면 국정원장은 직무 수행과 관련해 국가기관이나 관계 기관·단체에 사실의 조회·확인과 자료 등의 협조를 요청할 수 있으며 요청받은 기관은 정당한 사유가 없으면 요청을 따라야 한다. 당초엔 ‘요청할 수 있다’고만 명시됐지만, 개정을 거쳐 ‘자료 요청에 따라야 한다’는 조항이 신설됐다. 국민의힘 국회 정보위원회 간사를 맡은 하태경 의원은 “자료 협조 요청을 따를 의무가 없어서 다른 절차나 개인정보보호법 등을 이유로 거부할 수 있었다. 결국 국정원의 사찰 기능을 강화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정치 독재는 경찰로, 경제 독재는 국정원으로 이룰 수 있다”고 국정원법 개정안을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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