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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이나 우체국이 문을 닫은 밤늦은 시간, 언제든지 돈을 찾거나 송금할 수 있는 ATM(현금자동입출금기)은 금융혁명의 시작이었다. ATM이 처음 등장한 건 1967년 영국의 바클레이즈 은행이다. 국내에서는 1984년 조흥은행이 일본에서 대당 8000만원에 들여와 명동지점에 설치한 게 시초였다. 초창기에는 시민들이 기계에 선뜻 돈을 맡기려 하지 않아 은행 직원들이 기계 앞에서 사용법을 설명하는 일도 많았다. ATM 이용률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직원들이 입출금을 반복하는 일도 빈번했다.

ATM은 1994년 1100여개였지만 2000년 1만2700여개, 2014년에는 8만7000여개까지 늘었다. 시민들 입장에서는 은행창구에 줄서는 번거로움이 사라지고 지갑에 현금을 넣고 다닐 일이 없어졌다. 은행도 입출금 전담 직원을 줄이고 수수료 수익까지 얻었다. ATM의 영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2015년 말부터 인터넷뱅킹이 ATM을 추월하기 시작했다. ‘손안의 은행’인 모바일뱅킹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올 상반기 국내은행 점포 수가 2015년 말 대비 13.1% 감소한 6326개에 그쳤다.

수치로도 확인된다. 한국은행 통계를 보면 지난해 전국에서 1769개, 서울에서만 896개의 ATM이 사라졌다고 한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의 ATM 보급 순위는 여전히 세계 최상위권이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한국의 인구 10만명당(2019년 기준) ATM은 267대로 세계 1위인 마카오 다음이다. 하지만 1㎢당 ATM 대수는 서울 34.9대. 강원 0.3대로 격차가 116배에 달한다. 대당 연간 수백만원의 운영비가 들고 보이스피싱 등 금융범죄에 활용된다는 인식까지 퍼지면서 ‘계륵’으로 전락한 ATM이 이번엔 지역 차별 논란의 중심에 섰다.

글로벌웹인덱스 조사에서 한국인의 77%가 지불수단으로 현금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풍조 속에서 은행 서너곳이 모여 공용 ATM을 도입하고, 일부는 홍채·정맥 인증 서비스를 도입하는 등 ATM을 살리려고 애쓰고 있다. 지점 통폐합과 무인점포화 바람이 거센 핀테크시대, ATM이 화려하게 부활할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지 궁금하다.


김기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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