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보·고발사주 ‘쌍끌이 수사’… 한쪽은 치명상

뒤늦게 형평성 불식 나선 공수처

법조계선 “동시 진행했어야” 지적
野 “대장동부터 압수수색을” 반발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왼쪽), 윤석열 전 검찰총장

법조계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을 ‘제보사주 의혹’으로 입건한 것에 대해 “당연한 수순”이라고 평가했다. 비슷한 사건인 ‘고발사주 의혹’으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입건하고서 제보사주 의혹 당사자를 입건하지 않는 건 이치에 맞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박 원장과 윤 전 총장이 의혹이 맞물리는 사건에 함께 입건되면서, 사건 처리 결과에 따라 둘 중 한 쪽은 정치적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6일 법조계에 따르면 공수처는 지난달 13일과 15일 윤 전 총장 측이 고발한 제보사주 의혹 사건을 전날 입건하며 여운국 차장이 고발·제보사주 의혹을 총괄 지휘하도록 사건을 재배당했다. 하나의 사건을 두고 갈래가 나눠진 의혹인 만큼 창구를 일원화해 효율적 수사를 기하기 위해서다.

박 원장은 국가정보원법·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받는다. 제보사주 의혹은 고발사주 의혹 제보자인 조성은씨가 해당 의혹 보도가 나가기 한 달 전인 지난 8월11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박 원장을 만난 사실이 드러나면서 불거졌다.

고발장이 접수된 지 약 3주 만에 공수처가 박 원장을 입건하면서, 제보사주 의혹과 고발사주 의혹이 동시에 공수처에서 다뤄지게 됐다. 현재 공수처는 윤 전 총장과 손준성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이 지난해 4월 대검 소속 검사에게 여권 인사들에 대한 고발장 작성을 지시해 고발을 사주했다는 고발사주 의혹도 수사 중이다. 이날은 국민의힘 정점식 의원에 대한 압수수색도 진행했다.

사진=연합뉴스

법조계에선 공수처가 형평성 문제를 불식시키기 위해 박 원장을 뒤늦게 입건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서울지방변호사회장을 지낸 김한규 변호사는 “공수처가 (윤 전 총장 측 고발장이 접수됐을) 당시 고발사주 의혹과 비슷한 시기에 입건을 해서 동시에 진행했어야 형평성이나 공정성 차원에서 의혹을 지울 수 있었을 텐데 입건이 너무 늦은 것 같다”고 지적했다. 공수처는 지난달 고발사주 의혹이 불거졌을 땐 관련 고발장이 접수된 지 4일 만에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6일 '고발사주 의혹' 관련 공수처 압수수색 중인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정점식 의원 사무실 앞에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시스

한편 국민의힘은 이날 공수처의 압수수색에 강력 반발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얼토당토않은 터무니없는 짓을 공수처가 하고 있어서 어이가 없고 기가 막힌다”며 “고발사주라는 사건은 없다. 우리는 공익 제보를 받은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지금 압수수색해야 하는 곳은 성남시청, 성남도시개발공사, 이재명 경기지사의 집무실과 비서실, 김만배씨 자택과 ‘천화동인’ 사무실과 휴대전화”라며 “대한민국 검찰은 뭐 하고 있나. 정신 차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희진·김병관 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