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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학자 피터 엘보의 책에 보이스(voice)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자서전 쓰기 강좌를 하면서 학생의 글을 틈틈이 읽었는데, 거기서 뭔가 특별한 것을 발견했다. 어쩐 일인지 ‘실제’처럼 살아 있는 느낌이 드는 글에서 흥미와 재미, 보람을 느낀 것이다. 세련되지 않아도 뭔가 깊은 울림이 있는 글을 보면서 그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생생한 진짜 이야기를 듣는 듯한 감동을 받았다. 피터 엘보는 그런 글을 ‘보이스’, 즉 필자의 ‘목소리’가 있는 글이라고 말했다.

글쓰기에서 ‘보이스’는 종이 위에 드러나는 한 개인의 목소리, 음성을 말한다. 글에서는 목소리가 여러 가지 색깔로 다채롭고 풍성하게 나타난다. 마치 그것은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다양한 목소리와 흡사하게 여겨진다. 자상한 아버지의 목소리, 따뜻한 선생님의 목소리, 열정적인 강연자의 목소리, 친절한 세일즈맨의 목소리가 글 속에 담겨 있는 듯하다. 그렇지만 이런 목소리들이 모두 진정성이 있고 울림이 있는 것은 아니다.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가짜 목소리를 내야 하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이다.

학자들은 ‘보이스’를 느낄 수는 있지만 무엇이라 말하기는 어려운 개념이라고 설명한다. 때로 그것을 ‘진성성’이나 ‘정체성’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진실성’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 하나도 보이스를 정확히 무엇이라 설명할 수는 없다. 진실하거나 진정성이 있는 글이라도 때에 따라 보이스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엘런 놀드라는 학자는 보이스를 이성적으로 정의하려면 항상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냥 있는 그대로 느끼는 것이 바로 ‘보이스’라는 것이다.

피터 엘보는 진정한 보이스를 알아볼 언어적 특징 같은 것은 존재할 수 없다고 밝혔다. 오로지 독자의 좋은 감수성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참다운 보이스를 찾을 수 있는 사례를 소개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되기 위해 징집위원회에 글을 써야 하는 청년이 있었다. 좋은 글이든 아니든, 스타일이 좋든 나쁘든 상관이 없다. 유일한 기준은 징집위원회의 위원들이 그 청년의 글을 보고 울림이 있다고, 참다운 진정성이 있다고 믿게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에 관한 정확한 기준이나 원칙을 찾을 수는 없다. 그런 특성 때문인지 보이스는 분석할 수 없는 개념이지만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독자가 실제로 경험하게 하는 힘을 가진다고 말한다.


정희모 연세대 교수·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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