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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무리한 시장 개입 불평등 악화… 청년 지원에 답 있어” [연중기획 - 끊어진 계층이동 사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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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12-29 06:00:00 수정 : 2021-12-29 08:0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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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다리 재건 위한 전문가 제언 〈끝〉
부동산 사다리 붕괴, 최대 문제
기득권 주택 독점, 근로계층 소득 흡수
美·英 저리 대출 ‘30년 장기모기지’처럼
사회초년생 내 집 마련 돕는 제도 필요

격차 되레 벌린 ‘최저임금 역설’
인건비 부담 커져 실직자 증가 부작용
노동시장 경직 청년 몫 일자리 더 줄어
계층상승 통로 ‘창업’ 과도 규제에 발목

‘엄빠 찬스’ 없도록 대입 손봐야
학종 줄이고 정시비중 높여 기회 확대
교육정책 손바닥 뒤집듯 바뀌어 불신
사교육 의존도만 높여 계층 격차 심화

국가가 청년층 적극 도와야 희망
초반 격차 크면 계층하락 가능서 커져
빚에 눌려 미래 포기 않도록 소득 보전
청년자산제도·보편소득 도입 공론화를
세계일보는 올 한 해 <연중기획-끊어진 계층이동 사다리>를 연재했다. 기사마다 공감과 분노, 한탄의 댓글이 쏟아졌다. 이제 더 이상 개천용 신화는 어렵다는 현실 인식이 우리 사회에 각인돼 있다는 방증이다. 경제·사회 분야 전문가들의 시각도 다르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계층이동 사다리 붕괴 원인으로 △부동산을 중심으로 한 자산 불평등 심화 △공교육 부실로 인한 사교육 의존 심화와 그에 필요한 경제력의 격차가 초래하는 대학 진학 결과 차이 △지나친 학력주의와 학력에 따른 일자리의 차이가 빚어내는 과도한 보상 격차 △정부의 과도한 개입과 실패 등을 꼽았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한국형 계층 사다리’를 재건하려면 수요·공급에 따라 자연스러운 부동산 가격 형성을 유도하고, 저소득층도 자신의 역량을 키울 특화된 교육을 받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또 학력이 아닌 능력으로 창업에 성공할 길이 넓게 열리도록 거미줄처럼 얽힌 규제를 푸는 것도 중요한 과제로 꼽았다.

경제 관점에서 사다리 붕괴가 가장 심각한 부분으로는 부동산 문제를 꼽는 전문가가 많았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집을 산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자산 격차가 엄청나게 커졌다”고 지적했다. 그는 주택시장에서 월세 살다가, 전세로 바꿨다가, 갭투자를 해서 집을 장만했다가, 돈을 갚으면서 입주했다가, 다시 분양받고 하는 게 서민이 노동소득을 통해 자산을 축적하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이제 그런 방식은 불가능한 시대가 됐다는 것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최근 들어 부동산을 중심으로 한 자산의 불평등 문제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고 말했고, 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장도 “예전에는 몇 년 일하면 집을 장만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지만 지금은 집값이 너무 올라 안 된다”고 밝혔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도시의 토지가 불균등하게 분배되면서 사람들이 벌어들이는 모든 것들이 부동산 소유자들에게 빨려 나가고 있다”고 우려했다.

경제 전문가들은 부동산 문제가 심각해진 원인으로 정부의 개입 실패를 주로 꼽았다. 우 교수는 “정부가 잘못 개입을 했다”며 “불평등이 완화되는 방식으로 해야 하는데, 의도는 그렇지 않았겠지만 결과적으로 불평등이 확대되는 방식으로 개입한 게 돼 버렸다”고 꼬집었다. 성 교수는 “정부가 시장원리를 무시하고 무리하게 주택시장에 개입하다가 상황이 악화한 측면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를 위한 해결책으로는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시장주의적 접근과 ‘누구나 집을 가지기 쉽도록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문이 많았다. 성 교수는 “주택시장의 원리를 회복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면서도 “일정 수준의 소득이 안 되는 이들을 위한 공공의 주거서비스 제공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 회장은 “대학 졸업 후 10년 안에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미국과 영국은 대학을 졸업하면 집을 살 때 80∼90%, 30년 장기 모기지가 있다”고 소개했다. 10억원짜리 집을 1억원에 사고 나머지 9억원을 30년에 걸쳐 갚아나가면서 살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집 없는 사람들이 걱정을 덜고 꿈을 가질 수 있다”며 “계층 사다리를 잇게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 교수는 “부동산 독점으로 인한 근로 계층의 소득 흡수 현상을 완화하는 등의 근본적 개혁이 없으면 계층 사다리를 복원해도 결국 경쟁만 강화되고 부동산 소유자에게 노력이 빨리는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임금 격차가 과도해진 것도 계층을 고착화하는 요인 중 하나로 지목됐다. 박정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양극화는 소득분배와 상관이 있는데 임금격차가 가장 크다”며 “직종과 비정규직의 차별 같은 문제를 떠나서 임금은 개인의 역량과 관계가 있는데 사회가 원하는, 고임금을 받을 수 있는 역량을 많은 사람이 고르게 키울 수 있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기업에 대한 규제도 너무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시점에서 젊은 사람들이 계층 상승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게 창업인데, 돈 있고 좋은 대학 나와서 잘 되는 사람도 물론 있지만 고졸도 많고 완전히 실력으로 승부할 수 있다”고 설명한 뒤 “그런데 규제가 너무 많아 젊은이들을 좌절시킨다”며 정부의 획기적인 변화를 주문하기도 했다. 우 교수는 “난데없이 최저임금을 한다고 정부가 들고나와서 격차가 더 벌어졌다”며 “일자리를 지킨 사람은 임금이 올라가지만, 일자리를 잃은 사람은 임금이 완전히 없어졌다”고 지적했다. 성 교수는 “우리나라가 한창 경제성장을 하던 시기에는 노동시장이 경직돼 있기는 해도 젊은이들에게 일자리가 많이 갔는데, 지금은 노동시장도 경직된 데다 경제성장 속도도 둔화해 청년들에게 일자리가 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출발점부터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교육 시스템도 계층 사다리 붕괴의 주요 원인으로 꼽혔다. 이영희 단국대 교육대학원 교육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공교육이 보편교육을 추구하고 있지만, 그 역할에 대해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학생들이 학교 수업 때 못 알아들으면 사교육으로 채워야 하는데, 사교육을 받지 못하는 학생은 버려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또 “특성화고도 실질적으로 사회에서 요구하는 직업훈련을 받을 수 있게 교육과정이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옛날 교사들이 너무 많아 새롭게 가르쳐야 할 기술에 뒤처져 등한시하고, 과목 이름만 바꾸고는 옛날 교육과정을 반복하는 경우가 태반이라는 것이다. 성 교수는 “배경이 좋은 청소년들이 양질의 교육에 노출되는 경향이 있고, 좋은 대학을 나와야 성공할 수 있다는 일종의 신화 같은 게 있는 것 같다”며 “그보다는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교육의 기회가 주어지고, 그 기회를 통해 계층이동의 기회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이후의 삶을 통해서도 계층이동이 가능해질 수 있는 루트도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입시 제도를 뜯어고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오 회장은 “‘조국 사태’로 드러난 것처럼 아빠찬스, 엄마찬스가 없으면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해도 대학에 잘 가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입학사정관이 한 명의 자기소개서를 10분 이상 볼 수 없는데 스펙 100개 붙인 아이들이 당연히 합격한다”며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부만 열심히 하면 스펙 상관없이 좋은 학교 갈 수 있도록 정시 비중을 높여 기회를 줘야 한다는 것이다.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정부의 교육정책이 손바닥 뒤집듯 해 학부모의 학교 신뢰 하락으로 이어지고, 학교보다 사교육 의존이 높아져 계층별 교육격차가 심화된다”며 “지금이라도 일관된 정책, 신뢰를 확보할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청년층을 정부가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청년들이 학자금 대출이나 교육비 등으로 인한 빚이 생기거나 자기계발을 포기하는 일을 막기 위해 국가가 청년들의 소득을 보전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초반에 격차가 커지면 점점 갈수록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기보다는 아래로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며 “영국의 매킨슨이라는 노동정책학자가 말한 ‘청년 자산제도’도 검토해 볼 만하다”고 소개했다. 일정한 연령대가 됐을 때 일정한 자산(목돈)을 만들어 주는 것으로, 기본소득과 비슷하지만 한 번에 일정한 금액을 준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도 “아래로 추락하지 않게 보편소득에 대한 공론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혁신이 한쪽으로 쏠리게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이런 부분들의 불평등을 완화할 수단이 보편소득이라고 주장했다. 사회적 약자나 플랫폼 성장에 따라 불가피하게 사회적 약자가 된 사람들에 대해 최소한의 삶을 유지할 기본적 사회적 안전망이 필요하며, 그래야 저소득층도 일자리나 교육을 위해 투자를 하고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개천에서 용이 나는 신화’를 이제는 잊어야 한다는 견해도 제시됐다. 김중백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세계화와 정보화가 이뤄진 상황에서 상류층이 부나 자산을 쌓는 방법과 속도가 과거와는 차원이 다르게 빨라졌다”며 “하위층이 상위층으로 올라가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점점 쉽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상위 20%와 하위 20%를 비교하는 것도 이제는 불필요하다고 본다”며 “자꾸 사법고시 같은 이야기를 해서 하위 20%에서 상위 20%로 올라가는 것만 생각하다 보면 소득 격차는 오히려 더욱 커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삶을 보장받지 못하는 쪽방촌 거주 등을 없애려는 노력이나 차상위계층까지 소득지원을 두껍게 해주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며 “자꾸 계층 간 차이를 줄이는 개념으로 가면 절대 간격이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계층 사다리라고 하면 밑에서 위로 올라가는 구도를 생각하는데 위계 구조가 너무 심각한 것 자체가 문제”라며 “계층을 좀 더 평평하게 하지 않으면 계층 사다리를 복구해도 경쟁이 더 강화되고 고통스러운 희망고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 상황에서 계층 사다리를 복원하자는 것은 복지를 강화한다거나 초기 출발점에서 자산의 기회를 준다거나 하는 논의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상규·정필재 기자, 편집국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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