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4조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을 확정해 국회로 공을 넘겼지만 후폭풍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국민의힘이 제안한 35조 규모의 추경안을 논의하자면서 대선 후보 간 긴급 회동을 제안하면서다. 올해 예산은 편성 당시부터 607조7000억원으로 ‘수퍼예산’이란 말이 나왔는데 사상 초유의 1월 추경에 더해 ‘추경 증액’ 논의마저 불붙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적자국채 발행에 따른 시장 혼란에 대비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상황에서 충분한 논의 없이 추경 규모가 확대되는 것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1일 ‘추가경정예산안 브리핑’을 통해 이번 추경이 예외적인 상황 때문에 편성됐다고 강조했다.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 연장 등 예상치 못한 방역상황이 발생함에 따라 추경을 편성하게 됐고, 추경규모도 경제상황 및 각종 변수를 감안해 신중하게 정했다는 것이다. 홍 부총리는 “정부가 추경규모와 추경 내용을 결정함에 있어 어려운 소상공인에 대한 추가지원 소요, 그리고 더 들어오게 될 초과세수의 수준, 그리고 약 608조 원에 이르는 금년 본예산의 집행상황, 그리고 1월 연초 추경에 일단 적자국채로 조달해야 하는 여건, 그리고 추경에 따른 물가·국채시장 등 경제에 미치는 파급영향 등을 종합 감안했다”고 말했다.
홍 부총리는 “국회에서 정부가 제출한 추경규모 및 추경내용에 대해 최대한 존중해 주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홍 부총리는 지난 17일 기자간담회에서도 “연초에 이례적으로 하는 ‘원포인트’ 추경이라는 관점에서 정부가 제출할 추경 규모가 유지될 필요가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정부가 추경 증액에 선을 긋고 있는 건 재정 건전성 악화 및 통화당국과의 정책 엇박자 논란, 국채금리 상승 등 각종 부작용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실제 이번 추경 14조원이 대부분 적자국채(11조7000억원)로 마련되면서 각종 재정지표에 경고등이 켜졌다. 607조7000억원 규모의 본예산에 14조원 추경까지 더해지면서 올해 총지출은 621조7000억원으로 불어난다. 작년 본예산 총지출 대비 올해 총지출 증가율은 11.4%에 이른다. 총지출이 14조원 늘지만 총수입은 본예산의 553조6000억원 그대로라 나라살림 적자는 커질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나라살림 상태를 보여주는 통합재정수지 적자는 68조1000억원까지 증가한다. 또 국가채무는 본예산 기준으로도 올해 처음 1000조원을 돌파해 1064조4000억원에 달하는데, 추경을 위한 적자국채 발행으로 1075조7000억원까지 늘어나게 됐다. 국가채무비율은 국내총생산 대비 50.0%에서 50.1%로 올라 역대 최고치를 기록할 전망이다.
통화당국과의 정책 엇박자 논란도 부담이다. 현재 한은은 물가 안정을 위해 기준금리 인상 기조를 발신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재정당국의 추경은 물가를 자극할 우려가 있다. 기재부는 일단 이번 추경의 경우, 대부분이 자영업과 소상공인에 대한 직접 지원 성격이기 때문에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추경 규모가 여기서 더 늘어나 시중에 유동성 확대로 이어질 경우 물가를 자극할 수도 있다고 기재부는 판단하고 있다.
대규모 적자국채 발행이 국채금리 상승을 부추길 수 있다는 점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국채금리 상승은 대출금리 상승으로 이어지고, 이는 빚을 많이 낸 자영업자 등에게 큰 부담이 된다. 이를 의식한 듯, 안도걸 기재부 2차관은 최근 “국고채 추가 발행분은 국채시장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최대한 시기별로 균등 배분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문제는 정치권의 추경 증액 요구가 거세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대선을 앞두고 한 표가 아쉬운 상황에서 자영업자를 의식한 정치권이 노골적으로 정부에 추경 증액을 요구하고 있다. 전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국민의힘이 제안한 35조원 규모의 추경 편성을 논의하자”며 대선 후보 긴급회동을 제안했다. 국민의힘 역시 신년 추경 증액에 찬성하고 있는 만큼 정부를 향한 정치권의 압박은 향후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다만 정부 동의 없이 추경 증액은 불가능하다. 헌법 57조는 “국회는 정부의 동의 없이 정부가 제출한 지출예산 각항의 금액을 증가하거나 새 비목을 설치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부가 정치권 압박에 맞서 기존 입장을 유지할 수 있을지가 관건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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