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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옛 선비들의 글을 보면 문장을 마음이나 성품으로 보고자 하는 관점이 너무 많다. 예를 들어 정약용은 사람이 덕을 쌓고 인격을 닦아 사물의 이치를 깨닫게 되면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문장이라고 말했다. 조선 후기 실학자인 최한기도 문장을 마음속에 깨달아 얻는 것이 넘치면 스스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한 편의 글은 그 글을 쓴 사람을 대변한다고 말한다. 우리의 선조들은 문장이 인격과 성품을 대신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문장을 사람의 인격체로 보는 시각은 우리 문장 속에 잘 드러난다. 영어는 주체나 행위를 엄격히 규정해서 단수, 복수의 개념이 분명하고, 행위도 언제 발생했는지(시제), 진행 중인지 완료되었는지 엄격히 따지지만 우리 문장은 이런 규칙을 엄격히 다루지 않는다. 그보다 문장에서 나타나는 사람 사이의 관계를 중시해서 그에 관한 여러 측면을 문장 속에 넣고 있다. 예를 들어 나보다 상대방이 높은 위치에 있으면 존칭을 꼭 써야 하고, 친하면 주어를 쉽게 생략한다. 우리 문장에서 직설적인 표현보다 여운이 남는 표현을 좋아하는 것도 사람 사이의 관계를 중시한 것이다.

그런데 더 중요한 사실은 우리 문장은 말머리(특히 주어)에 사람이나 생명체가 오는 것을 선호한다는 점이다. 무생물이 주어로 오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가능하면 사람이나 다른 생명체가 오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긴다. 반면에 영어는 무생물이 주어 자리에 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빈번히 사용한다. 예를 들어 “망치가 유리창을 부셨다”라는 표현은 우리 문장에서는 어색하지만 영어는 흔히 사용된다. 영어는 사물이나 사건을 주어에 놓기도 쉽고, 사물 주어를 수반하는 동사들이 다양하게 발달되어 있다.

한국어 문장에서 생명성은 중요한 문법의 기반이 된다. 명사나 동사를 만들 때도, 어순을 정할 때도, 주어를 선택할 때도 영향을 미친다.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가 사물을 만들고 사건을 이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사람이나 생명체를 말과 문장을 만드는 근원적인 바탕으로 삼고 출발점으로 삼았다. 옛 사람들이 문장을 자신과 동일체로 본 것도 그래서 가능한 것이다. 추사 김정희는 문장과 사람의 올바른 길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결코 둘을 나눌 수 없다고 말했다. 옛 선비들이 문장을 손으로 쓰지 말고 마음으로 쓰라고 말한 것도 이와 같이 문장을 우리 생명체와 일체가 된 것이라고 본 까닭이다.


정희모 연세대 교수 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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