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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DPR 면제’ 美 동맹국 중 한국만 빠져… 러 수출 ‘비상’

입력 : 2022-03-02 06:00:00 수정 : 2022-03-02 03:4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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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기술 활용한 57개 품목·기술
러 수출하려면 美 허가 받아야
현지 진출기업 부품조달 직격탄

고환율에 국제가격 상승 영향
유가 100弗 돌파… 8년래 최고

뒤늦게 美 달래기 안간힘
국내 산업계 피해 현실화 되자
다급하게 美와 접촉 협의 나서
미국과 유럽 주요 국가 등이 러시아 은행들을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결제망에서 퇴출키로 합의한 이틀 뒤인 지난달 28일 코트라 우크라이나 비즈니스 애로 상담센터 관계자가 서울 서초구 사무실에서 러·우크라이나 전황이 담긴 뉴스를 보고 있다. 뉴시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강력한 제재 조치로 미국이 ‘해외직접생산품규칙(FDPR)’을 실시해 대(對)러시아 수출통제 조치를 강화하면서 유럽과 호주, 일본 등은 적용 국가에서 제외된 반면 우리나라는 포함돼 반도체와 조선, 자동차 등을 수출하는 국내 기업들에 비상이 걸렸다. 더불어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러시아 은행들을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에서 퇴출하는 제재안을 내놓으면서 기업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1일 업계 등에 따르면 FDPR 적용으로 반도체 등 상당한 우리 주력 수출 품목이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FDPR를 발표하면서 반도체를 비롯해 컴퓨터,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기업의 러시아 수출규제를 예고했다. 이에 따라 반도체·정보통신·센서·레이저·해양·항공우주 등 57개 품목·기술 분야에서 미국 기술이나 소프트웨어(SW), 장비를 활용한 제품을 러시아에 수출하려면 반드시 미국 상무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유럽연합(EU)과 일본, 호주, 영국, 캐나다, 뉴질랜드는 FDPR 규제 조치를 받지 않는다. 반면 면제 대상에서 누락된 우리나라는 일일이 허가 품목 여부를 확인받아야 해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당장 반도체만 놓고 보면 한국의 대러 수출 비중(2021년 기준 0.1% 미만)은 크지 않지만, 현지에 있는 한국 기업의 생산 제품에 쓰이는 관련 부품들까지 고려한다면 파급효과는 만만치 않다는 지적이다.

원자재 조달도 문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네온·크립톤·제논(크세논) 등 희귀가스 상당량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다. 전 세계 네온 사용량의 70%, 크립톤의 40%가 우크라이나에서 생산된다. 네온의 경우 주 생산국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미국, 중국, 프랑스 5개국에 불과하다. 네온은 수입액의 23.0%와 5.0%를 각각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서 공급받고 있다. 크립톤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지난해 전체 수입 물량 가운데 30.7%와 17.5%를 차지한다.

경남 거제시에 위치한 빅3 조선소 중 한 곳의 전경. 연합뉴스

조선업계도 전전긍긍하고 있다. 국내 조선사 입장에서는 제품 수출과 동시에 스위프트 제재로 수출된 제품의 자금 회수까지 걱정해야 할 상황이다. 스위프트는 전 세계 은행 간 송금이 가능한 결제망으로, 막히면 국내 조선사들이 선박 건조를 완료해도 대금 상당 부분을 받는 데 차질이 생긴다.

업계에 따르면 한국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국내 주요 조선 3사가 러시아와 계약한 선박은 총 7척으로 8조원 상당이다. 삼성중공업은 러시아 국영조선소 즈베즈다와 공동으로 추진해온 5조원 규모의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프로젝트와 관련해 중도금을 받기 직전에 이번 사태가 발발하면서 주말까지 대책 마련을 논의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수입 차질에 따른 생산자·소비자물가 불안도 우려된다. 우리나라가 러시아에서 수입하는 품목 가운데 전체 수입량의 20% 이상인 품목이 118개나 되기 때문이다. 특히 러시아산 수입 비중이 50% 이상인 품목도 62개에 달했다.

이날 국책연구기관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정형곤 선임연구위원은 이날 통관 코드(HS10) 단위 기준으로 지난해 러시아에서 수입한 품목 2075개(173억5000만달러)를 분석한 결과 이같이 집계됐다고 밝혔다.

118개 품목 중 수입액이 가장 많은 품목은 나프타(43억8000만달러)로, 러시아산이 해당 품목 전체 수입액(187억달러)의 23.4%를 차지했다. 수산물은 러시아산 의존도가 특히 높았다. 대게는 전체 수입의 전부를 러시아에서 들여왔고, 명태(96.1%), 대구(93.6%), 북어(92.7%), 명란(89.2%) 등도 비중이 높았다.

한편, 이날 한국무역협회는 지난달 24일부터 28일까지 협회가 가동하는 우크라이나 사태 긴급대책반에 국내 기업 101곳으로부터 138건의 애로사항이 접수됐다고 전했다.

서울 내 가스충전소 모습. 연합뉴스

◆국내 LPG 공급가 ㎏당 60원 인상

 

이달 국내 액화석유가스(LPG) 가격이 인상되면서 서민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유가는 100달러를 돌파했다.

 

국내 LPG 수입업체 E1과 SK가스는 이달 국내 LPG 공급가격을 ㎏당 60원 인상한다고 1일 밝혔다. 이번 인상으로 E1의 가정·상업용 프로판 가격은 ㎏당 1387.8원, 산업용은 1394.4원이 됐다. 부탄은 ㎏당 1710.38원이다. SK가스는 가정·상업용 프로판을 ㎏당 1389.36원으로, 산업용 프로판은 ㎏당 1489.36원으로 올렸다. 최근 고유가로 국제 LPG 가격이 상승한 데다 원화 약세마저 더해져 국내 LPG 가격이 상승했다.

 

LPG 가격이 오르면서 서민경제에 어려움 더해졌다. LPG는 ‘서민연료’로, 도시가스가 공급되지 않는 농어촌 지역과 주택의 난방·취사용, 식당·노점상 등 영세업종의 취사용, 택시 연료로 사용된다.

 

전날 국제유가는 100달러를 돌파하며 8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3대 유종인 북해 브렌트유 4월물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3.1% 급등한 배럴당 100.99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같은 날 4월물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도 4.5% 오른 배럴당 95.72달러를 기록했다.

이억원 기획재정부 1차관(왼쪽 세 번째)이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미국 재무부에서 월리 아데예모 재무부 부장관과 면담 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정부 “러 7개은행 거래 정지·국고채 투자 중단”

 

정부가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전략물자 수출 차단과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 결제망 배제 동참 등 대(對)러시아 제재에 뒤늦게 나서면서, 한·미동맹 사이에 드리워진 먹구름을 지우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정부는 1일 러시아에 대한 금융제재 후속 조치로 러시아 주요 은행과의 금융거래와 러시아 국고채 거래를 막기로 했다. 러시아에 대한 스위프트 배제 조치를 지지한다는 뜻도 거듭 밝혔다. 이날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미국의 제재 대상인 7개 주요 러시아 은행 및 자회사와의 금융거래가 중단돼 국내 금융기관과 기업, 개인 모두 제재 대상 은행을 통해 거래할 수 없게 된다.

 

정부는 또 수출입 기업이 제재 대상 은행과 이미 맺은 계약에 따른 금융거래는 유예기간 내에 완료해 달라고 당부했다. 미국은 제재 대상 은행과 거래하는 제3국 금융기관과 개인에도 ‘2차 제재’(Secondary sanctions)를 부과키로 했기 때문에 한국의 은행이 이들 은행과 거래하면 미국의 제재 대상이 된다.

 

이날 산업통상자원부는 무역안보정책관이 이번주 미 상무부 산업안보국(BIS)과 대러 수출통제를 협의한다고 밝혔다. 전날 발표한 전략물자는 물론 비전략물자와 관련한 조치 방안을 미측과 협의할 것으로 보인다.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은 2일까지 예정된 멕시코 방문을 마치는 대로 미국으로 넘어가 직접 미 정부 고위층을 연쇄 접촉할 예정이다.

 

정부는 미국이 동맹국 중 유일하게 한국에 대해서만 해외직접제품규칙(FDPR)을 발효하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5일째인 전날 대러 제재를 결정했다. FDPR는 제3국이 미국산 기술과 소프트웨어(SW)를 활용한 제품을 러시아에 수출할 때 미국 상무부의 허가를 받도록 하는 수출통제 조치다. 이로 인해 러시아에 대한 반도체, 컴퓨터,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의 우리 기업들이 수출통제 영향권에 들어가면서, 국내 기업들의 피해에 대한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 간 통화도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다. 청와대는 대러 제재에 있어 한국 측 역할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미국이 한국과 통화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미국 입장에서 볼 때 한국은 다급한 나라가 아니다”며 “왜 우리는 통화를 안 했냐고 하는 시각은 맞지 않다”고 말했다.


남혜정 기자·세종=안용성 기자, 송은아·김선영·이도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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