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1700만弗 채권이자 만기 도래
30일 이내 못 갚으면 디폴트 맞아
러 “서방이 꾸민 것” 책임 떠넘겨
IMF총재 “채권금액 위험수준 아냐”
전쟁 장기화 땐 신흥국 타격 우려
국내 증시·금용시장 영향 제한적

러시아가 갚아야 할 1억1700만달러(약 1450억원)의 채권 이자 만기가 16일(현지시간) 도래했다. 앞으로 30일 안에 러시아가 이 돈을 제대로 내지 못하면 1917년 볼셰비키 혁명 이후 처음으로 외화 디폴트 즉, ‘국가 부도’를 맞는다. 세계 금융시장에 적지 않은 혼란을 몰고올 것으로 우려된다. 정작 러시아는 발등에 떨어진 불을 보고서도 서방이 꾸민 ‘인위적인 디폴트’라며 적극적인 해결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러시아는 16일까지 갚아야 하는 1억1700만달러의 달러화 채권 국채 이자를 시작으로 21일에는 6600만달러, 28일 1억달러, 31일 4억5000만달러, 다음달 4일 21억3000만달러의 채무 만기가 차례로 도래한다. 16일을 넘긴다고 해서 바로 디폴트가 선언되는 건 아니다. 만기일 이후 30일간 채권자와 러시아 정부가 채무재조정 등을 벌이기 때문이다.
FT는 “보통 채권자들은 (일부라도 회수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디폴트가 공식 선언되는 것을 매우 꺼린다”고 전했다. 유예기간 30일 동안 원만히 협상을 진행하는 게 최선이다.
문제는 돈을 갚아야 할 러시아 쪽이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디폴트로 이어질 경우 1917년 볼셰비키 혁명 이후 러시아의 첫 국제 디폴트다.
안톤 실루아노프 러시아 재무장관은 14일 “(우크라이나 침공 후) 서방의 제재로 러시아 외환보유액의 절반인 3150억달러가 동결됐다”며 “서방이 경제 제재라는 수단을 동원해 조직적으로 디폴트를 유도하고 있다. ‘인위적인 디폴트’다”라고 강조했다. 러시아 돈줄을 묶은 서방으로 책임을 떠넘긴 것이다. 그는 한술 더 떠 “제재가 풀릴 때까지 우호적이지 않은 나라의 채권자들에게는 루블화로 갚겠다”고 했다. 루블화의 가치는 올 들어 45% 이상 폭락한 상태다.
FT는 “이런 상황에서 채권자들의 선택은 크게 두 가지로 좁혀질 수 있다”고 전했다. 아예 모든 것을 내려놓고 전쟁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거나 법정 소송을 통해 해외 러시아 자산을 취득하는 방법이다.

다행인 것은 전문가들이 러시아의 디폴트가 세계적 금융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을 낮게 본다는 점이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최근 “러시아 디폴트에 따른 글로벌 금융위기 발생 가능성은 낮다. 전세계 은행의 러시아 위험 노출액(익스포저)은 1200억달러로 무시할 수준은 아니지만 체계적으로 연결된 위험은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금융시장의 파생효과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불거질 수 있다. 짐 리드 도이체방크 선임 전략가는 “30일은 디폴트의 충격이 세계 금융시장에 스며드는 데 충분하지 않은 시간이다. 앞으로 눈여겨봐야 할 이야기가 분명히 나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국 경제에도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우크라이나 전쟁의 파급효과로 한국 경제에 저성장과 고물가가 동시에 나타나는 슬로플레이션이 우려된다”고 진단했다.
다만 국내 증시 및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란 분석이다.
국내 은행들의 경우 러시아 익스포저가 크지 않아 직접적인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금융회사의 러시아 대상 익스포저는 14억7000만달러 수준이다.

러시아의 디폴트 위기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역설을 보여준다. 그는 1998년 러시아가 국내 부채에 대해 디폴트를 선언하자 위기 극복 능력을 앞세워 2000년 대통령이 됐다. 그러나 20여년이 흘러 이번엔 스스로 나라를 부도 상황으로 몰고 간 격이 됐다.
러시아 반정부 인사인 블라디미르 카라쿠르자는 CNN방송 인터뷰에서 “냉전 이후 30년간 쌓아올린 러시아의 성취가 모두 무너진 마당에 푸틴을 멈춰세울 수 있는 건 없다”며 “그를 무너뜨릴 수 있는 건 그를 권좌에서 내리는 것이고 이건 러시아 국민만이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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