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중국 원칙은 중국인에게 역린이다. 중국 대륙과 대만, 홍콩, 마카오가 절대 나뉠 수 없으며 합법적인 중국 정부는 하나라는 뜻이다. 외국인이 중국인과 대화할 때 ‘대만을 국가로 인정한다’는 말은 소수민족 독립과 공산당 반대와 함께 3대 금기 중 하나다. 한·중 정상회담 때마다 합의문 첫 문장에 이 원칙이 등장하고 다른 나라도 대부분 마찬가지다.
이 원칙은 중국이 1971년 10월 유엔총회에서 대만을 몰아내고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자리를 차지하면서 국제사회에 통용되기 시작됐다. 3개월 후 미국도 중국과 체결한 ‘상하이 코뮈니케’에서 하나의 중국을 공식 인정했고 1978년 말 미·중수교가 이뤄졌다. 중국은 유일한 합법 정부를 자처하며 대만을 인정하는 나라와는 국교도 맺지 않는다. 대만과 수교한 나라는 14개뿐이다.
그런데 1990년대 들어 이 원칙에 균열이 생겼다. 당시 빌 클린턴 미 행정부가 대만 총통의 미국 입국을 허용했는데 중국은 대만 영해로 미사일을 쐈고 해협 인근 푸젠성에 12만 병력을 집결시켰다. 깜짝 놀란 미국은 베트남전 이후 최대 규모의 해군력을 동원하면서 전쟁 위기를 간신히 모면했다. 시진핑 시대 들어 중국의 팽창주의가 노골화하자 미국의 대응 수위도 높아지는 형국이다. 3년 전 미 국방부가 전략보고서에 대만을 주권국가로 표기하자 중국 국방부장은 “일전을 불사할 것”이라고 불같이 화를 냈다. 2020년에는 앨릭스 에이자 미 보건장관이 장관급으로 처음 대만을 방문했다.
이번에는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지난 5일 국무부 홈페이지에 게재한 대만 관련 설명자료에서 ‘대만은 중국의 일부분이다’, ‘대만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라는 표현을 삭제했다. 대놓고 역린을 건드렸으니 중국이 가만있을 리 없다. 중국 외교부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허구화하거나 속 빈 강정으로 만드는 방해술수”라며 “(이런 시도는) 자신이 지른 불에 스스로 타 죽는 상황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반발했다. 남의 일이 아니다. 대만에서 전쟁이 발발하면 주한미군의 투입이 불가피하니 한반도도 그 불길을 피할 길이 없다. 대만 정세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비상한 대책을 강구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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