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업계 “일시적 수요 증가… 수급 차질 아냐”
마트 관계자 “불안한 손님들 4∼5개병 사기도”
불안 심리가 사재기 유발… 가격 상승 우려 한몫
“포도씨유가 몸에 좋다고 해서 계속 포도씨유만 썼는데 비싸졌잖아요. 그래서 해바라기씨유 한 번 사 봤어요. 기름이 다 똑같지 뭐. 나는 식용유 많이 쓰지도 않고, 사실 포도씨유 뭐가 좋은지 잘 모르겠더라고.”
지난 16일 오전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만난 50대 주부는 포도씨유를 집었다가 내려놓고 대신 해바라기씨유를 고른 이유를 이같이 설명했다. 이 마트에서 포도씨유는 900mL에 1만3000원대, 해바라기씨유는 8000원대에 판매 중이다.
또 다른 60대 고객은 식용유 한 병을 쇼핑카트에 담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장바구니 가격이 많이 오른 것 같냐는 질문에 그는 “식용유 뿐만 아니라 야채, 고기, 우유 등등 안오른 것이 없다”면서 얇게 썰은 냉동 돼지고기를 가리키며 “평소 30만원어치 장을 보는데 오늘은 고기 살 여유가 없어서 이것밖에 못담았다”고 푸념했다.
1.8L짜리 콩기름 한 병을 골랐던 한 고객은 “이건 가격이 아직 안 올랐다”는 직원의 말에 “곧 오를 거 아니냐. 그럼 더 사둬야 겠다”며 한 병을 더 집어 들었다.
이날 오전 식용유 코너엔 식용유가 브랜드별, 종류별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가격이 비쌀 뿐, 품절 대란의 조짐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마트측은 판매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기는 했다. 식용유 코너 담당 직원은 “품절된 일은 없었지만 바로바로 꽉 채워두지는 말라는 지시를 받았다”면서 “주말엔 ‘식용유 대란’ 언론 보도 때문인지 4∼5병씩 담아가시는 손님들이 계셨다”고 귀띔했다.
인도네시아의 팜유 수출 제한 영향으로 대체제인 식용유값이 오르면서 불안심리에 사재기 조짐이 보이고 있다. 수급에 큰 문제가 없지만 가격 추가 상승 우려로 자영업자들이 식용유 대량 구매에 나섰고, 개인 소비자들도 덩달아 식용유를 필요 이상 사들이고 있다. 이에 일부 마트들은 식용유 판매 개수를 제한하며 선제적 대응에 나서는 모양새다.
18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최근 코스트코, 이마트 트레이더스 등 창고형 할인매장이 식용유 판매 갯수를 1인당 2개로 제한했고, 전날 쿠팡도 식용유 구매 개수를 1인당 10개로 제한했다. 일부 품목은 1인당 구매 수량이 1개다. 이날 오전 현재 쿠팡 로켓배송으로 구매할 수 있는 일반 식용유는 900mL 용량 12개 묶음을 5만8500원에 판매하는 해표 포도씨유밖에 없다.
롯데마트몰에서는 1.7L 대용량 제품 하루 최대 구매량을 15개로 제한하고 있다. 롯데마트몰에서는 최근 식용유 판매가 평소보다 50%가량 늘면서 일부 제품이 한때 품절되기도 했다. 이마트몰은 아직 구매 수량 제한이 없지만 일부 매장의 경우 쓱배송으로 살 수 있는 몇몇 식용유 품목이 품절 상태다.
온·오프라인에서의 식용유 품절은 공급 부족 때문이 아니라 일시적 수요 증가에 따른 것이라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물건이 부족하지 않음에도 ‘식용유 대란’ 소식이 전해지면서 평소에 1개를 살 소비자들이 1개를 더 담고 있다”고 말했다.
식용유 제조업체들도 공급 차질은 없다는 입장이다. 한 식용유 제조업체 관계자는 “제조업체는 생산량을 줄인 적이 없고 지금도 공급에는 차질이 없다”면서 “식용유 유통 과정에서 일부 자영업자들의 사재기 현상이 있었지만, 시장 전체 공급량을 좌우할 정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실제 일반 소비자들이 이용하는 마트의 식용유 수급 상황은 아직 양호하다. 3대 대형마트(이마트·롯데마트·홈플러스)와 농협 하나로마트 등은 일반 매장에서 식용유 구매 수량 제한을 두지 않고 있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식용유 판매량이 지난달 같은 기간과 비교해 40% 늘었지만 수급에는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와 이에 따른 국제 원자재·곡물가격 상승이 지속될 경우 식용유값이 추가 상승할 가능성이 있어 사재기 우려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가격이 오르기 전 구매 수량 제한이 없는 마트에 자영업자와 일반 소비자 수요가 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유통업체 관계자는 “아직 ‘대란’이라고 부를만한 상황은 아니지만 확실히 가격이 더 오르기 전에 사두려는 수요는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 “소비자 불편을 초래하지 않도록 제품 구매 담당자들이 수급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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