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18일 광주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 참석은 취임 후 첫 국가 기념일 행사이자 첫지역 방문이었다. 1980년 발생한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수많은 시민의 희생으로 민주화를 앞당긴 대한민국 현대사의 전환점이었던 만큼 역대 대통령의 참석 여부가 매년 관심을 모았다. 역대 보수 정권에서는 임기 내 형식적인 참석만 했던 터여서 윤 대통령이 이번 기념식에서 어떤 행보를 보일지에 특히 관심이 모였다. 이번5·18 기념식은 시작부터 “전과 달랐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민주의 문’으로 입장한 尹…“국민 모두가 광주시민”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9시 50분쯤 민주묘지에 도착해 ‘민주의 문’을 통과해 제42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장에 입장했다. 보수 진영 대통령이 5·18 기념식 당일 ‘민주의 문’을 넘은 것은 윤 대통령이 처음이다. 5·18 민주화운동유족회장 등 유가족 단체와 함께였다. ‘전두환 옹호 논란 발언’ 등에 항의하는 시위대에 막혀 추모탑 가까이에 다가서지 못했던 종전 방문과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민주의 문’은 5·18 희생자들이 한데 묻힌 민주묘지의 정문으로 3칸짜리 기와건물 대문이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 경호 등의 이유로 차량을 통해 기념식장에 바로 입장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7년 제37주년 기념식 당시 ‘민주의 문’을 통과했다.
윤 대통령은 ‘민주의 문’ 안에서 방명록에 ‘오월의 정신이 우리 국민을 단결하게 하고 위기와 도전에서 우리를 지켜줄 것입니다’라고 쓴 뒤 민주광장과 추념문을 차례로 지나 추모탑 앞에서 진행된 기념식에 참석했다.
윤 대통령은 6분 분량의 기념사에서 “오월 정신은 보편적 가치의 회복이고, 자유민주주의 헌법 정신”이라며 “자유민주주의를 피로써 지켜낸 오월의 정신은 바로 국민 콩합의 주춧돌”이라고 선언했다.
기념사 말미에는 “자유와 정의, 그리고 진실을 사랑하는 우리 대한민국 국민 모두는 광주 시민”이라는 문장을 즉석에서 추가하기도 했다. 5·18 정신을 전국적으로 확장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은 전날 늦게까지 초안을 7차례나 직접 퇴고하며 기념사에 각별히 공을 들인 것으로 전해졌다.
◆‘님을 위한 행진곡’ 제창…“매년 오겠다” 약속
이날 기념식의 하이라이트는 말미에 울려 퍼진 75초 간의 ‘님을 위한 행진곡’ 제창이었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함께 손을 맞잡고 반주에 맞춰 힘차게 불러주시기를 바란다”는 사회자의 멘트가 나오면서 장내에 4박자의 반주가 울려 퍼졌다. 의자에 앉아 있던 윤 대통령을 비롯해 여야 의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윤 대통령은 양옆 참석자들과 잡은 양손을 반주에 맞춰 힘차게 아래 위로 흔들며 노래했다. 마스크를 낀 상태여서 입 모양을 확인할 수 없었지만, 마스크가 아래위로 들썩이는 모습이 포착됐다.
이준석 대표와 더불어민주당 박지현·윤호중 위원장, 정의당 여영국 대표는 정면을 응시한 채 주먹 쥔 오른손을 어깨높이로 들고 아래위로 흔들었다. 박병석 국회의장, 유남석 헌법재판소장도 양손을 잡고 함께 흔들며 제창했다. 국민의힘 정진석 국회부의장과 민주당 김상희 국회부의장도 동참했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 한동훈 법무부 장관, 박진 외교부 장관 등 국무위원들도 양손을 잡고 함께 흔들며 제창했다. 국민의힘 의원들 중 일부는 팔을 흔들지 않고 정자세로 서서 노래하기도 했다.
국민의 힘에서는 ‘님을 위한 행진곡’ 악보를 의원들에게 사전배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준석 대표는 기념식 후 5·18 추모관 앞에서 기자들과 만나 님을 위한 행진곡 제창 소감과 관련, “(과거 기념식에서) 우리 당 인사 중에서도 개별적으로 제창하는 분도 있었지만 오늘은 당 차원에서 다 같이 제창하자고 방침을 정한 것이기에 의미 있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님을 위한 행진곡은 한 때 ‘종북 논란’으로 보수 정권이 꺼리는 곡이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8년 기념식에서 장내 대형스크린에 나오는 가사를 보며 유족과 함께 노래 불렀으나, 집권 3년차인 2010년 5·18 기념식에서 국가보훈처가 ‘님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식순에서 제외했다. 논란이 일자 이듬해 광주시립합창단의 합창에 따라 원하는 사람만 따라 부르는 방식으로 식순에 다시 포함됐다. 박 전 대통령은 2013년 기념식에서 아예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이날 기념식에 입장하기 전 5·18 유공자 유적과 비공개 환담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고 전재수 열사의 유족 재룡씨가 “매년 (기념식에) 오실 수 없겠느냐”고 묻자 윤 대통령은 선뜻 “매년 참석하겠다”고 답했다고 5월 단체 관련자는 전했다. 윤 대통령은 이어 “5·18 정신을 잘 이어받아 성실하게 국정을 운영하겠다”고 약속했다.
◆보수 진영 출석율 ‘역대 최대’
윤 대통령은 전날 강승규 시민사회수석을 하루 먼저 광주로 보내 5·18 단체 관계자들과 만나 민원 사항을 청취하게 하고, 전야제에도 참석하도록 했다.
이날 오전에는 100여명의 국민의힘 의원들, 국무위원들, 대통령실 참모들과 함께 KTX 특별열차를 타고 광주로 향했다. 전용 헬기가 아닌 기차를 선택한 것은 ‘당정 스킨십’ 기회로 활용하기 위함이었다.
당에서는 원외인 이준석 대표 1명을 포함해 총 100명이 기념식에 참석했으며, 이 중 86명이 윤 대통령과 함께 광주행 KTX를 탄 것으로 국민의힘 측은 집계했다. 병가 등 일부 개인 사정이 있는 사람을 제외하고 사실상 전원에 가까운 참석률이다. 윤 대통령이 앞서 당 소속 의원들을 상대로 기념식 동행을 요청한 결과다.
윤 대통령은 열차 출발 직후인 오전 7시 40분쯤부터 뒤 칸을 오가며 참석자들과 일일이 악수 인사와 덕담을 건네며 반가움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재선 의원에게는 악수하며 “국민통합의 길에 함께 해줘서 감사하다”며 참석에 사의를 표했고, 또다른 의원에게는 “국민통합을 당과 함께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고 한다. 당내 호남 출신 의원들은 윤 대통령에게 “대선 후보 때 했던 약속을 지켜줘서 고맙다”고 화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의원들과 동행한 이준석 대표에게도 윤 대통령은 “수고했다”며 감사 인사를 건넸다.
윤 대통령은 이어 식음 공간이 마련된 2호칸으로 국민의힘 호남동행단 소속 의원 7명을 불러 조찬을 함께했고, 곧이어 국무위원들과 티타임도 가진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의원들에게 “광주 민주화운동이 이렇게 제대로 인정받고 진의가 왜곡되지 않아야 하는데 그동안 그러지 못해서 안타깝다”며 “힘을 합쳐서 통합운동으로 나아가 보자”며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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