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문·현장 조사서 “월북 정황 증거 못찾았다”던 해경
이씨 실종 후 8일 지나 “군 자료 등 통해 월북 판단”
유가족 “당시 월북 프레임을 만들려고 조작된 수사”
정권 바뀌고 수사결과 변화… 구체적 근거 없어 논란
2020년 북한군에 의한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을 두고 정치권에서 연일 날선 공방이 오가고 있다. 해양경찰청과 국방부가 최근 기자회견을 통해 과거 고인의 빚 등을 근거로 월북 시도 중 표류했다고 단정한 데 대해 공식 사과한 이후 여당인 국민의힘은 문재인 전 정부의 책임론을 거론하며 맹공을 퍼붓고 있고,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정치보복’이라며 맞서는 중이다. 정권이 바뀐 뒤 앞서 발표한 수사 결과를 스스로 뒤집은 해경과 국방부에 대한 논란도 커지는 상황이다. 감사원은 지난 17일 해경 및 국방부 등에 감사를 착수하겠다고 밝혀, 진상규명이 이뤄질지 관심이 쏠린다.
다만 이런 논란에도 사건을 풀 열쇠로 여겨지는 국방부의 ‘SI 첩보’가 공개될지는 미지수다. SI 첩보는 2년 전 공무원 이대준씨가 자진 월북한 것으로 추정했던 핵심 근거 중 하나인데, 세세한 내용은 아직까지 공개된 적이 없다.
유가족은 국방부 등이 자초한 추정과 혼선을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이를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상황이다. 당시 북한을 감청한 내용이 담긴 SI 첩보는 보안등급이 높은 기밀인데다 정보 자산 노출 우려가 있어 공개할 수 없다는 게 그간 국방부의 입장이었다.
일반적인 비밀은 국방부 자체 정보공개심의위원회를 거친 뒤 장관의 결재를 통해 공개가 가능하지만, 군의 특수 정보인 SI 첩보는 한·미가 함께 공유하기에 미국 측과의 협조도 필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20년 9월21일 사건의 시작…文 대통령과 北은 뭐라고 했나
해양수산부 소속 공무원 이씨는 2020년 9월21일 서해 최북단 소연평도에서 어업지도선에 탄 채로 실종됐다. 그리고 이튿날인 23일 국방부는 “지난 21일 낮 12시51분쯤 소연평도 남방 1.2마일(2㎞) 해상에서 해양수산부 소속 어업지도선 선원 1명이 실종됐다는 신고가 해양경찰에 접수됐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 군 첩보에 의하면 (실종 다음 날인) 22일 오후 실종자가 북한 해역에서 발견된 정황이 포착돼 정밀분석 중”이라며 “관계 당국은 실종 경위, 경로 조사와 함께 북측에 관련 사실을 확인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47세였던 이씨는 목포 소재 서해어업지도관리단 소속 해양수산서기(8급)로 실종 당일 어업지도선에서 업무를 수행 중이었다. 어업지도선에는 이씨를 포함해 10여명이 승선했으며, 그가 실종되기 5일전 출항해 9일동안 업무를 마친 뒤 복귀할 예정이었다. 어민들의 어로 안내 및 불법 조업 단속을 하는 어업지도원들은 어업지도선에서 통상 4시간 단위로 근무하는데, 이씨는 실종 당일 이른 새벽 시간대 당직 근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 어업지도선 새벽 당직 근무자들은 아침을 거르고 점심을 먹는데 이씨가 점심시간이 다되어도 보이지 않자 다른 선원들이 선내와 인근 해상을 수색한 끝에 신고했다. 배에서는 이씨의 슬리퍼가 발견됐다. 당시 실종 지점이 북한과 가까운 데다 선박에 신발을 벗어둔 정황 등으로 볼 때 단순 실족보다는 스스로 선박에서 벗어났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렸다.
인천해경서 소속 수사관 3명은 이씨의 실종 신고 접수 다음날인 24일 조사를 위해 연평도로 이동해 고속단정을 타고 소연평도 인근 해상에 있는 어업지도선에 승선해 해상에서 조사했다. 배에 탄 서해어업관리단 소속 공무원 등 15명을 탐문하고 남은 이씨의 개인 물품을 확인했다. 당시 해경은 선내 CCTV와 통신 기록 등도 조사했지만, 이씨의 슬리퍼가 발견된 장소는 CCTV 사각지대여서 정확한 실종 시각이나 사라질 당시 선내 위치 등은 파악되지 않았다. 이날 국방부는 이씨가 북측에서 피격됐으며 시신이 불태워졌다고 공식 발표했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충격적인 사건으로 매우 유감스럽다.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 북한 당국은 책임 있는 답변과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은 “만약 첩보가 사실로 밝혀지면 국민이 분노할 일”이라며 군에 “만반의 태세를 갖추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 정부는 북의 반인륜적 범죄를 강력 규탄한다며 북에 책임자 처벌 및 사과를 요구했다.
그 다음날 북한 통일전선부는 ‘공무원 피격 사건’ 통지문에서 “황해남도 강령군 금동리 연안 수역에서 정체불명의 인원 1명이 우리 측 영해 깊이 불법 침입하였다가 우리 군인들에 의하여 사살(추정)되는 사건이 발생했다”며 “신분 확인을 요구했으나 처음에는 한두 번 대한민국 아무개라고 얼버무리고는 계속 답변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고 사건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신분 확인 요구에 얼버무렸고, 대치 도중 도주 움직임이 있었다며 단속정장이 규정에 따라 사격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통일전선부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해 문재인 대통령과 남녘 동포들에게 커다란 실망감을 더해 준 데 대해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이례적인 발표를 했다.
◆군 당국 발표로 재구성한 사건 경위… 이씨를 향한 비난의 화살
당시 군 당국은 시간대별로 사건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특히 북측이 구명조끼를 입고 표류 중이던 이씨에 접근해 월북 경위 등의 진술을 들은 뒤 무참하게 사살한 뒤 시신까지 불태웠다고 했다. 국방부는 입장문을 통해 “우리 군은 다양한 첩보를 정밀 분석한 결과 북한이 북측 해역에서 발견된 우리 국민(소연평도 실종자)에 대해 총격을 가하고 시신을 불태우는 만행을 저질렀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우리 군이 이씨의 흔적을 처음 인지한 것은 실종 이튿날이었다. 군 당국은 그날 오후 3시30분쯤 서해 북방한계선(NLL) 북쪽에서 3∼4㎞ 떨어진 등산곶 인근 해상에서 북한 수산사업소 선박이 이씨를 처음 발견한 것으로 봤다. 군 관계자는 “북측이 구명조끼를 입은 상태에서 한 명 정도 탈 수 있는 부유물에 올라탄 기진맥진한 상태의 실종자를 최초 발견한 정황을 입수했다”며 “북측은 이후 실종자와 일정 거리를 유지한 채 실종자가 유실되지 않도록 조처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는 최초 실종 사건이 접수된 지점인 소연평도 남쪽 2.2㎞ 해상에서 서북서 방향으로 약 38㎞ 떨어진 해상이다.
북측은 이후 이씨에게 접근해 표류 경위를 확인하면서 월북 의사를 확인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북측은 같은날 오후 9시40분쯤 바다 위에서 이씨를 총살했다. 북한 선박에 발견된 지 약 6시간 만이다. 그리고 오후 10시쯤 방독면을 쓰고 방호복을 입은 북한군이 시신에 접근해 기름을 붓고 불태운 정황이 군 당국에 포착됐다. 군은 시긴트(신호정보)를 통해 이런 정황을 인지했으나, 별다른 대응을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 관계자는 당시 북한군 단속정이 코로나19 방역 조치를 이유로 해군계통 상부 지시로 실종자에게 사격을 가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여기까지는 사건을 두고 큰 논란이 없어 보인다. 문제는 군이 이씨가 자진 월북을 시도한 것이라고 덧붙이면서 불거졌다. 군은 이씨가 구명조끼를 착용했고, 선박에서 이탈할 때 자신의 신발을 선박에 벗어놨다는 것을 월북 판단 근거로 제시했다. 아울러 이씨가 해류 방향을 잘 알고 있고 해상에서 소형 부유물을 이용했으며, 북한 선박에 월북 의사를 표시한 점 등을 들어 자진 월북을 시도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해경도 현장 조사 결과 사전에 이씨의 월북 징후가 없었다면서도 월북 가능성을 배제할수 없다고 했다. 해경은 이씨가 평소 사용한 어업지도선 내 침실에서 그의 휴대전화는 발견되지 않았으며 유서 등도 없었다고 밝혔다. 탐문 조사 결과에서도 동료들은 평소 이씨로부터 월북과 관련한 이야기나 북한에 관심을 보이는 듯한 말은 듣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해경은 이씨 실종 후 8일이 지난 29일 언론 브리핑을 열고 군 당국으로부터 확인한 첩보 자료와 표류 예측 분석 결과 등을 토대로 월북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윤성현 당시 해경청 수사정보국장은 “어제 수사관들이 국방부를 방문해 확인했다”며 “실종자는 북측 해역에서 발견될 당시 탈진한 상태로 부유물에 의지한 채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실종자만이 알 수 있는 이름, 나이, 고향, 키 등 신상 정보를 북측이 소상히 파악하고 있었고 그가 월북 의사를 밝힌 정황 등도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또 “(이씨가) 사망 전 수시로 도박했고 채무도 있었다”며 “정신적 공황 상태에서 현실 도피 목적으로 월북한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북한이 그를 살해하고 시신을 불태우면서 북한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커질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당시 그가 월북을 시도했다는 정부의 발표에 비난의 화살은 북한과 우리 정부에서 이씨로 방향을 바꿨다.
◆군·정보 당국 “월북 확실”, 유가족 “책임 회피 시도” 반발
당시 군과 정보당국 관계자는 언론을 통해 “이씨가 월북을 시도했던 것이 확실하다”며 “이를 뒷받침할 근거 역시 확보하고 있다”고 밝힌바 있다. 하지만 유족들은 월북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반발했다.
이씨의 친형은 “(동생이 타고 있던) 선박에 공무원증과 신분증이 그대로 있었다”며 “북한이 신뢰할 공무원증을 그대로 둔 채 월북을 한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또 “바다에서 4시간 정도 표류하면 정신이 혼미해지고 공포가 몰려온다”며 “동생이 실종됐다고 한 시간대 조류의 방향은 북한이 아닌 강화도 쪽이었으며 지그재그로 표류했을 텐데 월북을 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군 당국이 책임 회피를 위해 월북한 것으로 몰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동생이 실종된 뒤) 24시간 이상을 우리 영해에 머물렀을 텐데 그 시간 동안 발견을 못 하고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냐”며 “국방부는 북한이 동생에게 총을 쏘는 광경을 봤다고 하는데 그것만 봤다는 것인지 이전에는 무엇을 했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동생을 나쁜 월북자로 만들어 책임을 피하려는 시도가 아닌지 의문”이라며 “동생이 우리 영해에 있었던 미스터리한 시간을 덮으려는 것으로 의심이 든다”고 강조했다.
유족 측은 조심스럽게 실족 가능성 등도 제기했지만, 해수부는 그렇게 보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유족은 키가 180㎝인 이씨가 허벅지 높이인 난간 너머 바다에 빠졌을 가능성이 있고 해당 어업지도선으로 옮긴 지 3일 정도밖에 안 된 적응 기간이었다는 점을 실족 가능성의 근거로 들었다. 그러나 해수부는 “(이씨가 배에) 슬리퍼를 가지런히 벗어놓았고 사고 당일 기상이 아주 양호했고 위험한 상황은 아니었던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최근 이 사건 재조사 결과가 뒤집히자 유족 측은 당시 군 당국과 경찰 수사가 ‘월북’에 맞춰져 꾸며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족들은 지난 17일 “(이전 사건 수사는) 전 정권의 국정농단”이라며 “당시 누군가의 지시에 의해 월북 프레임을 만들려고 조작된 수사를 한 것”이라고 했다. 유가족 법률대리인 김기윤 변호사는 이씨가 탔던 어업관리선 무궁화10호 직원들의 해경 진술조서를 제시하며 당시 수사 당국이 편집적으로 증거를 공개했다고 주장했다.
◆180도 바뀐 수사결과…해경과 국방부, 서로 책임 떠넘기나
앞서 지난 16일 해경과 국방부는 이씨가 자진 월북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발표한 2년 전 중간 수사결과를 뒤집으면서 ‘정권 맞춤식’ 수사를 한게 아니냐는 비판에 직면했다. 게다가 해경과 국방부는 종전과 판단이 달라진 구체적인 근거는 제시하지 못하면서도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을 보이며 논란을 키우는 모양새다.
박상춘 인천해경서장은 이날 “피격된 공무원의 월북 여부를 수사했으나 북한 해역까지 이동한 경위와 월북 의도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씨의 월북 판단 근거로 제시한 국방부 첩보 자료 등으로는 월북을 단정할 수 없다”고 수사 결과를 180도 바꿨다. 김대한 인천해양서 수사과장은 “그때는 수사를 진행하는 단계였고 중간 브리핑을 한 것”이라며 “당시 국방부 자료를 신뢰하지 않을 수 없었고 정황 등을 토대로 (월북으로) 판단했지만 (수사 결과 월북으로) 인정할 만한 게 없었다”고 해명했다.
국방부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피살 공무원이 월북을 시도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함으로써 국민께 혼선을 드렸으며, 보안 관계상 모든 것을 공개하지 못함으로 인해 보다 많은 사실을 알려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해경의 수사 종결과 연계해 관련 내용을 다시 한 번 분석한 결과, 실종 공무원의 자진 월북을 입증할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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