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은 비자림로 숲은 여러 갈래로 분절돼 있었다. 한가운데 놓인 은색 철조망은 홀로 빛났고, 한참을 따라 걸어도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군데군데 뿌리째 뽑힌 나무 그루터기가 나뒹굴었다. 중장비에 짓이겨진 토양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공백으로 남아 있었다. 생물종 ‘보호’를 목적으로 설치된 철망은 생사를 가르는 경계선 역할을 하고 있었다. 벌목이 시작되면 한쪽 숲은 완전히 사라질 것이고, 다른 한쪽은 연명할 것이다. 곧 사라질 운명 앞에 놓인 숲의 마지막 얼굴을 기록했다.
비자림로는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 거슨세미오름과 칡오름 사이 골짜기를 지나는 왕복 2차선 지방도다. 2018년 8월, 제주도는 제주시 구좌읍 대천교차로부터 금백조로 입구까지 2.9㎞에 달하는 구간을 4차선으로 확장하는 공사에 돌입하면서 비자림로 가장자리 숲을 훼손했다. 삼나무 1000여그루가 베이는 등 주변 식생이 초토화됐다. 그 광경이 언론에 공개됐고, 난개발을 우려하는 반대 여론에 휩싸이면서 공사는 사흘 만에 잠정 중단했다. 이듬해 3월에 공사가 재개됐으나, 해당 구간에서 멸종위기 생물종 다수가 발견되면서 다시금 중단됐다. 애당초 ‘법정보호종 서식지가 없다’라고 기록한 환경영향평가가 엉터리였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이후 제주도는 2020년 5월에 환경훼손 저감 대책에 대한 계획을 마련하지 않은 채 공사를 강행했다가 영산강유역환경청으로부터 환경영향평가법 위반에 따른 과태료 500만원 처분을 받았다.
번식기를 맞은 6월의 비자림로 숲에서는 온종일 새소리가 멎지 않았다. 지난달 22일부터 24일까지 3일간 공사 구간을 걸으며 모니터링을 진행했다. 21일 정오에는 두견이(천연기념물 제447호)가, 22일 새벽녘에는 팔색조(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천연기념물 204호)가, 22일 오후에는 긴꼬리딱새(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가, 22일 초저녁에는 솔부엉이(천연기념물 324-3호)와 맹꽁이(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가 울음소리로 존재를 알려왔다.
2019년 6월 시행된 비자림로 확포장 공사 구간 생태 정밀조사 결과는 여전히 주목할 만하다. 팔색조, 긴꼬리딱새, 붉은해오라기 등 총 7종의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종이 서식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붉은해오라기는 국제적 멸종위기종으로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멸종취약’ 동물로 분류한 ‘판다’보다도 적은 수가 남아 있다. 식물류 조사에 참여한 김종원 계명대 교수(생명과학부)는 보고서에서 “비자림로 확포장 공사 구간이 제주도 중산간 이하 지역에서 유일하게 잔존하는 생물다양성 핵심지역(biological hot-spot)가운데 하나”라고 서술했다. 조류학자 나이얼 무어스(Nial Moores) 박사는 “희귀한 새들이 높은 밀도로 존재하는 비자림로는 세계적으로 매우 보기 드문 자연환경”이라면서 “비자림로의 도로 확장 시행을 위해 식생을 제거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조류종의 지역 개체군 감소를 불러올 가능성을 높이고 세계적 개체군 감소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제주도는 지난 5월17일 비자림로 확장공사를 재개했다. 공사 구간에 법정보호종 보호 울타리를 설치하고, 애기뿔소똥구리, 두점박이사슴벌레 등 법정보호종을 포획해 공사 구간 밖 ‘대체서식지’에 방사하는 등 환경 영향 저감 대책을 이행했다고 제주도는 밝혔다. 이에 대한 전문가들의 견해는 회의적이다. 김산하 생명다양성재단 사무국장은 “‘고유한 서식지를 파괴한다’는 명제 자체에 변함이 없는데, 환경 영향을 저감했다고 말하는 건 모순적이다”라며 “서식지를 보전하는 것 외에 저감 방안이라고 할 수 있는 건 없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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