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신용자들 불법사금융으로 몰려
급전 상환 못하자 연이자 3476%
은행금리 연동 유연한 대처 필요
약자보다 강자에게 더 많은 짐을 지워야 ‘정의’라는 주장은 늘 솔깃하다. 따라서 “신용이 높은 사람은 낮은 이율을 적용받고, 경제적으로 어려워 신용이 낮은 사람들이 높은 이율을 적용받는” 현상은 구조적 모순인 거다. 연 24% 법정최고금리를 20%로 인하할 때 문재인 전 대통령의 소신 발언이다.
‘정의’를 앞세운 최고금리 인하 압박은 줄기차게 이어진다. 아예 13~15%로 낮추는 이자제한법 개정안도 발의됐다. 경기연구원은 11.3~15%를 제시한다. 저축은행·여신전문금융업 등 제2금융권 평균 신용대출 금리가 13~15%다. 대부업계 신용대출 금리는 16%다(금감원 대부업 실태조사 결과). 개정안은 소액자금 대부 영업의 존립을 부정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약자의 짐’은 여전히 무겁다는 명제 앞에 이런 주장은 변명에 불과해 보인다.
7월은 법정최고금리 인하 1년째다. 그동안 벌어진 실상은 취약계층 배려 의도와 사뭇 다르다. 작년 7월 최고금리 인하 후 6개월 만에 대부업 이용자 수가 11만명 줄었다(123만명→112만명). 금융위가 예상한 3만9000명보다 세 배 많다. 제도권 대출시장에서 퇴짜맞고 절벽 아래로 추락한 거다. 불법 사금융 먹잇감으로 내몰릴 가능성이 크다.
금감원이 파악한 피해 사례는 충격적이다. 급전 30만원이 필요한 장모(某)씨. 장문의 글을 대출 사이트에 게시했다. 5분 후 불법 대부업자로부터 응답이 왔다. 일주일 이자 20만원에 연체 시 주당 20만원 연체 수수료 부과. 이 대출 조건은 연간이자율 3476%다! 대출금 상환이 지연되자 폭언과 협박이 시작됐다. 최고금리 인하가 취약 서민층을 살인적 고금리 사채시장으로 내몰 수 있음을 보여준다.
문제는 대부업 이용자 신용대출 목적이 주로 ‘기초생활비’(43.6%)라는 점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6월 생활물가 상승률도 역대급 7.4%다. 대출 거절은 곧바로 서민 생계를 위협한다. 대부업 이용자 112만명 상당수가 맞닥뜨린 냉혹한 현실이다.
생계용 급전이 절실하면 금리 수준 따질 겨를이 없다. 금리 불문 빌려야 생존이 가능하다. 하지만 저신용 한계차입자는 최고금리(20%)로 못 빌리면 다음 선택지는 3476% 살인 이자다. 서울 한복판에서 버젓이 벌어지는 끝장 드라마다.
개인에게 금융상품 선택의 ‘자유’를 보장했다면 피할 수 있는 비극이다. 개인의 자유가 최고금리 규제로 제한된 것이다. 법정최고금리의 유연한 조정이 필요한 이유다.
바야흐로 금리가 본격 급등하는 시기다. 3%이던 은행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7%로 뛰었다. 그래도 법정최고금리(20%)는 요지부동이다. ‘은행-저축은행-대부업’ 업권 간 금리 스프레드가 좁혀졌다. 대부업·저축은행의 경우 조달금리가 오르는데 대출금리는 붙박이(법정최고금리) 상태다.
저신용 차입자는 돈 빌리기가 더 어려워진다. 대부업계 리스크 관리의 희생 제물이 저신용자인 거다. 이럴 땐 최고금리 수준을 약간 올리는 게 저신용자 약자에게 득이 된다.
최고금리를 은행 대출금리 움직임에 연동시키는 시스템을 도입하면 어떨까. 최고금리를 법률에 단일 숫자로 명기하면 탄력조정이 불가능하다. 프랑스 법정최고금리는 고정돼 있지 않다. 소비자대출 금리 상한은 프랑스중앙은행(Bank de France)이 평가·고시하는 ‘금융시장 평균금리’에 연동돼 매분기 변동된다.
대부업계의 자금조달 채널 다양화 요구도 전향적으로 수용할 과제다. 공모사채 발행과 자산유동화 허용을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어찌 보면 상당수 대부업 이용자는 국가가 복지 차원에서 끌어안아야 할 대상일 수 있다. 국가가 할 일을 대부업이 떠안은 모양새다. 대부업계를 너무 옥죄면 그 피해는 저신용 서민이 입는다.
참새 떼가 들판 곡식을 축내자 마오쩌둥(毛澤東)은 참새 박멸을 지시한다. 천적 참새가 사라진 들판은 메뚜기 차지가 됐다. 더 많은 곡식이 사라졌다. 결과는 3000만명이 굶어 죽은 1958∼1960년 중국 대참사다. 선의와 정의로 포장된 그럴듯한 정책은 매번 취약계층을 지옥으로 인도한다. 최고금리 규제는 예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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