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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12만권 젖고 찢어져 폐업” 폭우 후폭풍에 자영업자들 ‘망연자실’ [밀착취재]

입력 : 2022-08-12 09:30:00 수정 : 2022-08-12 14:3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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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 피해 컸던 성대전통시장·남성사계시장 둘러보니
영세상인들, 폭우·고물가·코로나 삼중고에 한숨
“추석 대목이 코앞인데 장사 공치게 생겨”
11일 서울 동작구 상도동 성대전통시장의 한 만화가게가 지난 8일 내린 폭우로 쑥대밭이 돼 있다. 가게에 있던 만화책 12만권 대부분이 젖어 가게 사장 신모(61)씨는 폐업을 결정했다고 전했다.

 

“10년 넘은 가게예요. 그만큼의 세월이 차곡차곡 쌓인 책들이 12만권이 넘습니다. 다른 곳에 없는 희귀한 책들이 한가득인데 흙탕물에 푹 젖고 찢어져 살릴 수가 없네요. 피해 규모만 1억8000만원이에요. 도저히 감당이 안 돼서 폐업 절차를 밟고 있어요. 계속 방치할 수 없어서 치우고는 있는데, 자식 같은 책들이라 그냥 눈물만 계속 납니다.”

 

수도권을 강타한 집중호우가 거의 소강상태에 들었지만, 그 뒤 남은 자영업자들의 한숨은 깊어져만 간다. 지난 11일 서울 동작구 상도동 성대전통시장에 있는 오래된 만화방을 찾았을 때 입구에서부터 의자 등 가구들이 2m 넘게 쌓여있는 모습을 마주했다. 지하 1층으로 한 발 한 발 내려갈수록 점점 기운은 습해졌고, 실내에 들어서자 책 수만 권이 물에 잠겨 널브러져 있는 광경이 펼쳐졌다. 3년 전 이 만화방을 인수했다는 신모(61)씨는 지난 8일 밤부터 있었던 폭우로 가게가 물에 잠겨 더 이상 장사를 할 수 없게 됐다고 전했다.

 

신씨는 “지하 1층에 만화방이 위치하는데, 입구 쪽 계단, 1층 화장실, 외부에 있는 환풍구 등으로 빗물이 쉴 새 없이 들어차 80평 가까이 되는 공간이 몇 분 만에, 제 가슴 높이까지 잠겨버렸다”며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옛날 책들도 정말 많은데 계속 멍하기만 하다”고 눈물을 내보였다. 같이 책을 치우고 있던 한 직원도 “폭우 탓에 한순간에 직장을 잃어 백수가 됐다”며 “나이가 60이 넘는데 어디 가서 또 일자리를 구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 만화방 뿐 아니라 성대전통시장 내에 있는 다수의 가게들이 침수 피해로 정신없는 모습이었다. 지난 8일 내린 폭우 이후 이틀여 정도가 지났지만 자영업자들은 “조금씩 내리는 비로 물건을 정리하기 쉽지 않다”며 “어디에서 물만 조금 튀어도 비가 다시 오는 것일까 흠칫 놀랄 정도로 트라우마가 생겼다”고 호소했다. 영세한 상인들이 많은 이곳은 이번 폭우로 120여곳의 점포 중 100여곳이 피해를 입은 것으로 전해졌다.

 

차츰 장사를 재개한 상인들도 많았지만 곳곳에서 잊을만하면 흘러나오는 흙탕물로 힘들어하는 모습이었다. 음식점을 운영하는 김모씨는 “먹고 살아야 하니 장사를 일단 시작하긴 했지만, 버린 물건들도 많고 정신없는 상태”라고 전했다.

11일 서울 동작구 상도동 남성사계시장의 한 가게 앞에 지난 8일 내린 폭우로 젖은 가구들이 나와있다.

 

폭우 피해가 컸던 인근 동작구 남성사계시장 상인들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폭우에 고물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까지 겹쳐 “정말 다 때려치우고 싶은 심정”이라고 입을 모아 하소연했다. 이날도 구청 직원, 군인, 자원봉사자들이 한 데 모여 피해 복구를 도왔지만, 정들었던 물건들을 떠나보내는 상인들의 얼굴은 어둡기만 했다. 이들은 구청에서 포클레인을 동원해 가게 곳곳을 막은 쓰레기를 치우자 망연자실한 얼굴로 이를 바라봤다.

 

과일을 판매하던 한 상인은 “추석 대목이 이제 곧인데 공치게 생겼다”며 “저지대에 위치한 상점들이 큰 피해를 봐서 영업을 언제 재개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3년째 음식점을 운영해오고 있다는 이모씨도 “전 재산을 털어 가게를 열었는데 열자마자 코로나19가 닥쳐 ‘곧 나아지겠지’라는 생각으로 이를 악물고 버텼다”며 “하나하나 발품 팔아 들인 냉장고, 에어컨, 식기들이 빗물에 잠겨서 버리게 됐다”고 했다.

 

이씨는 “왜 이렇게 인생이 힘든지 모르겠다”며 “천재지변이라지만, 제 잘못도 아닌데 제발 누구라도 도와줬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고개를 떨궜다.


글·사진=김수연 기자 sooy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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