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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은 복합문제 교육부 혼자 못 풀어… 대통령의 ‘시대정신’ 필요” [세상을 보는 창]

입력 : 2022-08-30 23:00:00 수정 : 2022-08-30 20:5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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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전문가 배상훈 교수

尹정부 출범 후 교육개혁 ‘난맥상’ 보여
만5세 취학·유보통합 등 논란만 키워
교육부장관, 정책 실험하는 자리 아냐

디지털 인재 100만 양성 방안 등 정책
과거 규제적 틀 유지하면 성공 힘들어
수도권·지역 대학 상생방안 찾아내야

혁신 위해선 ‘학습주도성장’ 가장 절실
비전 없는 ‘갑툭튀’ 정책 부작용만 양산
국교위, 교육부와 역할 분담 모호 문제

윤석열정부가 출범한 지 100일이 훌쩍 넘었지만 교육개혁은 헛돌고 있다. ‘만 5세 입학’ 등 설익은 학제개편과 ‘유보(유치원·어린이집)통합’은 거센 후폭풍에 직면하면서 박순애 교육부총리의 사퇴로 이어졌다. 수도권 대학 정원확대와 지방재정교부금 개혁 역시 고사위기에 놓인 지방대와 일선 교육감들의 반대가 만만치 않다. 백년대계라는 국가 중장기 교육정책을 담당할 국가교육위원회마저 정상적으로 출범하지 못한 상황에서 교육수장 공백도 이어지고 있다. 25일 만난 배상훈 성균관대(교육학) 교수는 “교육문제만큼은 대통령의 시대정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교육정책과 인적자원개발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고는 제36회(1993년) 행정고시에 합격해 교육부, 청와대 교육비서관실에서 일한 교육 전문가다. 배 교수는 “교육 문제는 경제, 인구, 사회 여러 문제와 얽혀 있어 교육부 혼자 풀기 어렵다”면서 “나라의 미래를 설계하는 마음으로 개개인이 가진 잠재력을 꽃피울 새로운 인재양성 패러다임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수는 교육문제에 있어 대통령의 ‘시대정신’을 강조했다. 지난 25일 인터뷰에서 배 교수는 “교육정책에서 신뢰가 중요하다”면서 “핀셋 처방이 아니라 개인의 잠재력을 키울 인재양성 패러다임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재문 기자

―교육부총리가 갖춰야 할 자질은.

“교육정책은 각 과제들이 긴밀히 연결되어 있고, 이해관계자가 많은 복잡한 영역이다. 그런 면에서 교육부 장관은 교육 철학과 비전은 물론 정책의 역사성, 맥락까지 꿰뚫고 있어야 한다. 만 5세 취학연령 하향 논란에서 보듯 정책을 개인의 경험, 소수 의견을 들어 독단적으로 처리하다 보면 일을 망치거나 보신주의적 관료들에게 포획된다. 교육부 장관은 정책을 실험하는 자리가 아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전문성과 도덕성을 모두 갖춘 사람을 찾아야 한다.”

―만 5세 취학 논란 등으로 교육개혁에 대한 불신만 키웠다. 조기입학은 필요한가.

“어릴 때부터 양질의 유아교육을 제공하고 교육적 양극화를 줄이려는 문제 의식은 타당하고 시의적절했다. 유아 단계에서 생긴 격차는 평생 가는 만큼, 질 높고 공정한 교육적 개입이 필요하다. 학부모 마음과 파급효과를 세밀히 확인하지 못한 것이 패착이다. 정치는 본래 인기영합적 성격을 지니지만, 정책은 그래서는 안 된다. 유아교육을 명실상부한 공교육 체제로 편입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국민과 소통하면서 추진했더라면 윤석열정부의 최대 성과가 되었을 수도 있다.”

―대안으로 내놓은 ‘유보통합’ 역시 논란이 적지 않다.

“만 5세 학생은 국공립·사립 유치원, 어린이집 등 다양한 기관에 간다. 교육 여건이 다르고 부모의 선호도가 다른 데다 이름난 유치원은 대기표까지 있는 게 현실이다. 유치원과 어린이집 과정을 통합하는 ‘유보통합’은 교육계와 보육계가 30년 가까이 논쟁 중인 사안이다. 누리과정(3∼5세 유아교육)이 도입되긴 했지만, 교육부, 보건복지부 등으로 업무가 나눠져 있다. 교사 양성기관과 체제도 구분돼 있고, 처우도 다르다. 정부가 큰 틀의 비전과 로드맵을 제시하고 제도개선과 재정지원을 약속해 신뢰를 얻어야 성공할 수 있다.”

―수월성 교육을 주장하던 윤석열정부가 느닷없이 ‘외국어고 폐지’를 들고 나왔다.

“자율과 다양성을 추구하는 게 교육의 본질이다. 주전자에 김이 나오는 구멍이 없으면 주전자가 폭발한다. 분출구 없이 인위적으로 틀어막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제도적 억압은 ‘꼼수’를 가져온다. 하지만 국가 교육과정 체제에서 교육을 약육강식, 각자도생의 시장원리가 넘치는 정글에만 맡기면 교육에서 공정을 이룰 수 없다. 대입제도가 바뀌면 사교육이 번성하듯, 정책이 불안하면 취약계층이 피해를 본다. 정책의 안정성 측면에서 기존 체제를 가급적 유지하되, 자사고든 특목고든 설립 취지에 어긋나는 학교를 엄정한 평가로 골라내는 방식이 최선이다.”

―대학정원 규제해소, 반도체 및 디지털 인재 100만명 양성 등을 내놨다. 문제점은 없나.

“교육과 관련된 법과 제도, 정책이 과거의 규제적 틀을 유지하고 있는데 새로운 수요가 담긴 정책을 펼치다 보니 엇박자가 난다. 과거의 고등교육법령과 아날로그 시대에 만들어진 대학설립운영 4대 요건을 바꾸지 않으면 창의적 인재양성은 요원하다. 반도체를 가르칠 교수는 부족하고 인건비가 비싸다. 언제 산업의 트렌드가 바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등록금 동결로 재정이 열악한 대학은 모든 교수를 전임으로 채용할 수 없다. 기업과 대학이 교수 인건비를 분담해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민간교육기관인 휴넷, 멀티캠퍼스 같은 곳은 자기 소유 건물이 아닌 곳에서 학생을 찾아가 가르친다. 온라인 학습을 위해 디지털 학습 플랫폼을 활용한다.”

―수도권 대학 정원확대와 학령인구 감소로 지방대 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은.

“지역대학과 수도권 대학은 공동 운명체다. 지역대학이 위태로우면 교수 요원을 길러내는 수도권 연구중심대학의 대학원도 힘들어진다. 교육 생태계에서 각 주체는 상생해야 한다. 시간문제일 뿐 하나가 희생되면 다른 하나도 궁극적으로 쇠퇴하기 마련이다. 반도체 인력을 생각해보자. 고급 인력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제조·공정에 필요한 중급 기술 인력도 필요하다. 지역대학이 맡을 수 있는데 교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공유대학 모델로 수도권 대학과 지역대학이 윈-윈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디지털 기술을 접목하면 수도권 대학 교수나 기업 전문가의 수업을 전국 어디에서나 들을 수 있다. 구시대 유물인 학과와 정원 개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초중등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일부를 고등교육에 활용하려 하자 시도 교육감 반대가 거세다.

“재정은 누구나 모자란다고 주장한다. 국가 차원 우선순위에 따른 전략적 투자가 필요하다. 지난해 전국 시도교육청 교부금이 6조6000억원이 넘는다. 초중등 분야는 상대적으로 재정적 여유가 있지만, 고등교육 분야는 재정 결핍이 누적되고 경쟁력을 상실하기 직전이다. 불균형적인 교육 발전은 교육 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친다. ‘남으니 뺏는다’는 식은 반발만 키운다. 설득과 조율이 필요하다. 교육계에는 그런 합의를 이룰 교육적 양심이 있다. 단순히 예산 일부를 옮기는 편의적 접근은 적절하지 않다. 과감한 규제 완화 등과 더불어 부실대학에 쓰이지 않는 방안도 강구해야 한다.”

―코로나 학력격차가 심각한 상황에서 일부 보수 교육감을 중심으로 학업성취도 평가 부활 움직임이 활발하다. 학력제고는 필요한가.

“기초학력 미달이 늘어나는 것은 개인적, 국가적으로 문제다. 학력 부족으로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면 자존감이 떨어져 수업을 두려워한다. 초저출산 시대 국가경쟁력을 유지하려면 학생 하나하나의 잠재력과 역량을 최대한 키워야 한다. 맞춤형 개별화 학습을 위해서도 진단은 필요하다. 병을 치료하려면 정확한 진단이 필요한 원리와 같다. 학생의 학업 성취 평가를 막는 것은 교육자로서 책임을 저버린 것이다. 정책이 성공하려면 평가과정에서 철저한 개인 정보 관리는 기본이다. 점수로 학교를 서열화하는 것도 막아야 한다.”

―교육분야에서 종합적 로드맵이 아닌 대증적 핀셋 처방만 나오는 이유는.

“우리에게는 사람이 가장 큰 재산이다. 과거 정부에서 ‘소득주도성장’을 얘기했지만, 우리에겐 ‘학습주도성장’이 필요하다. 혁신이 없으면, 현 상태를 유지하기는커녕 뒤처진다. 요즘 교육계에 5세 입학, 반도체, 디지털, 코딩 등 정책이 비전과 로드맵 없이 나온다.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오다)’다. 경제 못지않게 교육도 신뢰가 중요하다. 신뢰가 없는 상황에서 정책을 제시하면 먹히지도 않을뿐더러 사교육만 팽창하고, 학생과 학부모는 해외로 눈을 돌린다. 나라의 교육을 어떻게 끌고 갈지 큰 그림을 보여주고 하나씩 추진해야 국민이 믿고 따라온다. 핀셋 처방이 아닌 패키지 전략이 필요하다.”

―교육부 수장도 중요하지만 대통령 주변에 교육참모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다.

“교육부가 부총리급으로 격상됐지만 예산을 비롯한 정책 수단이 없다. 대통령과 교육계를 이어줄 사람이 없다. 복잡하게 얽힌 교육 문제를 대통령이 모두 알 순 없다. 교육 문제에 관해 정책의 역사성, 맥락, 이해관계 의견, 해외사례 등을 조언할 수 있는 수석급 비서관이 필요하다. 임기 초에 시작해야 한다.”

―국가교육위원회가 출범하지 못하고 있다. 문제점은 무엇인가.

“중장기적, 탈이념적 관점에서 예측 가능한 교육정책을 운용하는 것은 오랜 숙원이다. 다만 교육부와 역할 분담이 모호하고 다툼이 생길 여지가 크다. 중앙행정기관의 역할을 부여받았지만 방송통신위, 금융위처럼 정부조직법에 근거를 두지 않은 건 문제다. 국교위 위원의 대다수를 전문가보다 대통령과 국회, 이해집단이 추천·지명하도록 하는 건 교육의 정치적 중립을 위협하고, 갈등만 초래할 수도 있다. 출범에 앞서 제도적 허점을 바로잡아야 한다.”


김기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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