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환, 끝나지 않은 이야기/민병래/ 원더박스/ 2만원
0.75평 감옥에 투옥 중이던 1965년, 북한 군관학교 출신 남파 간첩 양원식씨는 자신의 편지를 조작한 ‘밀서 사건’으로 억울하게 추가 기소가 되면서 10년형이 추가됐다. 1960년 노동당 대남공작사업을 위해 세 번째 남파됐다가 신혼여행 도중 체포됐고, 이듬해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그였다.
그는 재판 과정에서 방어를 위해 교정당국에 집필을 요청했다. 이때 은밀하게 종이와 볼펜을 줄 테니 ‘전향서’를 쓰라는 당국의 압박을 받았다. 고민을 했지만, 자신이 옥중으로 있는 동안 어머니를 모신 아내를 지키고 무죄를 소명하기 위해 그들이 내미는 종이를 읽어보지도 않고 도장을 찍을 수밖에 없었다. 그날 이후, 그는 ‘전향’으로 처리됐다.
30대에 시작된 징역은 29년 6개월이 흐른 뒤인 1988년 12월 광주교도소에서 풀려나면서 끝이 났다. 그를 막막한 60대로 만들어놓고.
그는 2000년 6월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에서 비전향 장기수 송환이 합의되고 그해 9월 63명의 비전향 장기수들이 북녘으로 돌아갔지만 여기에 포함되지 못했다. 자의가 아닌 집요하고 교묘한 회유와 기만에 의한 전향이었음에도, 순수한 ‘비전향’ 장기수가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올해로 93세인 양씨는 한 해가 다르게 허리가 구부정해지고 다리 힘도 빠져가지만 여전히 사상의 거처인 북한으로 돌아가겠다는 꿈을 버리지 않고 있다. “고향이 북쪽이 아니고 거기에 가족도 없지만, 죽음은 북쪽 땅에서 맞고 싶습니다. 그것이 제 정치적 삶을 완성하고 인생을 마무리하는 길이라고 생각하니까요.”
2000년 비전향 장기수들의 북송이 역사적으로 처음 이뤄졌지만, 양씨를 비롯해 제2차 북송은 더는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이명박 및 박근혜정부 시절 송환 이야기는 사라졌고, 문재인정부 때에도 2차 송환은 논의되지 않았다. 그 사이에 비전향 장기수들은 하나둘 세상을 떴고, 지금 살아있는 이들은 고작 9명 정도다. 지난 7월 말 향년 95세로 숨을 거둔 이두화씨처럼 귀환의 한을 품고 사라진 이들은 지난 20여년 동안 외로이 저세상으로 떠났다.
2년여 동안 비전향 장기수들의 삶을 기록해온 저자는 양씨를 비롯해 생존 장기수 11명을 만나서 그들이 지나온 삶과 현재의 심정, 소망을 책에 담았다. 저자는 “양씨를 비롯해 이들은 전향 공작에 의해 강제전향을 당했다고 해서 2000년 9월 제1차 송환에서 배제됐다”며 “올해가 가기 전 판문점을 통한 2차 송환이 이뤄지길 역사는 기다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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