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왕은 56개 주권국과 24억명으로 이뤄진 영연방 원수
매일 정부 보고받아…정부 임명·의회 법안 승인 등 왕 역할
불혹의 윌리엄 왕세자 차기 후계자…아내 캐서린 왕세자비
다이애나 숨진 뒤 공석이던 왕세자비 자리 25년만에 채워
영국에서 가장 오래 재위한 군주 고(故)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19일(현지시간) 국장을 끝으로 영면에 들었다.
‘웨일스의 왕자(Prince of Wales)’ 찰스 3세는 모친 엘리자베스 여왕이 별세한 지난 8일 왕세자 책봉 64년 만에 왕위를 승계했다. 웨일스의 왕자는 영국 왕실의 공식적 왕세자를 의미하는 작위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윈저 성으로 옮겨져 남편 필립 공 옆에 영원히 묻혔지만, 영국 왕실의 시간은 계속된다.
◆마침내 찰스 3세의 시간…대관식 풍경은
영국 왕실은 이제 엘리자베스 여왕의 시대가 마무리되고 이제 찰스 3세라는 새로운 왕의 시대를 열었다. 찰스 3세의 대관식은 내년 늦봄이나 초여름쯤 열릴 것으로 보인다. 준비에만 수개월이 걸리는 대관식에서 찰스 3세는 영국과 영연방 국가의 ‘원수’(元首)로서의 이름을 대내외에 선포하게 된다.
영국 왕의 대관식은 900여 년 전 이른바 ‘정복왕’으로 불리는 윌리엄 1세 이후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만 열려 왔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왕관을 수여받은 39번째 군주였고, 찰스 3세는 40번째다.
대관식의 클라이맥스는 영국 성공회 수장인 캔터베리 대주교가 국왕에게 ‘성 에드워드 왕’의 왕관을 씌워주는 장면이다. 왕관은 순금 재질로, 형형색색의 보석 444개로 꾸며져 있다. 1666년에 제작됐는데 무게가 2.23㎏에 달한다. 워낙 무거워 역대 국왕들도 대관식 당일에만 쓴다.
대관식에서 국왕은 또 ‘잉글랜드의 결혼반지’로 불리는 사파이어 반지를 오른손 약지에 낀다. 왼손에는 왕권을 상징하는 홀(笏·scepter)도 든다. 지휘봉처럼 생긴 홀에는 3106캐럿짜리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다.
왕실 결혼식과는 달리 대관식은 국가행사다. 비용은 정부가 부담하며 하객 명단도 정부가 관리한다. 다만 찰스 3세의 대관식은 1953년 엘리자베스 여왕 때보다 규모가 줄어들 전망이라고 가디언은 전망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1952년 2월6일, 아버지 조지 6세가 서거한 직후 여왕이 됐다. 그러나 대관식은 이듬해 6월2일에 열렸다. 여왕의 대관식은 텔레비전으로 생중계 된 첫 대관식으로 2000만명 이상이 시청했다.
◆영국 왕의 역할은…매주 총리와 논의·정부 임명·법안 승인
BBC에 따르면 왕은 영국의 얼굴이지만, 그의 권력은 상징적인 힘에 가깝다. 정치적으로도 중립을 유지하는 것이 보통이다. 왕은 56개 주권국과 24억명으로 이뤄진 영연방의 원수이기도 하다. 이중 ‘영연방 왕국’으로 알려진 14개 나라에선 군주로도 추대된다.
매일 아침 영국 왕에겐 정부의 일일 보고가 붉은색 가죽 상자에 담겨 전달된다. 중요한 회의의 요약본, 서명이 필요한 문서 등이다. 총리는 매주 수요일 버킹엄궁에서 왕을 만나 정부에서 논의되는 문제들을 왕에게 알리곤 한다. 이런 회의들은 완전히 사적인 것으로, 어떤 말들이 오갔는지에 대한 공식 기록도 남지 않는다고 BBC는 설명했다.
왕은 의회에서도 여러 역할을 한다. 먼저 정부 임명이다. 영국 총선에서 승리한 당의 대표는 버킹엄궁으로 불려가 왕으로부터 정부를 구성하라는 명을 받는다. 왕은 총선 전 정부를 해산한다. 왕은 개회식과 함께 매해 의회를 연다. 상원에서 진행되는 연설을 통해 정부 계획들도 전달한다.
의회를 통과한 법안이 효력을 가지려면 반드시 왕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다만 왕이 법안 승인을 거절한 마지막 사례는 1708년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왕은 각국 지도자들과 외국 대사들, 영국에 머무르는 고위급 인사들을 맞이하는 역할도 한다. 매년 11월 런던 세노타프에서 열리는 종전 기념행사도 진행한다. 또 찰스 3세의 얼굴은 우표와 지폐 등에 그려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얼굴을 대체하게 된다. 영국 여권에 쓰인 문구도 ‘여왕 폐하(Her Majesty)’에서 ‘폐하(His Majesty)’로 바뀐다. 국가(國歌)의 가사 또한 ‘신이여 왕을 구하소서’로 변경된다.
◆73세인 찰스 3세…이미 시선은 후계자 ‘윌리엄 왕자’에
최장 재위 군주였던 어머니 탓에 너무 늦은 나이인 73세로 왕위에 오른 찰스 3세는 재위 기간이 그리 길지 못할 전망이다. 더욱이 영국인들에게 찰스 3세는 엘리자베스 여왕보다 인기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이미 국민의 관심은 다음 후계자인 윌리엄 왕자로 향하는 모습이다.
영국 왕실은 현재의 군주가 서거하거나 퇴위하게 되면 순서에 따라 왕위 계승이 이뤄진다. 일차적으로 왕관을 물려받게 되는 적자는 군주의 첫째 자녀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첫째인 찰스는 어머니의 사망 후 왕이 됐고 그의 아내 카밀라는 왕비 직함을 얻었다.
찰스 3세의 적자는 큰아들인 윌리엄(40) 왕세자다. 왕위를 계승한 찰스 3세는 지난 10일 윌리엄에게 ‘웨일스의 왕자’ 작위를 수여했다. 이 자리에서 찰스 3세는 윌리엄 왕자의 아내인 캐서린 케임브리지 공작부인을 왕세자비를 뜻하는 ‘웨일스의 공주(Princess of Wales)’로 칭했다. 이 자리는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1997년 사망한 뒤 25년간 비어 있었다. 찰스 3세의 아내 커밀라는 끝까지 콘월 공작부인으로만 불렸다.
이로써 윌리엄 왕세자는 명실상부하게 왕위 계승 서열 1위를 확고히 했다. 윌리엄 왕세자의 큰아들 조지(9) 왕자, 둘째 샬럿(7) 공주, 막내 루이(4) 왕자가 왕위 서열 2∼4순위다.
배우 메건 마클과 결혼한 후 왕실과 갈등이 불거져 2020년 왕족 신분을 버리고 독립을 선언한 뒤 미국으로 떠난 찰스 3세의 둘째 아들 해리(38) 왕자는 왕위 계승 서열 5위다. 해리 왕자의 첫째 아들 아치, 둘째 딸 릴리벳이 서열 6, 7위다.
한편 찰스 3세가 왕세자 시절 결혼했으나 세자빈 호칭을 얻지 못했던 부인 커밀라는 왕비로 격상된다. 커밀라는 다이애나비가 사망한 지 8년 뒤인 2005년 오랜 연인인 당시 찰스 왕세자와 결혼했다. 하지만 오랜 불륜설에 시달렸던 과거 탓에 세자빈 호칭을 얻지 못했고, 찰스 3세가 왕위를 계승하며 왕비 호칭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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