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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로운 남원 서어나무숲에서 즐기는 가을 향기 [최현태 기자의 여행홀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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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9-25 10:21:51 수정 : 2022-09-25 10: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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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자락 남원 운봉읍 행정마을 200년 수령 신비한 ‘근육질’ 서어나무 100여그루 자라/제1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 대상 ‘생명상’ /인근 삼산마을 누운 소나무도 신기/구불구불 뱀사골계곡 거슬러 올라 만나는 와운마을 천년송엔 장수 기운 ‘듬뿍’

서어나무숲 전경

매일 몸을 단련하는 남자처럼 단단한 근육을 몸통에 갑옷처럼 두른 거대한 나무. 하늘을 향해 힘차게 뻗은 가지 위로 녹색 이파리가 울창해 한낮의 뜨거운 태양마저 모두 삼켜버린다. 오로지 짙은 회색나무들만이 숲을 꾸민 신비롭고 몽환적인 풍경. 나만 알고 싶은 행정마을 서어나무숲에 앉아 멍때리며 가을을 맞는다.

서어나무숲

◆신비한 서어나무숲에서 즐기는 가을 향기

 

‘어머니의 산’ 지리산. 전북 남원, 전남 구례, 경남 함양·산청을 모두 품고 있으니 그 크기를 가늠하기 힘들다. 이런 거대한 지리산 자락을 따라 흩어진 120여개 마을을 이어주는 트레킹 코스 21개가 조성돼 있는데 ‘지리산 둘레길’로 모두 300km에 달한다. 서어나무숲은 1코스에서 만난다. 남원시 주천면 장안리 외평마을에서 출발해 내송마을∼구룡치∼회덕마을∼노치마을∼가장마을∼행정마을∼양묘장∼운봉읍으로 이어지는 14.7km의 비순환형 코스로 걸어서 넉넉하게 6시간은 잡아야 한다.

서어나무숲

경치가 수려한 곳이 많지만 으뜸은 운봉읍 행정마을 서어나무숲. 자작나무과에 속한 서어나무는 수피가 붉은빛이 도는 회색으로 수령이 오래될수록 회색이 짙어져 신비감을 더한다. 숲 입구에는 보라색 맥문동이 예쁘게 피어 여행자를 맞는다. 숲으로 걸어 들어간다. 어른 몸통 두 배는 넘는 200년 수령의 서어나무 100여 그루가 두툼한 근육질 뿌리를 땅에 강하게 박고 서 있는 모습은 매우 경이로우면서도 아름답다. 아니나 다를까. 2000년 제1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대상인 ‘생명상’을 받았다는 안내판이 예사롭지 않은 숲이란 사실을 전한다. 동네 어르신들이 벤치에 앉아 한가로운 시간을 즐긴다. 매일 숲을 산책한다는데 이런 숲이 바로 집 근처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서어나무숲
서어나무숲과 맥문동

사실 숲은 마을의 허한 기를 보강하고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200여년 전 조성됐다. 마을을 지키는 보호수로 서어나무를 선택한 이유가 있다. ‘근육질 나무’로 불릴 정도로 건강한 사내의 근육을 떠올리는 우람한 몸통이 보기만 해도 든든하기 때문이다.

 

숲은 면적 1600㎡로 아담하지만 매우 울창하다. 덕분에 늘 섭씨 15도 정도의 온도를 유지해 여름에도 에어컨을 틀어 놓은 것처럼 시원하다. 임권택 감독도 아름다운 서어나무숲에 반해 이곳을 영화 ‘춘향뎐’ 촬영지로 선택했다. 굵은 서어나무에 매달린 그네를 타고 있는 춘향을 몽룡이 훔쳐보는 장면이 서어나무숲이다. 새 소리만 들리는 곳이라 깊은 사색에 빠지기 좋다. 서어나무숲은 올해 생태녹색관광 육성사업지로 선정됐으며 오는 11월까지 매주 목∼토요일 피크닉 용품을 무료로 대여해 주는 ‘숲멍 피크닉’이 진행된다.

 

삼산마을 누운소나무숲
삼산마을 누운소나무숲

서어나무숲에서 차로 1분 거리에도 신기한 숲이 하나 더 있는데 삼산마을 누운 소나무숲이다. 내비게이션에 ‘운봉체육소공원’이나 ‘카페 늘파인’을 검색하면 나온다. 약 6600㎡ 숲에 30년은 훌쩍 넘은 소나무 100여 그루가 자라는데 대부분 용틀임하듯 옆으로 구불구불 가지를 뻗으며 누운 모습이 아주 독특하다.

와운마을 천년송

◆장수 기원 받아가는 와운마을 천년송

 

삼산마을을 떠나 와운마을 천년송을 만나러 지리산 더 깊숙이 들어간다. 지리산 계곡 중 가장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뱀사골계곡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지만 그리 어렵지 않다. 뱀사골탐방안내소에 주차하고 왼쪽 뱀사골 신선길로 접어들면 등장하는 편한 데크길을 따라가면 된다. 와운마을 천년송까지 왕복 4.6km 2시간 정도 거리여서 아이들도 쉽게 걸을 수 있다. 아주 오래전 산에서 굴러떨어진 거대한 너럭바위와 기암절벽, 크고 작은 폭포와 연못이 계곡을 꾸미고 바위 사이로 흘러내리는 장쾌한 물줄기가 가슴을 시원하게 씻어주니 걷기만 해도 힐링된다.

뱀사골계곡 데크길
뱀사골계곡

계곡이 북으로 14km가량 뱀처럼 구불구불 이어져 뱀사골로 불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름의 유래는 따로 있다. 1300여년 전 뱀사골 입구 송림사에서 매년 백중날(음력 7월15) 선택된 스님 한 명이 신선바위에 기도를 했다. 그런데 매번 다음날 사라져 신선이 돼 승천한 것으로 여겼단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한 스님이 그해에 뽑힌 스님 옷자락에 독을 묻혔는데 다음날 신선바위에 이무기가 죽어 있었다. 사실 그동안 사라진 스님은 이무기의 재물이었다. 이에 뱀이 죽은 골짜기란 뜻에서 뱀사골로 불리게 됐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뱀사골계곡
뱀사골계곡 요령대

계곡을 더 깊숙하게 들어가면 요룡대가 등장한다. 뱀사골계곡과 와운골계곡 물이 만나는 지점으로 마치 용이 머리를 흔들며 승천하는 모습이다. 와운교를 지나면 데크가 끝나고 ‘깔딱고개’로 불리는 일반 도로가 이어진다. 맑은 공기를 마시고 아름다운 산세를 즐기며 걸을 수 있으니 고개를 오르는 수고 정도야 힘들지 않다. 가든과 펜션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면 고지가 높아 구름도 쉬어가는 와운(臥雲) 마을의 시작. 해발 고도 800m의 골짜기 마을로 1592년 임진왜란 후 1595년쯤 영광 정씨와 김녕 김씨가 국난을 피해 산과 계곡을 헤매다 골이 깊고 산세가 웅장한 이곳을 최적의 피난처로 여겨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됐다.

 

천년송 할머니나무
천년송 할아버지나무
천년송 할머니나무

마을을 관통해 가파른 나무 데크 계단을 끝까지 오르면 명선봉과 구름바다를 배경으로 거느린 천년송이 기다린다. 우산처럼 여러 갈래 줄기를 아래로 펼친 반송 품종으로 높이 20m, 둘레 4m의 웅장한 크기와 용 비늘을 그대로 닮은 소나무 표피 덕분에 영험하면서도 힘찬 기운이 아주 강하다. 이름은 천년송이지만 수령은 500년 가까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할머니나무’라 부르며 마을을 지키는 당산나무로 여긴다. 10m 위쪽에 천년송보다 좀 작은 소나무 한 그루가 더 있는데 ‘할아버지나무’다. 두 나무는 2000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됐고 매년 초 마을 사람들은 소나무 앞에서 안녕을 기원하는 당산제를 올린다. 두 팔을 크게 벌려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세포 하나하나 천년송 기운으로 가득 채우니 뱀사골탐방안내소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구름 위를 걷듯 날렵하다.


남원=글·사진 최현태 선임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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