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 외교부 장관 해임건의안 표결을 앞두고 있던 29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은 고성과 야유로 얼룩졌다.
개의 시각인 오후 6시 본회의장에 차례로 들어서는 여야 의원들 손에는 ‘의회 폭거’(국민의힘), ‘외교 참사’(더불어민주당) 등 상반된 주장이 적힌 피켓이 들려 있었다.
이 가운데 국민의힘 의원 10명은 연단 앞에서 줄지어 피켓을 들고 1분간 서 있다 해산하며 거대 야당의 해임건의안 강행 처리에 반발하는 일종의 침묵시위를 벌였다.
김진표 국회의장이 오후 6시 6분 본회의 개의를 선언하자 여야 의석에서 웅성대는 소리가 점점 커지며 전운이 고조됐고 일촉즉발의 충돌 위기는 해임안 상정·표결에 앞서 진행된 여야 의사진행발언 때 현실화했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수석부대표는 “교섭단체 대표연설 본회의에서 첨예하게 대립되는 안건을 일방적으로 상정하는 것은 국회사에 전무후무한 일이다. 박진 장관이 무엇을 잘못했습니까”라며 “위법이나 불법이 있었다면 탄핵소추를 했을 것이다. 자신이 없으니 해임건의를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문재인 전 대통령이 중국에서 10끼 중의 8끼를 ‘혼밥’할 때, 기자들이 중국에서 폭행을 당할 때 여러분은 무엇을 했느냐”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민주당 의원들은 윤석열 대통령의 비속어 논란을 겨냥해 “욕설 사과”, “대통령이 욕하는 게 협치냐” 등의 구호를 연신 내질렀다.
이에 질세라 국민의힘도 “민주당 조용하라”, “과유불급, 부끄러운 줄 알아라”, “이재명 욕설, 이재명 욕설” 등으로 맞받았다.
송 원내수석이 발언하는 10여 분 내내 여야 공방전은 이어졌고, 급기야 김 의장은 “의사진행발언을 경청해 주길 바란다”며 만류에 나서기도 했다.
송 원내수석의 발언 종료 후 민주당 위성곤 원내수석부대표가 발언대에 서자 국민의힘 의원들은 약속한 듯 일제히 퇴장했다.
이들이 향한 곳은 본회의장 반대편에 있는 국민의힘 의원총회장(국회 예결위 회의장)이었다.
위 원내수석은 “이번 해임건의안은 윤 대통령의 해외순방 외교가 굴욕 외교, 빈손 외교, 막말 외교에 그쳤다는 국민의 엄정한 평가에 따른 것"이라며 "박진 장관을 비롯해 대통령실 외교라인은 전면 교체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욕은 대통령이 해 놓고, 방송국을 겁박하는 것이 공정이고 상식입니까”라며 “국민의힘은 언론 겁박을 즉각 중단하고, 대통령은 국민에게 사죄부터 하라”고 요구했다.
이후 김 의장은 본회의 개의 23분 만인 오후 6시 29분 해임건의안을 상정했다. 당초 민주당이 요구했던 것보다 한나절 늦은 상정이었다.
국민의힘과 정의당이 투표에 불참한 끝에 표결에는 총 170명 의 의원만 참석했다. 결과는 찬성 168표, 반대 1표, 기권 1표였다.
헌정사상 7번째 국무위원 해임건의안 통과였다.
투표가 이뤄진 본회의장 밖에선 국민의힘 의원들의 집단 농성이 진행됐다.
이들은 로텐더홀 계단 앞에서 “반민주·반의회·국정 발목잡기를 중단하라”라고 적힌 대형 현수막을 들고, 거야(巨野) 민주당과 민주당 출신 김 의장을 비판했다.
한편 해임건의안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할 방침이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날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해임 건의로 인한 정쟁의 피해는 오로지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며 이 같은 방침을 전했다.
당사자인 박진 외교부 장관은 “제 거취는 임명권자의 뜻에 따르겠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미 거대 야당이 일방적으로 주도한 해임 건의에 부정적 입장을 분명히 나타내며 거부권 행사를 시사한 바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용산 대통령실 출근길에 기자들에게 “박 장관은 탁월한 능력을 갖춘 분이고, 지금 건강이 걱정될 정도로 국익을 위해 전 세계로 동분서주하는 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어떤 것이 옳은지 그른지는 국민께서 자명하게 아시리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외교부는 박 장관의 30일 이후 일정도 미리 공개했다.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도 오후 브리핑에서 “해임 건의까지 갈 사안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고 밝혔다.
김 실장은 “지금 상황이 상당히 엄중하다”며 “총칼 없는 외교 전쟁의 선두에 있는 장수의 목을 친다는 것은 시기적으로나 여러 측면에서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해임 건의가 부당한 정치공세라고 보고, 애초 수용 여부를 고심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헌법으로 보장된 국회의 국무위원 해임 건의는 대통령에게 구속력을 갖지 않는다. 법률상 거부권 행사의 절차가 규정돼 있지도 않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통화에서 “윤 대통령이 어떤 방식으로 거부권을 행사할지 미정”이라며 “아무 언급도 안 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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