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부처 3곳 중 1곳만 예산안 제출
총 288개 사업… 11조8828억원 책정
2023년 나라살림 639조의 1.9%에 불과
프랑스는 배출 부추기는 예산도 평가
환경 영향에 따라 4色 꼬리표로 분류
이탈리아도 환경 보조금 평가해 관리
돈과 온실가스 감축이 ‘세트’가 되어 등장한 또 하나의 제도가 있습니다. ‘온실가스감축인지 예산제’라고 하는 것이죠. 이 제도는 올해 처음 시행돼 지난달 초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2023년도 예산안’에 첨부돼 있습니다. 온실가스감축인지 예산제가 무엇인지, 과연 산뜻하게 첫출발을 했는지 짚어봤습니다.
◆온실가스 감축은 알겠는데… 인지… 예산?
이름부터 살펴봅시다. 온실가스 감축이란, 말 그대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것이죠. 그럼 인지 예산이란 뭘까요?
우리나라 예산에 ‘인지’라는 단어가 붙은 건 온실가스감축인지 예산 말고 ‘성인지 예산’도 있습니다. 2010년도 예산부터 적용돼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죠. 성인지 예산은 정부가 돈을 쓸 때 남녀가 동등하게 혜택을 받는지 미리 예측해서 예산안을 만들고 평가를 해서 그다음 해에 또 반영하도록 한 제도입니다.
온실가스감축인지 예산도 비슷합니다. 국가 재정이 온실가스 감축에 미칠 영향을 분석해 예산 편성에 반영하고, 결산 때 결과를 평가해서 차기 예산에 반영되도록 한 것이죠.
두 제도 모두 성평등과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과제가 정부가 하는 수많은 일 사이사이에 스며들어 ‘주류’가 되도록 하자는 취지입니다.
첫 온실가스감축인지 예산서를 열어봤습니다. 40개 정부부처(청 단위 포함) 가운데 13곳이 관련 사업 예산을 제출했습니다. 총 288개 사업에 11조8828억원이 책정됐군요. 내년 총 나라살림 규모(639조원)의 1.9%에 해당합니다. 참고로 내년도 성인지 예산안에는 38개 부처가 302개 사업에 32조7123억원을 올렸습니다.
◆얼마나… 줄일 수… 있는데요?
드라마 가을동화에서 ‘얼마면 되겠느냐’는 원빈의 말에 송혜교는 이렇게 되묻습니다.
“얼마나 줄 수 있는데요?”
정부는 온실가스감축인지 예산서에서 약 12조원을 제시했습니다. 송혜교의 대사를 바꿔 이렇게 물어보겠습니다.
“얼마나 줄일 수 있는데요?”
예산서는 사업을 크게 3가지로 분류합니다. 온실가스 감축량이 숫자로 똑떨어지는 ‘정량사업’과 그렇지 않은 ‘정성사업’ 그리고 ‘연구개발(R&D) 사업’입니다. 정량사업은 288개 사업 중 70개가 있는데요, 이걸로 줄일 수 있는 양은 336만t입니다.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맞추려면 한국은 매년 2700만t(2021년 총 배출량 잠정치 및 2030년 순배출량 기준)씩 줄여가야 하는데, 아… 차이가 많이 나는군요.
내년도 부처별 온실가스 감축량을 보면 기획재정부가 153만t으로 제일 많고, 환경부가 83만t으로 뒤를 잇습니다. 우리나라 온실가스는 대부분 에너지에서 나오는데요,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의 감축량은 56만t으로 세 번째에 머물고 있습니다. 산업부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기후기금 중에는 기재부 소관이 많고, 탄소 포집·저장(CCS)처럼 지금은 개발 초기 단계지만 나중에 감축 효과가 두드러지는 사업들도 많다”고요.
물론, 온실가스 감축을 오로지 나랏돈으로만 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NDC와 예산서에 드러난 감축량이 차이가 나는 게 꼭 문제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럼, 이런 건 어떨까요.
농림축산식품부가 올린 사업 중에는 ‘저탄소 농림축산식품 기반 구축’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농민이 저탄소 농업기술을 적용해 온실가스를 줄이면 t당 1만원의 인센티브를 주는 자발적 온실가스 감축사업이라는 게 있는데요, 내년에 목표로 잡은 인증 실적이 75건(총 14억4000만원)입니다. ‘전국 100만 농가’를 떠올리면 온실가스 감축의 ‘주류화’는 아직 멀어 보입니다.
또, 2023년도 온실가스 감축사업 총 예산 규모(11조8828억원)는 시행 첫해임에도 불구하고 공교롭게 지난해보다 오히려 금액이 400억원 줄었습니다. 국토교통부의 노후공공임대주택 리모델링 예산은 반 토막(2800억원 감소) 났고요, 산업부의 신재생에너지금융지원 예산은 1549억원 줄어 두 번째로 감소폭이 컸습니다.
◆‘감축’만 인지하는 감축인지 예산제
뭐, 아쉽기는 해도 처음이니 너무 야박하게 굴지 말라고 하실지도 모르겠네요. 그런데 예산액이나 온실가스 감축 규모는 차치하더라도 곰곰 생각해보면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온실가스 ‘감축’ 인지 예산이라는 겁니다. 정부가 재정을 투입하는 일에는 온실가스를 늘릴 수 있는 요인이 숱하게 많지만, 이 제도에선 ‘감축’만 보겠다는 것이죠.
다른 나라는 어떨까요? 환경과 관련된 인지 예산에는 우리가 하는 방법만 있는 건 아닙니다. 지난해 허경선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쓴 ‘온실가스감축인지 예산제도의 도입과 적용 방안’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5가지 도구를 제시하는데요, 가장 널리 쓰이는 방법으로 예산에 ‘꼬리표’(tagging)를 다는 방법이 있습니다. 각 예산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해 점수를 매기거나 ‘긍정’, ‘부정’ 같은 꼬리말을 다는 것이죠. 이걸 가장 잘하는 나라로는 프랑스가 꼽힙니다.
프랑스는 우리처럼 ‘감축’만 인지하는 게 아니라 배출을 부추기는 예산도 다뤄요. 탄소 배출뿐 아니라 물, 폐기물, 종 다양성 등 6가지 부문을 놓고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합니다. 긍정적인 예산엔 녹색, 부정적인 건 갈색, 환경과 별 관련이 없으면 회색 예산이라 이름을 붙이고, 긍정과 부정이 섞여 있는 혼합까지 총 4가지의 꼬리표를 답니다. 예를 들면 친환경 자동차 구매 보조금은 녹색 예산이지만, 7.5t 이상 화물차 경유세 감면은 갈색 예산으로 평가되죠.
최근 2023년도 예산안도 이런 식으로 분류가 됐는데요, 제도 도입 첫해인 2020년(2021년도 예산)과 비교하면 녹색 예산은 273억유로(약 39조원)에서 339억유로로 늘었고요, 갈색 예산은 102억유로에서 107억유로로 살짝 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프랑스는 온실가스와 관련된 일부 사업만이 아니라 전체 국가 예산에 포함된 모든 사업을 평가합니다. 재정지출뿐 아니라 비과세나 감면 같은 조세지출도 다루고 있고요.
이탈리아는 매년 친환경 보조금과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보조금을 평가해 관리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예산도 감축만이 아니라 전체를 본다면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경상남도는 프랑스와 비슷하게 ‘기후 친화사업’, ‘기후 부정영향사업‘, ‘기후 잠재영향사업’, ‘기후 중립사업’으로 꼬리표를 다는 인지 예산제도를 운영 중입니다. 올해 국정감사 기간에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경남도의 기준을 토대로 국회예산정책처에 의뢰해 2021년도 정부 감면세액 분석 자료를 냈습니다. 결과를 보면 기후 친화로 평가된 감면액은 1조6018억원, 기후 부정영향으로 평가된 감면액은 1조6124억원으로 부정 평가액이 조금 더 많았습니다. ‘농업어업용 석유류에 대한 간접세 면제’가 대표적인 기후 부정영향 조세지출로 꼽혔죠.
최영수 숙명여대 교수(기후환경융합)는 “개인적으로 온실가스감축인지 예산이라는 이름보다는 기후예산제처럼 좀 더 포괄적으로 가는 게 좋겠다고 보고, 논의 초기에도 그런 논란이 있었다”며 “우리 현실에서 (프랑스처럼 하기는) 어려움이 있으니까 초점을 맞추기 위해 온실가스감축인지로 방향이 잡혔다. 지금 단계에선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 본다”고 설명합니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는 이야기겠죠. 원빈은 끝내 돈으로 사랑을 사진 못했지만, 온실가스감축인지 예산제는 부디 온실가스 감축을 이끌어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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