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웹을 지평선 삼아 등장한 만화가 있었으니 첫 웹툰 ‘쿨캣(스노우캣)’이다. 그 후 24년간 우리나라 웹툰은 폭발적인 팽창을 이뤘다. 국내 웹툰 시장 규모는 이미 1조원을 넘어선 지 오래다. 만화 종주국을 자부하던 애니메이션 강국 일본을 넘어 K웹툰은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유통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최소 1만편이 넘는 작품이 존재하고, 매주 약 1000편의 새로운 회차가 업데이트된다. 범람하듯 쏟아진 작품 가운데 웹툰 내비게이션을 집필한 조경숙·조익상·박범기·성상민 만화평론가 도움을 받아 우리나라 웹툰 세계에 입문하는 내비게이션이 될 만한 작품 8선을 소개한다.
◆일상의 순간 특별하게 그린 생활툰 어쿠스틱 라이프(난다)
명탐정 코난이나 짱구처럼 전혀 나이를 먹지 않는 주인공들도 있지만 생활툰 주인공들은 예외다. 약간의 시차는 있으나 현실과 작품의 시간은 거의 동일하게 흐른다. 난다의 ‘어쿠스틱 라이프’는 12개 시즌을 거치며 1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독자들과 인생을 함께 산 만화다. 개인과 사회의 변곡점이 어우러져 변화하는 것들이 작품 속에 섬세하게 담겼다. 우리가 무심히 스쳐 보낸 일상의 순간을 재치 넘치는 사유로 잡아챈다.
◆계약직 회사원 삶의 고단함 고스란히 미생(윤태호)
웹툰 가운데 가장 유명한 작품을 꼽으라면 ‘미생’은 반드시 처음 회자될 것이다. 직장인의 애환과 삶의 고단함이 엿보이는 깊이가 있다. 프로 바둑기사를 꿈꾸다 좌절한 고졸 학력 장그래가 대기업 원 인터내셔널 계약직으로 첫발을 디딘다. 사회초년생, 계약직 노동자 등에 대한 담론을 이끌어내며 만화가 미치지 못했던 사회적 영향력까지 보여줬다. 특히 드라마화 과정에서는 원작 만화에 대한 존중과 영상 매체의 차별점을 두루 드러내며 웹툰 지식재산권 확장의 모범이라 할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꿈의 세계 월주신이 건네는 작은 위로 쌍갑포차(배혜수)
이승과 저승이 만나는 꿈의 세계인 ‘그승’을 지배하는 월주신이 이승에서 사는 이들의 한을 풀어주는 이야기다. 월주신은 쌍갑포차를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각자 사연이 깃든 음식을 대접하고 그들 이야기를 들어준다. 월주신이 건네는 소주 한잔은 삶의 곤경에 마주친 이들에게 작은 위로가 된다. 구전설화를 재구성하여 만들어낸 세계관 안에서 삼신할머니, 저승사자, 염라대왕 등 인물들이 작가의 창작 인물들과 어우러진다. 무고한 이들이 억울하게 고통당할 때, 신들은 이들을 돕는다.
◆동화 ‘선녀와 나무꾼’ 현대 배경 재해석 계룡선녀전(돌배)
현대를 배경으로 재해석된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다. 계룡산 중턱에서 선녀다방을 운영하는 699살 선녀 바리스타 옥남 눈앞에 나무꾼, 사슴이 환생한 이현과 김금이 나타난다. 전생에 얽혔던 인연은 현생에서도 얽히며 그들을 괴롭게 만든다. 업보는 결국 풀리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게 된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탄탄한 스토리 전개는 이 웹툰의 백미다. 잔잔하게 시작되는 로맨스에 이어 곳곳에 산재한 웃음지뢰 폭탄까지, 울다가 웃다가 시간 가는 줄 모를 작품이다.
◆ ‘용비불패’ 후속… 무협 콤비들의 명작 고수(류기운·문정후)
1990년대 ‘신무협’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무협 장르가 시도되던 시기, 류기운과 문정후의 ‘용비불패’에 독자들은 열렬히 응답했다. 오랫동안 무협을 떠나 있던 콤비가 웹툰으로 돌아온 것. ‘고수’는 ‘용비불패’ 스타일을 2010년대에 맞게 변용하며 이어 나간다. 주인공 강룡은 속물적인 성격이며, 결코 정의롭지 않은 인물이다. 삶의 목표가 없는 강룡은 만둣집에서 일하며 하루하루를 보내지만, 무공은 그를 가만 내버려 두지 않는다. 강룡은 일상과 주변 사람을 지키기 위해 힘을 사용하게 된다.
◆색다른 관점서 보는 노년의 삶과 사랑 오늘을 살아본 게 아니잖아(한차은)
캐릭터들 평균 나이 99.5세. 생명연장술 이후의 세계에서 평균수명은 180세로, 이들은 이제 인생 중반부를 조금 넘어섰다. 여전히 현업에 있고, 두근거리는 사랑을 시작한다. 충분히 나이 든 이들의 고뇌와 상실, 두려움과 아픔, 우정과 사랑 역시 아름답다. 작품은 노년의 삶과 사랑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해주는 따뜻한 공상과학(SF) 웹툰이다.
◆폴댄스로 얻게 된 삶의 긍정적인 변화 난 슬플 땐 봉춤을 춰(만·난돌·곽민지)
웹툰이라고 다 픽션인 건 아니다. 논픽션 웹툰 기획작으로, 입문용에 제격인 작품이다. 가장 대상화되기 쉬운 폴댄스라는 운동에서 여성의 주체성을 찾아가는 내용이 거부감 없이 전달된다. 그간 시각 매체에 등장했던 폴댄스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곧바로 벗어난다. 오랜 시간 운동과는 거리를 두고 살았던 30대 중반 주인공에게는 첫 수업부터 만만치 않다. 하지만 점차 스스로의 몸과 삶에 긍정적인 시각을 갖게 된다.
◆‘왕따’ 주인공에게 다시 찾아온 우정 연의 편지(조현아)
중학생 소리는 학교폭력을 당하는 친구를 도와주다 집단 따돌림을 당한다. 하지만 책상 아래 붙어 있는 발신인 불명의 편지를 발견하며 우정이 다시 찾아온다. 추리와 판타지를 결합해 그려진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의 결핍은 어느새 채워지고, 덩달아 독자의 마음도 위로받는다. 지브리 애니메이션이 떠오르게 하는 파스텔톤의 깔끔한 작화나, 공간을 탁월하게 묘사하고 활용하는 연출도 그 과정을 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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