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학원 설문서 이과 59% '교차지원 검토'
"2021년 서울대 정시 합격자 5명 중 4명 이과"
'국어 쉽다' 추정…평가원장도 유불리 '시인'
코로나 학력격차 변수…과도한 해석 경계도
두 번째 '문·이과 통합형'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종료 직후부터 이른바 이과 수험생들의 문과 학과로의 교차지원 현상이 지난해보다 한층 과열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입시 전문가들 사이에서 "수학을 못 보면 구조적으로 극복이 불가능하다"는 발언이 나올 만큼 지난해보다 국어가 상위권에서 쉬웠던 것으로 전망됐기 때문이다.
20일 교육계에 따르면 회원 수 299만명의 네이버 카페 '수만휘' 게시판에는 수능 시험 다음날인 지난 18일 수분 간격으로 교차지원 합격 가능성을 묻는 글이 다수 게시됐다.
"고대 간호 자연이 인문으로 교차지원(가능하냐)", "교차지원까지 고려하면 어디 갈 수 있을까"와 같이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수능 가채점 점수를 올려 자신이 합격 가능한 대학을 문의하는 글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같은 날 1000여명이 몰린 대형 학원의 입시 설명회에서도 교차지원에 대한 수험생의 관심이 표출됐다.
종로학원이 지난 18일 오후 서울 광진구 세종대에서 개최한 정시 입시설명회 참석 예약자인 수험생과 학부모 1743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이과생(1263명) 59%가 문과 교차지원을 검토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들 중 73.7%가 교차지원에서 가장 우선시하는 결정 변수로 학과에 상관없이 대학 브랜드를 우선한다고 답변해 전공, 적성보다 간판을 따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보다 이과생의 문과 교차 지원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는 전체 67.1%가 긍정했다. 아니라고 답한 사람은 3.9%에 불과했다.
교차지원해 합격하면 반수(대학 다니며 수능 재도전), 재수 의향이 있는지 묻자 43%가 그렇다고 답해 추후 시험에서 N수생이 늘어날 가능성에도 힘을 실었다.
현재 수능은 계열 구분 없이 국어와 수학은 '공통+선택과목' 체제로, 사회·과학탐구는 17개 과목 중 최대 2개를 선택하는 형태다.
계열 칸막이를 넘는 융합인재 양성이라는 취지의 2015 교육과정이 적용되면서 지난해부터 이와 같은 통합형 수능 체제가 도입된 것이다.
공식적으로는 '이과', '문과'라는 용어가 사라졌지만 서울 주요 대학 자연계열 학과에서는 여전히 정시 전형에서 특정 선택과목을 치를 것을 요구하고 있다.
수학은 '확률과 통계' 대신 '미적분'이나 '기하'를, 탐구 영역에서는 과학탐구 8개 과목을 택해야 지원이 가능한 곳이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다수를 차지한다.
이에 따라 수학에서 이들 과목을 선택하는 수험생들이 보다 높은 표준점수를 획득하고, 자유롭게 지원할 수 있는 상경계열 등 상위 인문계열이나 선호도가 높은 주요 대학에 원서를 넣는 교차지원이 크게 늘어났다.
서울대 2022학년도 정시 일반전형에서 자연계열 선발 인원은 941명 중 579명으로 전체 61.5%였지만, 종로학원은 합격자 79.2%가 '이과생'이었다고 추정한다.
자유전공학부(94.6%), 심리학과(88.9%)는 물론 국어교육과(50.0%), 인문계열(44.3%), 경제학부(44.0%)에서도 교차지원 합격자가 절반에 육박한 것으로 분석됐다.
경희대에서는 2022학년도 정시 일반전형에서 자연계열 학과가 선발 규모의 53.6%였지만 실제 이과 합격자는 81.6%로 추정돼 비율이 더 높아졌다.
교차지원 지망자들이 최상위권보다는 대학 간판을 높이기를 보다 희망하는 중상위권임을 고려하면 올 수능은 이런 현상이 더 가속화될 전망이다.
가채점에 따라 입시업체들이 예측한 1등급컷을 보면 국어는 89~94점, 수학은 85~91점으로 나타났다.
종로학원 추정치로만 비교하면, 국어는 91(언어와매체)·94점(화법과작문)으로 지난해(84·86점)보다 상승해 3~4문제를 더 맞춰야 1등급을 얻을 것으로 여겨졌다.
수학은 이과생이 주로 응시하는 '미적분'(87점), '기하'(88점)는 지난해(모두 88점)과 비슷하거나 떨어졌다. '확률과 통계'는 91점으로 1점 높아졌다.
정시 전형에 쓰이는 자료는 수능 성적표도 적히는 표준점수로, 시험이 어려우면 높아지고 쉬우면 낮아진다.
지난해 수능에서는 표준점수 최고점(만점자)이 국어가 149점, 수학이 147점이었다. 종로학원은 올해 수능에서 국어 135점, 수학 145점(확률과 통계 142점)의 10~12점의 격차를 보일 것으로 추정했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설명회에서 "결론적으로 국어 아무리 잘 보더라도 수학 못 봤을 경우 구조적으로 극복이 불가능하다"며 "국어를 만점 받아도 수학을 못 봤다면 구조적으로 지원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수학 때문에 이과에서 문과로 넘어온다 하더라도 경쟁력이 더 커졌다 볼 수 있고 같은 문과 내에서도 극복 불가능할 정도까지 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출제 당국조차도 현행 수능 체제에서는 이런 격차를 완전히 극복할 수는 없다고 시인한 상황.
수능 당일인 지난 1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출제 경향 브리핑을 연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이규민 원장은 "사실 이 문제(문·이과 유·불리)를 완전히 해소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공통과목에 응시하는 점수를 활용해 선택과목 점수를 조정해서 전체 (표준)점수를 산출하고 있다"며 "이것이 지금 현재 상태에서는 그나마 유불리 문제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국어와 수학의 격차에 대해서는 다음달 9일 채점 결과가 나와 봐야 하는 만큼 과도한 해석에 대한 경계도 있다.
이른바 '코로나 학력격차'로 인해 국어의 체감 난이도가 더 어려웠을 가능성도 배제하긴 이르기 때문이다.
남윤곤 메가스터디 입시전략연구소장은 "국어에서 특별하게 어렵다고 할 만한 문항이 많지 않은데 이상하게 가채점 만점자는 별로 없다"며 학력격차 현상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일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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