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혼돈의 시기
코로나 초기 착용 권고하던 당국
대구 종교단체發 확산에 상황 급변
마스크 사재기·웃돈 구입 현상도
당국 개입하며 품귀현상 진정돼
# 패션아이템 진화
하루종일 얼굴과 하나된 마스크
개성 표현하는 또다른 소품으로
색상·디자인·사이즈 다양해지고
마스크 줄까지 한때 인기 아이템으로
# 입증된 방역효과
성공적 K방역 핵심 국내외 인정
9월 실외 마스크 해제됐지만
“마스크 쓴 후 감염병 덜 걸려”
의무 해제돼도 착용한다는 여론 많아
답답함, 목소리 전달 방해, 땀 참, 피부 트러블 유발, 안경 김 서림 등…. 마스크가 주는 불편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시작되면서 사람들은 3년 가까이 마스크와 함께했다. 많은 이가 “도대체 언제 벗느냐”는 말을 줄기차게 해왔다.
드디어 때가 오고 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23일 실내마스크 착용 의무를 단계적으로 해제해 ‘권고’로 전환할 계획을 밝혔다.
현재 7차 재유행이 안정화되면 논의를 거쳐 1단계 해제(대중교통·병의원 등에서만 착용)한 뒤 추이를 살펴 2단계 전면 해제한다는 것이다.
1단계 해제만 되어도 학교나 회사, 상업시설 등 일상의 웬만한 실내에서는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다. 해제 시점은 못 박지 않았지만 이르면 내년 1월 말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지영미 질병관리청장은 “1월 중 완만한 정점을 이룰 것으로 예상한다”며 “정점을 지나 2주 정도 관찰하면서 감소세를 확인하려면 이르면 1월 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다양한 변이의 출현과 중국 코로나19 상황, 국민 백신 접종률 등이 변수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정부의 발표로 마스크 착용 의무 해제는 시간문제가 됐다. 마스크로부터의 해방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마스크와 동행한 한국 사회의 지난 3년을 돌아본다.
◆마스크 시대의 시작… 품귀 대란
한국에서 코로나19 최초 감염 사례가 발생한 것은 2020년 1월20일이었다. 이후 한두 명씩 전파되던 코로나19는 확진자가 누적되며 확산 속도가 빨라졌다.
대한의사협회는 그해 1월26일 성명에서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해 중국에서 들어오는 사람들에 대한 전면적인 입국금지 조치를 준비해야 한다”면서 국민들에게도 “호흡기 증상이 있으면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하고 외출을 자제하라. 호흡기 증상이 없어도 마스크 착용을 생활화하는 게 좋다”고 권고했다.
사태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흘러갔다. 대구를 시작으로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공포감도 확산했다. 당시 중앙방역대책본부는 “건강한 성인은 굳이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다”는 기조였지만 인구 밀집 장소에서 마스크를 쓰는 것은 자연스레 ‘예의’가 되어갔다.
2월 초중순부터 마스크 품귀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수요가 치솟으면서 약국과 마트의 마스크 매대가 텅텅 비었다. 사재기와 웃돈구매도 생겼다. 중고거래 커뮤니티에 마스크 1장을 1만원에 판다는 글도 올라왔다. 이미 ‘마스크 대란’이 심각했던 중국의 보따리상들이 마스크 수억 장을 싹쓸이해 간 것도 마스크 부족 원인으로 꼽혔다.
실내마스크 쓰기를 당부하던 정부는, 3월 들어 “필요한 곳에 양보하자”, “면마스크도 효과가 있다”고 홍보하기 시작했고, 당시 정세균 총리가 나서 브리핑 시 면마스크를 쓰고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유행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건강한 청년도 코로나19에 감염돼 사망하는 사례가 나오면서 전 국민이 방역 효과가 높은 마스크를 필요로 하게 됐다.
정부는 공급을 늘리기 위해 마스크 생산 공장에 예외적으로 주 52시간 이상 근무를 허용했다. 마스크 수출을 금지하고, 국내 마스크 공장 생산량의 80%를 의무적으로 거둬들여 공적 마스크로 유통했다. 중국산 마스크 필터를 구하지 못해 공급에 차질을 빚자 생산 업체를 지원해 마스크 필터를 국산화했다.
마스크의 공평한 배분을 위해 2월 말부터는 ‘배급제’도 시행됐다. 공적 마스크 구입은 1인당 2매로 제한하고 출생연도에 따라 요일별 5부제 판매를 실시했다. 5부제 판매와 함께 마스크 공급은 빠르게 안정됐다. 4월엔 ‘이젠 마스크가 남아돈다’는 뉴스도 전해졌다.
◆얼굴과 하나 된 마스크, ‘패션 아이템’으로 진화
초기엔 개인의 민감도에 따라 마스크 쓰기도 천차만별이었다. 마스크에 일회용 장갑까지 챙기며 야무지게 무장한 사람도 간혹 있었지만 대부분은 마스크를 답답해했고 하루 종일 착용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바깥에서만 마스크를 착용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아서 출근길엔 마스크를 쓰고 사무실에 들어서며 마스크를 벗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곧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주변 사람들이 눈치를 주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그해 3월22일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이 발표되면서 실내외 마스크 착용은 사실상 공식화됐다.
이때까지도 시중의 마스크는 대부분 흰색이었다. 크기도 한 가지뿐이었다. 어린이나 얼굴이 작은 사람은 마스크가 커서 얼굴에 밀착되지 않았고, 얼굴이 크고 턱이 두툼한 사람은 유아용을 착용한 것처럼 마스크가 작았다. 마스크 끈이 짧아 귀 뒤에 상처를 달고 사는 사람들도 여럿이었다.
그러나 이는 오래가지 않았다. 시장이 소비자의 요구를 파악해 발 빠르게 제품에 반영한 덕이었다. 얼굴이 큰 사람도 불편하지 않게 착용할 수 있는 대형 사이즈가 나오기 시작했고, 소형과 어린이용도 쉽게 구할 수 있게 됐다. 개인 선호도에 따라 일반형과 새부리형 등 모양도 다양화했다.
매일 착용해야 하는 옷이자 얼굴이 되면서 마스크는 패션으로 진화했다. 색상이 다양해져 그날의 기분이나 스타일에 맞춰 착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여름엔 상큼한 레몬색이나 핑크색, 가을에는 카키색, 밤색 등이 눈에 띄었다.
유색 마스크는 여성들에게 더 인기가 있는데, 그중 가장 선호도가 높은 색상은 피부색과 가까운 베이지색이다. 방역용품처럼 보이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일부 마스크는 착용했을 때 얼굴을 ‘브이라인’처럼 보이도록 마스크 모양과 줄 위치를 디자인해 얼굴형에 민감한 소비자들에게 환영받고 있다. 톱스타를 모델로 앞세워 미적 강점을 홍보하는 마스크도 나왔는데 이런 브랜드 제품은 대부분 가격이 비싼 편이다.
마스크와 함께 떠오른 패션 아이템은 마스크 줄이다. 마스크 생활이 일상화하면서 마스크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안경줄처럼 생긴 줄에 마스크를 달아 목에 거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초반엔 단색의 심플한 디자인이었지만 곧 캐릭터, 레이스, 가죽, 금속, 비즈 등 다양한 소재와 디자인의 마스크 줄이 탄생해 유행했다. 하지만 마스크 줄은 반짝 유행에 그쳤다. 최근엔 ‘거추장스럽다’, ‘마스크에 음식물이 잘 묻는다’는 이유 등으로 마스크 줄을 달지 않는 사람이 늘어나는 추세다.
◆지긋지긋하지만 방역 효과는 최고
정부는 2020년 11월3일부터 실내외에서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을 경우 과태료를 부과하는 강도 높은 정책을 도입했다. 하지만 실내에서든 실외에서든 하루 종일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는 시스템에 적응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었다.
이 때문에 코로나19 유행이 잦아들 때마다 마스크 의무화 해제에 대한 논의가 나왔다. 올해 9월26일부터 실외에서의 마스크 착용은 필수가 아니게 됐지만, 실내에서는 여전히 마스크를 써야 한다.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모든 실내에서 마스크 착용 의무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하지만 이렇게 철저한 마스크 착용 정책이 방역에 효과적이었다는 것에는 전문가 이견이 없다. 이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지난달 임수 분당서울대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교수 연구팀은 코로나19 등장에 따른 한국의 대응 전략과 교훈 등을 담은 연구 논문을 발표했다.
연구팀은 “한국은 오미크론 변이가 나타나면서 2022년 3월 이후 신규 확진자가 급증했지만, 코로나19 환자 수가 많은 상위 30개국 중 코로나19로 인한 사망률이 가장 낮은 국가”라면서 “한국의 코로나19로 인한 사망률은 0.13%로 미국(1.22%), 이탈리아(0.99%), 영국(0.79%), 독일(0.55%) 대비 매우 낮았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그 이유를 한국의 효과적인 의료 시스템, 고령자 및 고위험군 환자 선제적 격리, 중앙정부 및 공공·민간 병원의 적극적인 협력, 높은 백신 접종률 덕분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특히 “한국 정부의 적극적인 마스크 착용 권고가 호흡기 전염을 낮추는 주된 요인”이라며 “요일제 등 적극적인 마스크 구매 지원, 마스크 미착용 시 벌금 부과 등 정책으로 한국인의 마스크 착용률은 94%로 전 세계에서 가장 높았다”고 설명했다.
팬데믹 초기부터 마스크의 방역 효과에 대한 논란이 있어왔지만 방역당국은 “마스크 착용의 감염 예방 효과는 논란의 여지 없이 명확하다”고 강조했다.
백경란 전 질병청장은 지난 7일 브리핑에서 “우리 국민들께서도 경험으로 잘 알고 계신다”며 “대응 수단이 많지 않았던 코로나19 초기에 외국처럼 지역 봉쇄 같은 강력한 조치 없이 고위험군 보호와 유행 관리가 가능했던 상황에 가장 큰 기여 요인은 국민들께서 인내하며 동참한 마스크 착용 덕분”이라고 말했다.
◆이르면 1월 1단계 해제… 권고는 ‘계속’
정부가 23일 내놓은 단계적 실내마스크 해제 방안의 기준은 △환자 발생 안정화 △위중증 환자와 사망자 발생 감소 △안정적 의료대응역량 △고위험군 면역 획득 등 네 가지다. 이 중 2개 이상 충족되면 논의를 거쳐 실내마스크 의무화 조치를 완화한다는 방침이다.
최근 새로운 변이가 확산하고 있어 1월 마스크 의무 해제가 시기상조라는 우려도 있지만, 전문가들은 대부분 찬성하는 입장이다.
국가 감염병 위기대응 자문위원인 정재훈 가천대 교수는 “재유행과 변이 출현에 따른 사회적·의료적 대응역량은 이미 충분히 검증됐다”면서 “마스크를 완전히 벗자는 것이 아니라 지속가능하게 잘 쓰자는 의미다. 권고는 유지되기 때문에 급격한 혼란이나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만 감염 고위험시설까지 권고로 전환하는 2단계 조정은 더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코로나19 위기 단계가 현재 심각에서 경계 또는 주의로 하향 조정되거나, 코로나19 법정감염병 등급이 현행 2급에서 4급으로 조정되면 검토하기로 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코로나19 공중보건 비상사태 해제 논의를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외국에서도 대중교통이나 병원에서 마스크 착용 의무를 유지하고 있는 곳이 많다”면서 “우리도 고위험시설에 대한 실내마스크 착용 의무는 상당 기간 유지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이미 마스크에 익숙해진 상당수 시민들은 자발적인 착용을 이어가겠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실제 지난 9월부터 실외에서는 마스크를 벗어도 되지만 대부분 시민들이 여전히 길거리에서 마스크를 쓴다.
7세 아이를 키우는 직장인 박모(37)씨는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면서 유행성 질병은 다 걸렸었는데 마스크를 쓰면서부터는 크게 아픈 적이 없다”면서 “장점이 훨씬 많은 것 같다. 당분간은 실내외에서 계속 쓰고, 이후에도 환절기 때는 되도록 착용하려 한다”고 말했다.
경기 성남에 거주하는 김모(69)씨는 “노인들은 감기가 큰 병이 되는 경우가 많아 전염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는데 마스크를 쓰면 안심이 된다”면서 “대중교통이나 문화센터를 이용할 때 계속 마스크를 착용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