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볶이엔 샤르도네·순대엔 피노누아·튀김만두엔 스파클링/캘리포니아와인협회 분식과 어울리는 와인 페어링 ‘캘와분식’ 행사 해운대서 전통시장서 열어
퇴근길 한겨울 칼바람을 피해 포장마차로 뛰어들자 빨간 국물을 두른 떡볶이에서 맛있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납니다. 숭숭 썰어놓은 대파와 넓적한 어묵은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네요. “이모님 튀김만두, 삶은 계란, 김말이도 넣어주세요” 주인장은 떡볶이 국물이 튀김만두 속까지 스며들 정도로 정성스레 쓱쓱 비벼서 한 접시 내놓네요. 뜨끈뜨끈한 어묵 국물 훌훌 불어가며 곁들이니 무한한 행복감이 밀려오는 군요. 뭔가 하나 빠졌네요. 아 맞다. 순대! 이모님은 솥단지 뚜껑을 열어 따뜻하고 촉촉한 스팀을 쬐고 있는 말랑말랑한 순대를 숭덩 잘라 먹기 좋게 슬라이스합니다. 간, 허파, 염통은 보너스로 따라오죠. 한국인이 너무나도 사랑하는 소울 푸드 떡·만·순. 이런 분식과 와인을 곁들이면 어떨까요. 과연 잘 어울릴까요.
◆한국인의 소울푸드 떡만순
부산 해운대. 20∼30대를 중심으로 전국 최고의 여행지로 꼽히는 곳이죠. 여름에는 물론, 계절과 상관없이 주말이면 많은 젊은이들이 몰려 바다와 고층빌딩이 묘하게 어우러지는 부산의 낭만을 즐깁니다. 2021년 10월 새로 개통한 미포∼송정 4.8㎞를 오가는 해운대해변열차, 청사포 다릿돌 전망대, 초보 서퍼들의 천국 송정해변, 영도 흰여울 문화마을, 광안대교 저녁노을과 불꽃놀이에 푹 빠지는 요트투어, 그리고 더베이 101 선착장 주변 카페에서 즐기는 마린시티 야경과 피시앤칩스를 곁들인 맥주 한잔까지. 볼거리 많고 먹을 거리도 풍부해 인기가 없을 수가 없네요. 해운대 전통시장도 빼놓을 수 없죠. 시장 입구로 들어서자 껍질 벗겨 깨끗하게 손질한 꼼장어가 불판에 익어가는 고소한 향이 진동합니다. 나이에 상관없이 해운대 전통시장을 찾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우리들의 소울푸드 떡·만·순 맛집들이 즐비해서죠. TV프로그램으로 유명해진 ‘상국이네’를 비롯해 여러 분식집들이 여행자들의 허기진 배를 달래줍니다.
지난 9월 이곳에선 재기발랄한 와인 행사가 열렸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와인 15종과 떡볶이·만두·순대·튀김·김밥을 페어링하는 시음행사입니다. 분식과 함께 와인을 마신다니! 좀 의외로 여겨질 겁니다. 무엇보다 와인이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네요. 또 분식과 와인은 절대 어울릴 수 없다는 고정관념도 있을 것 같고요. 아마도 왠지 와인하면 레스토랑이나 와인바에서 품격 있는 셰프의 음식과 곁들여 먹어야 할 것 같은 고정관념 내지는 편견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이미 10여년전부터 떡·만·순과 와인을 즐겨 먹은 기자의 경험으로 볼때 와인과 떡·만·순은 궁극의 조합이니 꼭 시도해보세요. 코로나19로 혼술과 홈술이 늘면서 집에서 와인을 즐기는 이들이 많아졌죠. 더구나 떡·만·순은 집에 가는 길에 쉽게 구할 수 있으니 저녁에 와인 한잔 떠오를때 딱 좋은 안주랍니다.
◆떡·만·순과 어울리는 와인을 찾아라
한국을 찾은 캘리포니아와인협회 북아시아 ·오스탈라시아 공동대표인 히로 테지마(Hiro Tejima)씨, 협회 일본 디렉터 마도카 오기야(Madoka Ogiya)씨와 함께 해운대 전통시장 입구 분식집에서 진행된 ‘캘와분식’ 행사에서 떡볶이, 만두, 순대, 김밥, 튀김과 잘 어울리는 와인들을 찾아 나섭니다. 먼저 떡볶이는 화이트 와인과 찰떡궁합이네요. 매콤한 국물과 쫀득쫀득한 떡의 식감이 화이트 와인과 어우러지면서 감칠맛을 증폭시키는 군요. 저는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평소 떡볶이와 스파클링 와인을 즐깁니다. 산도가 좋아 떡볶이를 향한 젓가락질을 도저히 멈출 수가 없습니다. 고소한 새우·고구마·고추튀김에는 역시 스파클링 와인이 궁극의 조합입니다. 튀김의 느끼함을 신선한 버블과 산도가 잘 잡아주고 고소함은 더 살려주네요.
소노마에서 샴페인처럼 2차 병숙성하는 전통방식으로 만든 글로리아 페레 브륏(Gloria Ferrer Brut)을 비롯해 서터 홈 화이트 진판델(Sutter Home White Zinfandel), 제이 로어 베이 미스트 리슬링(J. Lohr Bay Mist Riesling) 등 다양한 화이트 품종은 떡볶이·튀김과 잘 어우러집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세게지오 샤르도네(Seghesio Chardonnay), 베린저 파운더스 샤르도네(Beringer Founder’s Estates Chardonnay), 이앤제이갤로 라이트 샤르도네(E & J Gallo Light Chardonnay) 등 산도가 둥굴둥굴하고 과일향이 풍성한 샤르도네 품종이 좀 더 음식의 맛을 북돋아 주는 느낌입니다. 디오라 피노 누아 로제(Diora Pinot Noir Rose) 등 레드 품종으로 만든 로제도 떡볶이·튀김과 좋은 매칭을 보이네요. 캔달잭슨 빈트너스 리저브 소비뇽 블랑(Kendall Jackson Vintners Reserve Sauvignon Blanc)은 신선한 풀내음 나는 소비뇽 블랑의 산도가 튀김과 좋은 마리아주를 보입니다.
순대는 역시 누구나 예상하기 쉬울 정도로 레드 품종과 잘 어울립니다. 로버트 몬다비 프라이빗 셀렉션 버본 배럴 카베르네 소비뇽(Robert Mondavi Private Selection Bourbon Barrel Aged Cabernet Sauvignon), 캐리커쳐 레드 블렌드(Caricature Red Blend), 아이언스톤 로다이 올드바인 진판델 (Ironstone LODI Old Vine Zinfandel), 오크 릿지 OZV 진판델(Oak Ridge OZV Zinfandel), 오드랏 쁘띠 시라 쁘띠 베르도(Odd Lot Petit Sirah Petit Verdot) 등 다양한 레드 품종과 무난하게 어우러집니다.
히로씨 의견은 어떨까요. 그는 순대와 피노누아를 꼽네요. “아바이순대 등 다양한 스타일의 순대가 있지만 분식집에 파는 순대는 주로 당면만 들어간 심플한 음식이라 깔끔하고 산도 좋은 피노 누아가 잘 맞는 느낌이에요. 튀김은 스파클링, 리슬링과 잘 어울리는 군요. 김밥은 햄이 들어가 레드 와인과 잘 어울려요. 당도가 좀 있는 한국 음식들은 캘리포니아 와인과 좋은 마리아주를 보입니다.” 한국을 자주 찾는 마도카씨는“전에도 떡볶이를 많이 먹어봤는데 진판델과 잘 어울리더군요. 진판델의 푸르티하고 스파시함이 떡볶이의 달달함과 굉장히 매칭이 좋아 즐겨 먹는답니다.”
히로씨 의견대로 순대에 라 크레마 몬테레이 피노 누아(La Crema Monterey Pinot Noir), 본테라 피노 누아(Bonterra Pinot Noir), 발라드 레인 피노 누아(Ballard Lane Pinot Noir)를 곁들였는데 다른 레드 품종보다 순대의 섬세한 맛을 더 잘 살려주는 것 같아요. 제이 로어 와일드 플라워 발디귀에(J. Lohr Wild Flowers Valdigue)와 순대와의 조합도 좋군요. 발디귀에는 프랑스 남부 랑그독·루시옹 지방이 고향으로 알려진 품종으로 그로스 오세루아(Gros Auxerrois)로 불리기도 합니다. 캘리포니아에서는 오랫동안 보졸레의 가메 품종으로 알려져 레이블에 ‘나파 가메(Napa Gamay)’로 표기됐지만 유전자 분석결과 가메와는 전혀 다른 품종으로 여겨져 1999년 1월부터 나파 가메 표기가 금지됐답니다. 이처럼 발디귀에는 피노누아, 가메와 비슷한 느낌이라 순대와 잘 어우러집니다.
함께 행사에 참석한 이인순 와인랩 대표도 테이스팅 가이드를 소개합니다. “ 떡볶이는 매운 맛을 순화시키는 살짝 단맛이 나는 로제나 과일맛이 좋은 화이트를 추천해요. 당면이 주요 속재료인 순대는 가벼운 메를로나 카베르네소비뇽 등 탄닌이 너무 강하지 않은 레드 와인과 무난하게 어울리죠. 찹쌀 순대는 좀더 바디감 있는 레드, 살짝 오크 숙성된 풍부한 샤르도네와도 궁합이 좋아요. 김밥은 상큼한 화이트 와인이 어울리죠. 다양한 속재료가 들어간 만두는 레드, 화이트 둘다 좋은데 화이트는 산미가 기름진 맛을 잡아주고 레드는 풍부한 맛이 둥글둥글하게 조화를 이룬답니다”
◆캘리포니아와인협회 한국 시장 본격 마케팅 시동
캘리포니아에선 매해 9월 와인 수확을 축하하는 다양한 행사가 주 전역에 열립니다. 9월 9일이 캘리포니아가 1850년에 미국의 31번째 주가 된 날이기 때문이죠. 한국으로 수입되는 미국 와인의 95%가 캘리포니아와 와인으로, 미국 와인 수입규모는 지난 2년동안 두배 이상 증가해 프랑스에 이어 2위에 올랐습니다. 이처럼 한국 와인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캘리포니아와인협회(California Wine Institute·CWI)도 올해 처음으로 한국에서 ‘캘리포니아 와인의 달’을 도입해 적극적으로 한국 시장 마케팅에 나섰습니다. CWI는 와이너리 및 와인 관련업체들로 구성된 단체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두고 있고 서울을 비롯한 전 세계에 지사를 운영합니다. 한국사무소 대표는 최민아 와인인 대표가 맡고 있습니다. CWI 코리아는 소비자뿐만 아니라 한국와인전문가들 상대로 캘리포니아 와인을 홍보하고 교육도 진행합니다. 또 와인 시음, 와인 세미나, 매장 프로모션과 소비자 상대 이벤트 등 다양한 행사도 마련합니다.
분식과 캘리포니아 와인의 페어링. 어떻게 이런 기발한 생각을 했을까요. “지난 7월 캘리포니아와인협회의 새로운 북아시아팀이 꾸려진 뒤 어떻게 하면 좀 더 새롭고 재미있는 이벤트를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다 젊은이들이 많이 찾은 해운대에서 로컬푸드와 매칭해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하게 됐죠. 캘리포니아와 환경이 좀 흡사한 곳이 좋겠다고 여겼는데 부산 해운대가 딱 맞아 떨어졌어요. 로스앤젤레스와 부산은 자매결연 도시이기도 해요. 더구나 누구나 일상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음식을 찾다보니 분식과 만나게 됐답니다. 캘리포니아와인협회는 전세계적으로 9월에 여러 프로모션을 합니다. 주로 다양한 음식들을 맛볼 수 있는 푸드트럭과 함께 하는 행사를 많이 하죠.”
캘리포니아 와인은 어떤 매력이 있을까요. “이지 투 드링크(East to Drink), 즉 뛰어난 접근성이 캘리포니아 와인의 가장 큰 매력입니다. 물론 장기 숙성해서도 마셔도 좋지만 지금 오픈해서 마셔도 아무 문제없을 정도로 언제든지 맛있어요. 분식 역시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는 소울푸드로 길거리에서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음식이죠. 쉽게 즐기는 캘리포니아 와인과 잘 어울릴 수밖에 없답니다. 와인이 항상 심각하고 어렵거나 복잡할 필요는 없답니다.”
히로씨와 오도카씨는 한국 와인 시장의 성장 잠재력이 매우 크다고 보네요. 젊은층이 와인 소비 소비를 시작한 것을 원동력으로 꼽습니다. 실제 해운대 전통시장 안에 최근 포도, 해피보틀 등 와인샵이 생겼을 정도로 젊은층이 와인을 많이 찾고 있답니다. “10년전만 해도 한국 와인시장은 볼륨이 작았는데 이번에 한국에 와보니 생각보다 시장이 많이 성장해 깜짝 놀랐습니다. 일본에선 젊은층이 와인을 거의 안마셔요. 주로 캔으로 판매되는 저알콜 주류를 즐기죠. 하지만 한국은 최근 젊은층이 와인을 많이 소비하기 시작했습니다. 따라서 앞으로 시장이 계속 성장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너무 스트롱하고 진한 저가의 칠레 와인 소비가 줄고 프리미엄 와인 소비가 늘고 있는 점도 한국 와인시장이 성장할 수 있는 큰 요인으로 얘기합니다. “예전에는 캘리포니아 와인도 바닐라, 오크향이 아주 강해 ‘블록버스터 와인’으로 불렸는데 지금은 음식 친화적인 와인으로 양조 트렌드가 완전히 바뀌었답니다. 신선한 과일향이 좋고 알코올 도수는 낮으며 산도도 아주 잘 받쳐주는 섬세한 와인으로 계속 진화하고 있어요. 한국 소비자들도 프리미엄 와인으로 갈아타는 추세여서 그에 걸맞은 프리미엄 캘리포니아 와인을 적극 소개할 예정입니다. 한국 와인 시장은 이제 숙성단계로 접어들었다고 봅니다. 협회는 와인관련 자격증을 수여하는 아카데미도 진행하는데 와인을 공부하려는 열기도 뜨거워요. 앞으로 협회도 소비자는 물론 소믈리에와 수입사 등 업계 관계자들이 와인 지식을 늘리는데 도움을 주면서 한국 시장이 성장하도록 많은 역할을 할 작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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