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22일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판결로 “한의사가 초음파 진단기기를 한의학적 진단의 보조수단으로 사용한 행위가 의료법상 무면허 의료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진단용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것이 한의사의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에 해당하는지에 대해서 ▲관련 법령에 한의사의 해당 의료기기 사용을 금지하는 규정이 있는지 ▲한의사가 진단의 보조수단으로 사용하게 되면 의료행위에 통상적으로 수반되는 수준을 넘어서는 보건위생상의 위해가 생길 우려가 있는지 ▲한의사가 그 진단용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것이 한의학적 의료행위의 원리에 입각하여 이를 적용 내지 응용하는 행위와 무관한 것임이 명백한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사회통념에 따라 합리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는 새로운 판단 기준을 제시하였다.
대법원은 위 판결 전에는 판단 기준 중 하나로 ‘해당 의료기기 등의 개발·제작 원리가 한의학의 학문적 원리에 기초한 것인지’를 들었는데, 새로운 판단 기준에서는 이러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대법원은 위 판결을 근거로 향후 다른 의료기기 사용에 관하여 비슷한 분쟁이 있을 때에도 개발·제작 원리와 학문적 원리를 별도의 판단 대상으로 삼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관련 법령에 한의사의 해당 의료기기 사용을 금지하는 규정이 있는지에 대해서 대법원은 의료법과 그에 따른 시행규칙의 규정을 근거로 금지 규정 유무를 판단하였다. 이처럼 명시적인 규정이 있는지가 판단의 중요한 근거로 작용하므로, 앞으로 국회 법률안 심사 또는 행정입법 과정에서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을 금지하는 구체적인 규정을 둘 것인지에 대하여 더 많은 논의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의료행위에 통상적으로 수반되는 수준을 넘어서는 보건위생상의 위해에 대해서 대법원은 영상의학과 의사 외 의사와 한의사 사이에 초음파 사용에 관한 전문성과 오진 가능성에 관하여 숙련도와 무관하게 한의사만 부정적으로 볼 유의미한 통계적 근거가 없다고 판시하였다. 이러한 판시에 대해서도 찬반 주장이 엇갈리는 것으로 보이지만, 적어도 대법원은 통계적 근거를 요구함으로써 이에 미치지 못하는 사례 정도로는 판단을 바꾸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의사가 그 진단용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것이 한의학적 의료행위의 원리에 입각하여 이를 적용 내지 응용하는 행위와 무관한 것인지에 대해서 보면 한의약 육성법은 ‘한의약’을 “우리의 선조들로부터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한의학을 기초로 한 한방의료행위와 이를 기초로 하여 과학적으로 응용·개발한 한방의료행위 및 한약사를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대법원도 위 판결에서 한방의료행위의 과학화를 불가피한 시대적 요청으로 표현하는 등 한의사가 과학적인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것에 긍정적인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한의사가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해 진단행위를 하고 그 과정에서 환자에게 나쁜 결과가 생겼다면,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 자체를 의료법 위반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환자별로 초음파 진단기기로 진단하거나 의심할 수 있었던 병변을 놓치는 등의 과실이 있는지를 판단해야 할 것이다. 한의사가 초음파를 사용해도 경우 위와 같은 상황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을 대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의사의 진단 관련 의료기기 사용에 대해서는 초음파 진단기기 외에도 뇌파 및 혈액 검사 등이 재판 진행 중이거나 논란이 있다. 특히 뇌파 검사 관련 사건은 6년 정도 대법원에 계류 중인 상황인데, 위 판결의 취지에 따르면 위법하지 않다고 판단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다만 위 판결은 어디까지나 진단용 의료기기를 진단의 보조 목적으로 사용할 때에 해당하는 만큼 치료용 의료기기나 치료 상황에서는 위 판결의 판시가 직접 적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얼마 전 대법원은 한의학적 입장에서의 안전성·유효성 심사기준에 따라 품목허가를 받아야만 그 의약품을 처방·조제할 수 있다고 판시한 바 있다.
김경수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kyungsoo.kim@barunlaw.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