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과 경찰이 4년 동안 추적·수사해 밝혀낸 ‘제주 간첩단’ 사건은 충격적이다. 정보 당국에 따르면 진보당 간부 A씨 등이 북한 공작원을 해외에서 만나 제주는 물론, 경남 창원과 전북 전주 등지에서 지하조직을 만들고 진보 촛불 세력과 연대해 반정부 투쟁을 전개하고 주체사상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위대성을 선전하라는 지령을 받아 수년 동안 활동했다고 한다. 1992년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 이후 최대 규모라고 한다. 북한의 지령에 따라 움직인 이 간첩단 사건은 진보·보수 정권 가리지 않고 치밀히 이뤄졌다는 점에서 전모가 드러난다면 파장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방첩 당국이 지난해 말 실시한 압수수색 영장에 따르면 진보당 간부 A씨는 2017년 7월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에서 북한 노동당 대남 공작부서인 문화교류국(옛 225국) 공작원으로부터 암호, 통신법 등을 교육받고 귀국해 제주 노동계 간부 B씨와 농민운동을 하던 C씨 등 2명을 포섭해 ‘ㅎㄱㅎ’(한길회 추정)을 조직했다. 이 조직은 2021년 10월 북한으로부터 제주 지역의 진보당 제주도당과 민주노총 제주본부 4·3통일위원회, 전농 제주도연맹 등을 움직여 한·미 합동군사연습 중단, 한·미·일 군사동맹 해체, 미국산 첨단무기 도입 반대 집회·항의방문·서명운동을 전개하라는 지령을 받았다.
2022년 3월29일에도 강력한 대미 투쟁을 전개하라는 지령을 받은 ‘ㅎㄱㅎ’는 실제로 미국 주도의 환태평양훈련(RIMPAC) 반대 기자회견을 열었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을 앞두고 진보정당 후보 지지 운동을 벌이라는 취지의 지령문을 받은 뒤 민주노총 제주본부를 동원해 6·1지방선거를 3주 앞둔 5월17일 제주도청 앞에서 진보 진영 후보 지지 기자회견을 갖기도 했다.
‘제주 간첩단’ 사건은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친북 간첩 활동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깊숙이 침투해 있는지를 새삼 절감하게 한다. 북한에 굴종하던 문재인 정권 때 간첩단이 활개 친 것을 보면 남북관계가 좋든 나쁘든 북한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각종 탄도미사일 발사 등 하루가 멀다 하고 도발하는 작금의 남북관계 상황을 보면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 발본색원은 말할 것도 없고, 사건의 전모를 낱낱이 밝혀내야 할 것이다. 무너진 국정원의 대공수사 역량 복원도 화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모두가 일상화한 북한의 도발에 무뎌진 대북 안보 경각심을 가져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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