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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사니까 킹크랩 사와” 새신랑 앗아간 농협 간부 ‘갑질’…노동부, 특별근로감독 나서

입력 : 2023-01-28 22:49:30 수정 : 2023-04-17 14: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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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유서서 ‘직장 내 괴롭힘’ 호소…노동 장관, 철저한 감독 지시
전북 장수 농협에서 발생한 직장 내 괴롭힘으로 직원이 사망한 사건과 관련, 유족들이 지난 25일 전북경찰청에 고소장을 접수하기 전 언론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전주=뉴스1

 

전북 장수군의 농협에서 결혼 3개월 차 30대 남성 직원이 지속적인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다고 호소하다 끝내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건과 관련, 고인의 유족이 직접 자세한 내막을 전하고 나섰다. 고용노동부는 해당 농협을 대상으로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사망한 직원 고(故) 이모씨의 동생 이진씨는 지난 26일 CBS 라디오 ‘정다운의 뉴스톡 530’ 인터뷰에서 “2022년 권모 센터장이 부임하면서 지속적인 괴롭힘이 시작됐고 지난해 9월27일 1차 극단적 선택(시도) 사건이 있었다”며 “(결국 형은) 본인의 근무지였던 농협의 자재 창고 앞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말했다.

 

유족에 따르면 2009년 농협에 입사한 이씨는 지난해 1월 간부 권씨가 부임한 이후 권씨 등 상사 2명에게 수없이 모욕적인 말을 들었고,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지난해 9월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다. 결혼을 2주가량 앞둔 시점이었다.

 

이후 농협 측은 외부 노무사를 선임해 자체조사를 벌였는데, 심의위원회를 통해 상사 2명은 혐의없음으로 결론났다. 농협은 직장 내 괴롭힘 사건 매뉴얼에 따라 피해자 부서를 다른 곳으로 옮겼지만, 가해자와 마주치는 상황은 해소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씨는 괴롭힘으로 인한 우울증 등으로 병원에 입원하기까지 했고, 결국 지난 12일 자신이 일하던 농협 근처에 차를 세워둔 채 극단적인 선택을 해 숨졌다.

 

동생 이씨는 형이 당한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 “인격 모독과 그냥 조롱 등은 기본이고, 상하 관계를 확실히 하기 위해서 찍어 누르는 등 (행위를 했다). 금품 갈취 정황도 있었다”면서 “유언장에 의하면 (형은 상사들에게) ‘너희 집이 잘 사니까 서울 노량진에 가서 킹크랩을 사오라’는 지시도 받았고, 실제로 전북 장수에서 택시를 타고 직접 가서 사비로 사오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어 “평소 형이 대장·항문 질환이 있었는데 (상사들이) CCTV로 개인 동선을 파악, 화장실 가는 횟수까지 확인해 면박을 주기도 했다”며 “사생활마저 없었다. 인격을 모독하는 행위였다”고 토로했다.

 

유족은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들과 더불어 괴롭힘을 방관하고 묵인한 책임자들을 상대로 한 진정서를 노동부와 농협 중앙회 감사실에 제출한 상태다.

 

동생 이씨는 “형은 순진하고 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뭐든지 퍼주려 하고 본인 것을 아끼지 않고 나눠주는 사람이었다”며 “군대에 가선 열심히 하다 다쳐 국가유공자가 됐다. 초중고 땐 레슬링을 해 전국체전에서 메달도 많이 땄다. 대학에선 과 대표까지 하는 등 리더십 있고 자신감 있는 모습을 항상 보였다”고 회상했다.

 

이어 “직장에서도 권 센터장 부임 전까지는 직원들이 집에 와서 같이 놀고 부모님께도 소개해주는 등 재미있게 회사 생활을 했다”면서 “(문제 발생 후 농협 측은) 정식 인사 발령을 낼 수 있음에도 구조적인 지시만 했다. 사망 2주 전부터 가해자들과 어떠한 분리도 되지 않았다. 평소 카카오톡을 보면 형은 그분들의 이름 세 글자만 봐도 치가 떨리고 온몸이 떨린다고 했다”고 호소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25일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 열린 노사 부조리 근절을 위한 현장 근로감독관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유족 측은 조사에 참여한 노무사가 가해자와 지인 사이라면서 증거 인멸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동생 이씨는 “형이 확실한 증거를 위해 본인 업무용 PC에 그들의 행동·말투를 시간·날짜와 함께 세세하게 기록해놓은 일기장이 있었다”며 “노무사를 믿고 다 모두 이야기했는데, 유급휴가를 마치고 복귀한 뒤 컴퓨터가 모두 폐기 처분돼 있었다”고 주장했다.

 

앞서 농협 측은 이와 관련해 노무사와 가해자의 관계를 모르고 선임했고, 둘 사이가 아주 가깝지는 않아 문제 될 게 없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해당 노무사도 “조사 과정에 영향을 미치진 않았다. 제가 속이거나 조작하거나 하진 않았다”고 반박했다.

 

농협 측은 또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 이씨 측의 일방적 주장일 뿐이라며 추가 감사나 재발 방지대책 마련 등은 논의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동생 이씨는 “크고 작은 직장 내 괴롭힘을 겪는 사람들이 많을 거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인정되지 않아서 저희 형처럼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한다”면서 “물리적인 폭력도 있겠지만 정신적인 고통이 가장 심하다. 이번 일을 통해 직장 내 괴롭힘 관련 법이 확실하게 개정돼 모든 사람이 피해 보지 않고 웃으면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가 남긴 유서에는 “열심히 해보려 했는데 사무실에서는 휴직이나 하라고 해서 (힘들었다)”, “이번 선택으로 가족이 힘들겠지만, 이 상태로 계속 간다면 힘들 날이 길어질 거라는 생각이 든다” 등의 내용이 담겨있었다.

 

노동부는 27일 해당 농협을 대상으로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노동부는 “직장 내 괴롭힘·성희롱 등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기업에 대해서는 예외 없이 특별근로감독을 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광주지방고용노동청 전주지청에 특별근로감독팀을 구성했다고 전했다.

 

노동부는 이번 특별근로감독을 통해 장수 농협이 노동관계법 전반을 지켰는지 심층적으로 점검하고 조직문화 전반을 조사할 계획이다.

 

이정식 노동부 장관은 “청년층의 근로조건 보호와 현장의 불법·부조리한 관행 근절을 위해 엄정하고 철저하게 감독하라”고 지시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김수연 기자 sooy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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