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전력 다하면 약 2년 안에 핵무기를 생산할 수 있을 것”
한국, 1970년대 후반 핵무장 추진 고려…미국의 압력으로 포기
미 싱크탱크, FP 기고에서 “미 정부, 한국 핵무장 용인할수도”
“한국 핵무장하면 원전산업 망가지고 안보 더 위험해져” 지적도
“핵무장 찬성론자들 어느 도(道)에서 핵실험을 할건지 궁금해”
윤석열 대통령이 연초 국방부 업무보고에서 띄운 ‘한국 핵무장’에 대한 여론 관심이 식지 않고 있다. 북한 핵·미사일 고도화와 연쇄 도발로 엄중해진 한반도 정세 속에 안보 불안감이 커졌고, 일부 전문가 사이에서 공감하는 목소리가 나오면서다.
앞서 윤 대통령 핵무장 발언에 대한 파문이 커지자 대통령실은 곧바로 실제 추진할 계획은 없다고 진화했다. 존 커비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도 지난 12일 브리핑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했고, 이는 변하지 않았다”고 말해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재확인하고 확장억제 강화에 무게를 실었다. 31일 한미 국방장관회담에서도 ‘독자적인 핵무장’ 여론과 일각에서 미측 확장억제 공약을 ‘찢어진 핵우산’에 비유하며 우려하는 목소리 등 논의가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여권에서는 한국 핵무장 주장을 이어가는 모습이다. 북한 외교관 출신인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은 지난 29일 북한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명의 담화와 관련한 논평을 내고 “신냉전의 파도가 밀려오는 현시점에서 대한민국을 핵 위협에서 가장 확실하게 지키는 방법은 자체 핵무장을 통해 직접 억지력을 가지는 것밖에 다른 방도가 없다”고 주장했다.
◆‘한국 핵무장’ 부추기는 목소리들…가능성은 적어
한미 양국 정부는 ‘한국 핵무장’에 일단 선을 긋는 분위기지만, 일각에서는 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는 급속도로 향상되고 있는 북한의 핵 능력에 대처하는 최선의 방안을 둘러싼 오랜 우방 간의 근본적인 긴장을 보여준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한국이 오랫동안 금기시 됐던 핵무장 카드를 만지작거림으로써 미국이 느끼는 압박감이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CIA에서 북한 분석관으로 활동한 수 김 전(前) 랜드연구소 안보분석가는 윤 대통령도 핵무장 추진이 한미 동맹에 위기를 불러오고 한국의 민간 핵 프로그램을 위협하는 제재를 초래할 위험 소지가 있음을 인식하고 있을 터이지만, 이런 논의로 미국이 한국에 더 구체적이고, 강화된 안보 보장을 제공하도록 압박을 받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윤 대통령은 미국이 한국의 핵무장에 대해 즉각적으로 검토하리라 기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제하면서도 “그런 구상을 거론하는 것만으로도 점점 위험해지고 있는 역내 안보 상황을 주목하게끔 하고, 현재의 접근법이 한미 모두의 안보에 한계가 있음을 미국이 인식하게끔 하는 효과를 낼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의 핵우산에 의존하고 있는 또 다른 미국의 동맹 일본과는 달리 한국의 여론도 핵무장에 좀 더 열려 있다고 블룸버그는 짚었다.
외신은 한국이 이미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는데다 핵 물질과 공학기술 노하우를 갖추고 있기에 마음만 먹으면 핵무기를 신속하게 제조할수 있다고 봤다. 마크 피츠패트릭 전 국무부 비확산담당 부차관보는 “한국이 전력을 다한다면 약 2년 안에 핵무기를 생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피츠패트릭 전 부차관보는 그러나 한국은 미국의 완강한 반대라는 큰 장애물과 ‘선량한’ 핵비확산국이라는 현재 위상에 입을 타격 등으로 인해 핵무장이라는 선택지를 포기해 왔다고 분석했다.
블룸버그는 해제된 미국의 기밀 문서에서 드러나듯 한국은 1970년대 후반에 핵무장 추진을 고려했다가 미국 압력으로 포기한 적이 있고, 주변국인 중국, 러시아, 북한이 각각 무기를 증강하고 있는 상황이라 지정학적인 위험이 더 커지고 있다고 현 상황을 바라봤다. 이런 상황에서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확장된 억지력’이면 충분하다고 아무리 주장해도 한국인들은 핵무기가 장착된 북한의 대륙간 탄도미사일이 유사시 미국의 개입을 막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고 프린스턴대 물리학자이자 핵정책 전문가인 프랭크 폰 히펠 교수는 진단했다.
미국 보수성향 싱크탱크 카토 연구소의 더그 밴도우 수석연구원은 최근 포린폴리시(FP) 기고문에서 미국 정부가 한국의 핵무장을 용인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기도 했다. 밴도우 연구원은 “북한을 비핵화하려는 미국의 노력은 막다른 길에 다다랐고 북한은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무기를 계속 발전시키고 있다”며 “북한이 미국을 선제 타격할 역량은 갖추지 못하더라도 미국의 한국 방어에 대해 보복할 수 있는 능력은 곧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사례를 들며 한국 핵무장 가능성을 점쳤다. 소련 해체 직후인 1994년 핵을 포기하는 대가로 미국의 안전보장 약속을 받았던 우크라이나도 작년 러시아의 침공을 받자 ‘핵 억지력’에 대해 후회했다는 것이다. 그는 “북한의 핵무장으로 금기시 되던 한국의 핵보유라는 선택지가 ‘생각해봄직한(thinkable)’ 카드로 부상했다”고 했다.
◆“핵무장하면 원전산업 등 경제 엄청난 타격…한미관계 악화”
한국이 북한의 핵 위협을 내세워 핵무장을 하면 세계 최고 수준인 원전산업 등 경제에 엄청난 타격을 입고 안보 상황이 오히려 더 위태로워질 것이라는 경고도 나온다.
미국 핵무기 개발의 산실인 로스 알라모스 국립연구소장을 지낸 지그프리드 해커 박사는 30일(현지시간) 싱크탱크인 스팀슨센터가 한국의 핵무장론을 주제로 개최한 세미나에서 한국의 과학기술 수준을 고려하면 핵무기를 금방 만들 수는 있겠지만 핵무장은 큰 비용이 드는 만만치 않은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는북한 영변의 핵시설을 실제 방문해 둘러본 몇 안 되는 전문가다.
해커박사는 “핵무장은 핵무기 한두 개로 될 일이 아니라 핵무기를 만드는 데 필요한 무기급 핵연료, 핵실험을 통한 검증, 핵무기를 발사할 수단이 필요하다”며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일”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한국의 과학기술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핵실험을 하지 않을 수는 없다”며 “한국의 어느 도(道)에서 자기 땅에서 지하핵실험을 하라고 자원할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 핵무기 확산을 막으려고 노력하는 상황에서 한국이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할 경우 한미관계가 악화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 등 191개국 가입한 NPT는 조약 발효 전인 1967년 이전에 핵무기를 보유한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 등 5개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의 핵무기 개발을 금지한다. 그는 “한국이 NPT에서 탈퇴하면 과연 누가 한국의 원전을 사겠는가”라며 핵무기 개발은 우수한 한국의 원전산업을 희생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해커 박사는 최근 북한전문매체 38노스 기고문에서도 “한국의 원전 기술은 미국이 사용을 허가한 미국 기술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미국 정부가 한국 원전의 수출을 막을 수 있다”며 “NPT 탈퇴 이후에는 한국이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우라늄을 다른 국가들이 수출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하기로 결정하면 미국은 거의 확실하게 한국과 군사동맹과 경제협력을 중단할 것”이라며 “한국의 놀라운 경제 기적을 쓸어버리고 한국이 전 세계에 구축한 소프트파워를 파괴하는 쓰나미를 촉발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를 성사시킨 주역인 로버트 갈루치 전 국무부 북핵 특사도 해커 박사의 주장에 동의하면서 한국의 핵무장이 “한미동맹에 균열이 가게 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 제공하는 확장억제가 효과적인 이유는 북한과 중국이 미국의 강력한 핵무기에 맞설 생각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왜 한국이 이제 핵무기 개발을 시작해 북한이나 중국을 ‘따라잡기’ 하려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한국이 미국의 첨단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순항미사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B-52와 B-21 전략폭격기, 수천 개의 전략핵무기에 의지하는 게 낫다면서 “(한국의 핵무장은) 그걸 포기하겠다는 것이다. 말이 안 되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미국 전술핵무기의 한반도 재배치에 대해서도 핵무기를 위험한 곳에 두고 한국을 표적으로 만들기 때문에 타당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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