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마약 금지했던 불교국가 태국의 카지노 합법화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필리핀, 베트남, 라오스 등 활황
코로나19로 직격탄 맞은 동남아, 카지노로 전환점 노려
중국인을 향한 이중 착취?…‘20세기엔 마약, 21세기엔 카지노’
카지노의 전설 차무식(최민식 분)의 파란만장한 삶과 코리안데스크 오승훈(손석구)의 집요한 추적 등을 담은 디즈니+ 오리지널 ‘카지노’가 화제다, 새로운 에피소드가 공개되는 수요일 오후엔 시청자의 대화 주제마저 바꿔버리고 있다. 이 프로그램의 ‘해외교민 살인사건의 60%가 필리핀에서 발생한다’는 대사는 섬뜩하지만 현실을 반영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카지노’라는 단어에 동남아, 필리핀이 결합되는 작법에 필리핀 외교당국은 곤혹스러울 법도 하다. 일반인에게 주는 부정적 인상이 있기 때문이다. 단어 혹은 묘사가 특정국에 부정적이면 관련국은 대개 항의를 하거나 표현 등을 바꿔달라고 요청하곤 한다. 이전에도 국내에서 그런 사례가 더러 있었다. 가령 터키탕과 관련해서는 튀르키예(터키)가 불편해 했고, 지난해 넷플릭스를 통해 소개된 영화 ‘수리남’의 허구적 상상이 표현되는 과정 때문에 국가 이미지에 타격을 입었다고 생각한 수리남은 강력 항의했다.
◆청정국 태국도 카지노 빗장 여는 행보
디지니+의 카지노가 인기를 끌면서 필리핀 등 동남아를 카지노를 매개로 해서 연상하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동남아의 카지노 현황은 어떨까. 카지노도 현재의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를 설명하는 말이다. 카지노는 동남아 국가의 관광 수입의 상당 부문을 차지하고 있다.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등의 카지노 업종이 코로나19 방역 조치 완화로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다.
도박을 금지했던 태국에서조차 카지노 합법화 절차가 이행될 것으로 보인다. 마약에 이어 카지노 합법화로 방향을 튼 것이다. 1년 전 특별위원회를 만들더니, 최근 의회에서 카지도 시설 건립 허용을 의결했다. 의회가 승인한 내용은 태국 22개 지역 중 1곳에 카지노 등 관광단지를 설립하자는 제안을 담은 특별위원회의 보고서였다. 표결은 찬성 310표, 반대 9표였다. 의회 표결 전까지만 하더라도 찬반 의견이 갈릴 것이라는 언론의 예상도 있었지만, 반대 의견 표출은 약했다.
태국에서는 그동안 경마를 포함해 사행성 도박을 금지해 왔다. 도박 금지령엔 태국의 절대가치인 불교의 영향력이 반영됐다는 게 정설이다. 지난해 1월 발표된 정부의 조사에서도 여전히 카지노 운영에 대해서는 반대 여론이 높았다. ‘카지노 운영 허가에 찬성한다’는 의견은 39%였던 데 비해, ‘반대한다’는 의견은 57%에 달했다. 카지노 운영이 합법화되면 사실상 도박 금지령의 예외 사례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아세안 수백 곳 카지노 운영…“규모의 경제·관광산업의 화두”
이전에도 카지노 설립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적이 있던 태국의 분위기 전환 배경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관광활성화로 외화 수입을 늘릴 수 있다는 기대가 반영됐다는 이야기다. 코로나19가 한창이었던 2021년 태국을 찾은 외래 관광객은 43만 명이었는데, 이 수치는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의 1%에 불과한 것이다. 관광업 부문이 국내총생산의 20%를 차지하는 태국의 현실을 고려할 때 난국을 타개할 방안의 하나로 카지노 영업 허가도 주목받았다. 특별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카지노 운영이 이뤄지면 연간 1000억 바트(약 3조8640억 원)의 세수 창출이 가능하게 된다. 보고서는 카지노 운영에 따른 부정적인 측면은 거의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시민단체들의 비판을 야기하기는 했다.
카지노의 정식 영업을 위해서는 정부의 최종 결정이 내려져야 하지만, 절차와 시간의 문제로 보일 뿐이다. 정부의 결정이 나오면 태국도 이웃 말레이시아를 비롯한 다른 동남아 국가에 이어 카지노 합법화 막차를 타게 된다. 카지노가 들어설 곳으로는 관광지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지역들이 후보지로 거론되고 있다. 푸켓, 파타야, 치앙마이, 끄라비, 치앙라이 등이다.
태국 정치권에서 카지노 운영을 최종적으로 허가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MGM과 샌즈 등 글로벌 카지노 기업들은 프로젝트 참여를 차분히 준비하고 있다. 카지노 설립 방침이 정해지면 운영까지는 3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5월 총선이 있기 때문에 카지노 운영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은 다음 정부에서 다뤄질 가능성이 크다.
동남아 국가들은 대부분 카지노를 합법화하고 있다. 해양부의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필리핀과 대륙부의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미얀마는 오래전부터 카지노 경제에 일부 의존하고 있다. 동남아에서 카지노는 숫자를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가령 캄보디아에서는 최소 100곳 넘는 곳에 카지노 시설이 들어선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최근엔 중국 시진핑 정부의 반부패 정책 모드로 아시아의 라스베가스 불리는 마카오의 카지노 산업이 위축되면서, 동남아의 카지도 업체들이 시설 업그레이드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김형우 한반도문화관광연구원장(관광경영학 박사)은 "카지노 산업은 코로나19 이후에도 여전히 각국 관광산업의 화두가 되고 있다"며 "태국도 카지노 산업에 대한 사행성 비판을 인지하고 있지만, 확실한 캐시카우 창출원이자 규모의 경제가 가능한 사업이기에 보다 빨리 움직이려 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인의 카지노 사랑…싱가포르는 관광과 카지노 결합
아세안 카지노 산업의 불꽃 점화는 싱가포르에서 시작됐다. 싱가포르에서는 2010년 미국 샌즈그룹의 마리나 베이 샌즈, 말레이시아 겐팅그룹의 리조트 리조트 월드 센토사가 거의 동시에 운영을 시작하면서 외래 여행객의 발길을 끌어당겼다. 마이스(MICE) 산업에 물류·항공의 중심지의 장점을 지닌 싱가포르는 금세 각국의 여유있는 이들의 지갑을 열게 했다. 싱가포르 정부는 최근 카지노의 세율을 15%에서 18%로 인상하기로 하고, 미국 샌즈와 말레이시아 겐팅의 카지노 운영권을 2030년까지 연장했다.
카지노 하면 떠오르는 라스베가스 혹은 마카오에는 범접할 수 없겠지만, ‘동남아와 카지노, 관광수입’이라는 조합이 꼭 틀린 것만은 아니다. 여기에 저비용항공사(LCC) 등 항공산업과 관광수입 조합을 같이 생각하면 코로나19 이후의 동남아 상황을 설명하는 키워드로 충분히 가치가 있다.
동남아 카지노의 주요 고객은 중국인들로 알려져 있다. 카지노 운영권자도 중국인 혹은 화교라는 게 정설이다. 카지노 시설 인근엔 차이나타운이 발달해 있으며, 카지노 안에서는 눈이 충혈된 채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국인을 접하는 게 어렵지 않다.
카지노 영업엔 부정적 이미지도 가득 어른거린다. 1세기 전 아편으로 동남아 노동자(쿨리)의 수입을 빨아들이고, 다시 헐값에 노동력을 이용했던 식민지 당국의 ‘이중착취’를 떠올릴 수 있을 정도다. 중국인 노동자와 여행객들이 수입을 카지노에 털어놓는 사이 카지노 주변에서는 마약과 불법이 저질러지고 있다는 비판도 많다.
◆한국 강원랜드 등 17곳에서 운영…일본도 파친코 대신 카지노?
국내에서도 카지노가 운영되고 있다. 서울과 부산, 인천, 대구, 강원, 제주 등 6개 시·도에서 17개 카지노가 운영되고 있다. 내국인 출입이 가능한 곳은 강원 정선에 소재한 강원랜드 1곳뿐이며, 나머지 16곳은 외국인만 출입할 수 있다. 국내에서 카지노 사업 허가와 운영에 대한 내용은 관광진흥법에서 다루고 있다. 카지노 시설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허가를 거쳐야 하며, 광역단체 혹은 관공특구의 최상급 호텔시설 등에만 둘 수 있다. 국내와 외국을 오가는 선박 내에도 둘 수 있는데, 이 선박은 2만t급 이상으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정하는 무게를 상회해야 한다.
관광 수입이라는 장점 못지않게 부정적 영향이 크다는 점 때문에 신규 허가나 시설기준, 영업허가 등과 관련해서도 까다롭게 규정하고 있다. 원칙은 전국 단위의 외래 관광객이 60만 명 이상일 때만 그나마 신규 허가 신청이 가능하도록 했다. 강원랜드를 제외하고, 내국인의 출입을 금지하고 있으며 외국인이라고 하더라도 19세 미만은 원칙적으로 카지노 시설을 이용할 수 없게 했다.
일부에서는 한국도 카지노 산업 인식에 대한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김형우 원장은 "동남아뿐만 아니라 파친코업으로 유명한 일본에서도 내국인 출입이 가능한 카지노 시설을 포함한 대규모 복합리조트 개장을 준비하고 있다"며 "전통적인 파친코업 대신 자금 흐름이 원활하고, 관광흐름과 밀접한 카지노 산업을 키우겠다는 전략"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카지노 산업이 포함된 복합리조트 개장 등을 통해 그간 일본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의 하나로 인식됐던 이른바 '돈맥 경화 현상'을 해소하고 글로벌 관광대국의 입지를 구축하기 위한 행보에 나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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