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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선 “모두가 럭셔리 라이프”…‘낙오될라’ 조바심이 빚은 비뚤어진 욕망 [심층기획-명품에 빠진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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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3-08 06:00:00 수정 : 2023-03-09 21:3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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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채워지지 않는 욕망에 관하여

치열한 경쟁 일상인 수직적 사회서
과시욕 채우려는 무리한 소비행태
SNS 타고 ‘보편적 소비’로 포장돼

명품 대한 과대평가 범죄 등 부작용
사회화하는 청소년 소비관 왜곡 우려
“돈은 머니보트”… 가치소비 교육 필요

명품 매장 앞에 새벽부터 줄 서서 ‘오픈런’하는 한국인의 모습은 해외 언론에서 집중 조명할 정도로 특이한 현상이다. 외신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시기에도 생필품 사재기에 나서지 않던 한국인들이 유독 명품 구매에 열광하는 것이 집값 급등, 코로나19 등으로 억눌렸던 욕구가 분출된 ‘보복소비’라고 분석한다. 하지만 국내 명품 시장의 성장세와 유아·청소년 등 소비층 확대를 보면 일시적 현상이나 유행으로만 치부할 수 없다. 명품 소비가 무조건 잘못됐다고 할 수 없지만 체면과 과시 욕구를 채우기 위한 무리한 소비 행태는 각종 부작용을 가져온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특히 경제 개념과 가치관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청소년들이 명품 소비에 잘못 빠지면 왜곡된 소비 습관을 갖고 범죄 유혹에도 빠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서울의 한 백화점에서 재고 상품 처리를 위해 열린 면세명품대전 행사에 입장하려는 고객들이 우산을 쓰고 길게 줄지어 서 있다. 뉴시스

◆왜 명품에 집착하나

한국인이 명품 소비에 유독 열광하는 데는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체면을 차리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젊은이들이 계속 경쟁에 시달리고, 수직적 세계관에 찌들어 있다 보니 남들을 이겨야 한다는, 다른 사람들이 할 때 나만 못하면 낙오될 것 같은 공포심이 크다”면서 “비싼 제품, 잘나가는 제품 소비를 통해서 ‘나는 뒤처진 존재가 아니다’라고 스스로 확인하고 과시하고 싶은 심리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집값 급등과 양극화 등 경제·사회적 분위기가 보복소비와 플렉스(소비 과시) 심리를 부추겨 명품 소비로 이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출산율이 심각하게 낮아지고, 자살률도 높다 보니 좌절을 완화해주고 자신감을 올려주는 (방편으로) 명품 소비를 한다. 집이나 차 구매를 포기하고 명품을 통해 행복감을 추구하는 것”이라며 “아이들에게 명품을 입히는 부모들은 ‘프리미엄 키즈’로 키운다고 느끼며 위안을 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코로나19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확대는 이런 경향을 가속화했다. 유튜브와 SNS 인플루언서가 새로 산 명품을 처음 개봉해 보여주는 언박싱 영상은 높은 조회수를 기록한다. 특히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려 몇 개월을 기다리거나 VIP 고객이어야만 살 수 있는, 이른바 돈 있어도 못 사는 제품의 언박싱 영상은 더 인기다.

하재근 평론가는 “SNS에서 과시하고 남들에게 관심받고 인정받는 문화 속에 평범하거나 저렴한 물건은 관심받지 못하니 더 비싼 물건, 특이한 물건, 희소한 물건에 집착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SNS상에서는 모두가 플렉스를 하고 있다 보니 실제 10% 정도만 사치품을 살 수 있는데 모두가 사치를 한다고 착각하게 된다”면서 “특히 사회화 과정을 거치고 있는 청소년들은 ‘이렇게 많은 사람이 럭셔리하게 하고 다니니 나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올바른 소비 가치관 정립 필요

국내 명품 시장은 한국 사회의 이런 특징과 분위기를 이용해 잦은 가격 인상과 한정 판매 전략으로 소비 심리를 더욱 자극했다. ‘샤넬 백은 오늘이 제일 싸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가격을 자주 올려 소비자의 불안감과 소유욕을 부채질해 기나긴 오픈런 행렬을 만들고, 판매가보다 비싼 가격에 되팔리는 기형적인 리셀 시장까지 만든 것이다.

문제는 명품에 대한 과대평가와 소유욕이 소비 행태를 왜곡하고 사기, 위조 상품 판매 등 각종 범죄로 이어지는 등 크고 작은 폐해를 낳는다는 것이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내가 꼭 갖고 싶어서가 아니라 남들이 사기 때문에,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소비는 해도 해도 갈증이 해소되지 않는다. 그래서 사고 또 사다 보면 파산에 이르기도 한다”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남과 비교하고 과시하기 위한 수단이나 소득 수준에 맞지 않는 소비는 지양하도록 학교 교육과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소비는 자신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매개지만,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꼭 무엇을 소비하느냐로 귀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자각이 필요하다. 그런 자각이 되려면 소비 교육이 수반돼야 한다”면서 “(명품 소비에) 동조하지 않으면 뒤처진다고 인식하지 않도록 학교에서 교육하고, 동조하지 않았을 때 위축되거나 소외감을 느끼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요즘 학생들은 환경 문제나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에 대해 관심이 많다”면서 “과도하게 상품 가치를 지불하는 것 자체가 환경적인 측면에서 지속 가능한 성장에 도움되지 않는다는 점 등을 알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브랜드 이미지나 남을 의식하지 않는 소신에 따른 합리적 소비가 기업과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친다는 ‘가치 소비’의 중요성을 널리 알려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MZ세대들은 ‘착한 기업’ 제품을 적극 구매하는 ‘돈쭐내기’나 재활용·기부 용품을 활용한 제품 소비에 이미 익숙하기 때문에 이런 소비 의식을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허경옥 성신여대 소비자생활문화산업학과 교수는 “연예인이 공인인 것처럼 소비에 있어 개인도 공인이라는 생각이 필요하다”며 “내가 뭘 사느냐, 어떤 소비 생활을 하느냐가 기업의 성패를 결정한다는 것, 예를 들어 명품만 사면 명품 회사만 좋은 것이고 내가 질 좋고 합리적인 가격의 제품을 구매해 주면 열심히 하는 중소 업체가 잘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돈도 ‘머니 보트(money vote)’라는 일종의 투표”라며 “내가 좋아하는 정당에 투표하는 것처럼 내가 쓰는 돈이 사회에 미치는 효과를 생각해보는 것이 가치 소비의 시작”이라고 설명했다.


기획취재팀=김수미·엄형준 선임기자, 박미영·이도형·김나현·안경준·유경민·윤솔·윤준호·이규희·이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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