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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벽 갇힌 러 천재 작곡가 쇼스타코비치의 삶

입력 : 2023-03-11 01:00:00 수정 : 2023-03-10 19:5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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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스타코비치: 시대와 음악 사이에서/엘리자베스 윌슨/장호연 옮김/돌베개/5만5000원

 

“삶이 왜 이리 힘든지 모르겠어. 특히 물질적인 면에서 말이야. 지금 (집안) 빚이 244루블이네…. 채권자들이 다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지. 다들 어찌나 집요한지 몰라. 작곡은 잠깐 쉬고 있어.”(쇼스타코비치가 19살 때 친구에게 보낸 편지)

엘리자베스 윌슨/장호연 옮김/돌베개/5만5000원

“쇼스타코비치가 1960년 당에 입당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우리의 실망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망가졌다는 사실이, 우리의 체제가 천재를 망가뜨렸다는 사실이 도무지 납득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가 고통의 화신이라고, 우리 시대의 비극과 공포를 온몸으로 보여주는 사람이라고 이해합니다.”(작곡가 소피야 구바이둘리나)

책은 러시아가 낳은 위대한 작곡가 중 한 명인 쇼스타코비치(1906∼1975)에 관한 전기다. 첼리스트이기도 한 저자 엘리자베스 윌슨은 쇼스타코비치의 삶 전체를 심도 있고 입체적으로 그려 내기 위해 쇼스타코비치 본인은 물론 그와 관계를 맺은 수많은 인물의 증언을 모았다. 그 과정에서 많은 도서와 자료를 검토하고 필요한 경우 관련자 인터뷰로 사실관계를 확인했다. 그래서 쇼스타코비치의 파란만장했던 삶이 모자이크처럼 펼쳐지는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듣하다. 아울러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이 만들어진 배경과 상황, 반응, 평가 등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분석이 어우러져 단순한 전기로 읽히지 않는다. 쇼스타코비치를 다룬 여러 책 중 분량과 형식, 내용 면에서 독보적인 이유다.

책을 펼치면 천재 작곡가이자 독재 정권의 억압에 순응하고 만 나약한 지식인, 본인과 가족의 안위를 위해 체제 선전의 도구로 쓰이면서도 자유로운 창작을 갈망했던 예술가의 굴곡진 인생이 생생하게 다가온다.

1970년 즈음 쇼스타코비치는 누군가와 대화 중 이런 말을 남긴다. “‘당의 지침’이 없었다면 내가 달라졌을까 물었소? 당연히 달라졌을 거요. 내가 교향곡 4번을 작곡했을 때 추구하던 노선은 내 작품에서 더 선명하고 날카롭게 부각되었을 거요. 나는 화려함을 더 많이 드러내고 더 많이 냉소적으로 굴었을 거요. 내 생각을 감추려하기보다 공개적으로 드러냈을 거요. 그러니까 더 순수한 음악을 썼을 거요. 그러나 내가 쓴 음악이 부끄럽지는 않소. 나의 모든 곡을 다 사랑하오. 절뚝거리는 아이라도 부모에게는 늘 사랑스러운 법이라지 않소.”(708쪽)


이강은 선임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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