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책선 로봇 투입, 복무기간 단축 여파
군 전투력 약화·단합 저해 행태 안 돼
월급 인상 유보·복무기간 조정 필요
표를 노린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정치는 처음엔 달콤하지만 뒷맛이 쓰다. 국가재정을 파탄 내고 국가기관의 근간을 흔든다. 무엇보다 병역 포퓰리즘은 군의 단합을 저해하고 전투력을 약화시킨다. 이적행위와 같은 결과를 낳는 해악이다. 최근 병사 월급 인상과 복무기간 단축의 후유증에 우리 군이 휘청이는 것이 대표적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병사 월급 2025년 205만원 공약의 이행에 들어가면서 부작용이 불거진 것은 묵직한 시사점을 던진다. 소위와 하사 1호봉 월급은 2025년 184만원과 179만원이 된다. 수당을 더해 250만원 정도 받지만 병사에는 없는 세금을 내야 한다. 의무 복무기간은 훨씬 긴데 월급 차이는 나지 않는 상황이 빚어지는 것이다. 군 간부 인기 하락은 당연한 결과다. 육군 3사관학교 경쟁률은 2020년 4.7대 1에서 지난해는 3.6대 1로 급락했다. 육·해·공군 부사관 충원율은 2022년 82.9%로 전년 대비 7.3%포인트나 떨어졌다. 병사 월급 인상의 예상치 못한 나비효과다. 군 간부 허리 계급의 역량 저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부사관들은 지난 6일 이종섭 국방부 장관을 만나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했다. 형평성을 맞추려면 병사와 군 간부 월급 인상에 매년 15조원 정도의 예산이 필요하다고 한다. F-35 스텔스 전투기 50∼60대를 살 수 있는 돈이 매년 월급으로 더 들어가는 셈이다. 병사와 초급간부 처우를 적절한 수준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지만 병사 월급 205만원은 과도하다. 접는 게 옳다. 나랏빚이 1000조가 넘고 북핵을 머리 위에 이고 있는 국가가 할 일은 아니다. 국민 개병주의를 채택한 나라에서 병사의 사기는 돈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윤 대통령이 공약을 지키지 않을 때 되레 박수를 칠 국민이 많을 것이다.
이뿐만 아니다. 최근 군이 최전방 철책선 경계근무에 인공지능(AI)을 갖춘 드론·로봇을 투입하고 무인 초소로 대체하는 유·무인 복합시스템을 도입하기로 한 것은 병사 복무기간 단축의 후유증이 얼마나 큰지 보여준다. 저출산 속 병사 복무기간 단축으로 징집 대상 자원이 급감하면서 올해 군 병력이 50만명을 밑돌고, 2043년에는 33만명으로 줄어드는 점을 고려한 고육책이기 때문이다. 유·무인 복합시스템 자체도 신뢰가 가지 않는다. 그동안 철책 탈북, 임진강 수영 월북 등으로 철책선이 번번이 뚫린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외려 지금처럼 병사들이 24시간 순찰·감시하는 시스템을 유지하면서 드론과 로봇을 더 투입해야 할 상황이 아닌가.
2018년 병사 복무기간을 18개월로 3개월을 줄여 철책선 무인 초소를 검토해야 할 상황을 초래한 문재인 전 대통령의 책임을 따지지 않을 수 없다. 저출산 심화로 상비병력 유지가 어려워지는데도 지지율에 눈이 멀어 병역기간 단축을 강행한 것은 참회록을 써야 할 일이다. 병사 전투력은 군 생활의 연륜에 비례한다. 한국국방연구원(KIDA)은 보병이 숙련도를 발휘할 수 있는 기간을 분석한 결과, 최소 16개월 이상 필요하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러니 18개월 복무하고 전역하는 지금은 숙련도 높은 병사가 부족할 수밖에 없다. 북한이 무려 120만명의 상비군을 보유하고 남자는 10년, 여자는 7년을 복무하는 것과 대비된다. “의무 복무기간이 18개월로 단축되며 일선 지휘관들이 전전긍긍하고 있다. 장병들의 전투 기량은 떨어지고 열심히 양성하여 활용할 만하면 전역한다. 특단의 대책이 시급하다”는 최윤희 전 합참의장의 지적은 정곡을 찌른다.
정부와 군 당국은 상비병력 유지가 어렵다면 국민들에게 상황을 소상히 설명하고 복무기간 조정을 고민해 보기 바란다. 1968년 1·21 사태 때 36개월로 6개월, 2018년 연평도 포격도발 때 18개월에서 21개월로 연장한 전례가 있지 않은가. 국방 분야가 더 이상 포퓰리즘 정치의 희생양이 돼선 곤란하다. 군의 필요성이 아닌 그저 표를 얻기 위해 병역 포퓰리즘을 남발하는 정치인에게는 표를 주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국가안보를 지키는 길이다. 작금의 군 현실을 정치인의 병역 포퓰리즘을 막기 위한 징비록으로 삼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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