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펌들 AI 본격 활용 업무효율 높여
법무부, 차세대 KICS 내년 10월 개통
검·경 조서 쓸 때 참조 사건 추천해줘
로톡은 일부분… 적용 분야 무궁무진
국내 관련기업 30여개… 대부분 소규모
“AI는 도구일 뿐… 판단은 법률가의 몫”
최근 미국 오픈AI의 생성형 인공지능(AI) 챗GPT 열풍과 맞물려 국내 법조계에도 AI 바람이 다시 불고 있다. 챗GPT 활용 방안과 법률 산업에 미칠 영향 등을 둘러싼 논의가 활발한 가운데, 법률 서비스에 AI를 접목하는 게 진정한 의미의 ‘리걸 테크’(Legal Tech)란 지적이 나온다. 다만 AI의 한계가 분명해 AI가 법률가를 대체할 수 없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해외 판례 검색 등 유용… AI 활용 사례 증가
31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형 로펌들을 중심으로 챗GPT를 비롯한 AI를 업무에 활용하는 방안에 대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챗GPT를 이미 활용 중인 경우도 있다. 법무법인 화우가 대표적이다.
화우에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블록체인 등 신사업 분야를 담당하는 신사업 그룹장인 이광욱 변호사는 “(무료로 공개된)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 라이선스와 관련해 최근 챗GPT로 해외 판례를 찾아봤다”며 “챗GPT 정보의 신뢰성 문제가 있긴 하지만, 국내엔 흔치 않은 신사업 관련 해외 소송 사례의 단서가 나오면 리서치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법무법인 디라이트는 오는 11일 ‘생성형 AI의 충격과 법적 과제’를 주제로 세미나를 연다. AI 관련 지식재산권(IP) 이슈 등을 짚는다.
변호사 업계에서 AI 법률 서비스나 시스템이 안착한 성공 사례는 손에 꼽힌다. IP 전문인 법률사무소 미주는 AI 기반의 IP 침해 대응 솔루션을 자체 개발해 방탄소년단(BTS), EBS 펭수, 골프 용품 브랜드 타이틀리스트 등의 IP를 보호·관리한다.
법무법인 태평양은 AI로 문서 조회, 서류 발급 등 반복 업무를 자동화했다. 지난해 6월엔 ‘트라도스’란 전문 번역 툴을 도입했다. 다국적 기업, 외국 로펌 등 해외 업무가 급증하고 있어서다. 태평양은 해외 사무소 8곳을 운영 중이다. 국내 로펌 중 가장 많다.
법무법인 대륙아주는 AI 법률 문서 검색·분석 엔진 ‘도큐브레인’을 개발해 콘텐츠 관리 시스템을 구축했다. 대륙아주 관계자는 “구성원들이 작성한 문서를 검색하기 용이하고, 관련 법령 정보도 조회해 볼 수 있어 업무 생산성과 효율성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이런 추세에 따라 리걸 테크 정의를 재정립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리걸 테크는 법률 산업에 과학기술을 융합한 현상을 뜻하는데, 로앤컴퍼니의 로톡 등 사설 법률 플랫폼에 국한되는 건 협의에 지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정신동 강릉원주대 교수(법학)는 “리걸 테크의 본질은 AI를 이용해 법률 사무를 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리걸 테크 산업은 다른 나라들에 비하면 걸음마 단계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이 지난해 말 발간한 ‘리걸 테크 도입 및 대응을 위한 법무정책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법률 플랫폼을 포함한 관련 기업은 30여개 정도다. 대다수는 소규모 스타트업이다.
◆법무부, 리걸 테크 TF 운영한다는데… “AI, 보완재”
리걸 테크 산업 발전을 위한 정부 차원의 지원이나 대책은 없는 실정이다. 법무부는 박범계 전 장관 시절인 2021년 9월 만든 ‘리걸 테크 태스크포스(TF)’를 지금도 운영 중이라지만, 논의 경과는커녕 위원 명단도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법무부는 국민의힘 유상범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서 “리걸 테크 산업 육성을 위한 제도 개선, 변호사 제도의 공공성 확보 방안 등 다양한 논의가 진행 중이고 회의 수당으로 지난해까지 총 1260만원을 썼다”면서도 “구체적 내용이 공개되면 업무의 공정한 수행 등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고 밝혔다.
법무부는 다만 약 1505억원을 들여 내년 10월 개통할 예정인 차세대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킥스)에 딥러닝(기계 학습) 등 AI 기술을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AI 기반 알고리즘으로 검사와 경찰이 조서 등을 작성할 때 참조할 수 있는 유사 사건 자료를 추천해 주고, 피조사자 진술을 실시간으로 글로 옮기는 서비스가 도입된다.
전문가들은 미래에도 AI는 법률가의 대체재가 아닌 보완재 역할을 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국인공지능법학회 회장을 지낸 이상용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AI는 도구로 쓰일 것”이라며 “변호사가 소장을 쓸 때 사건 얼개만 써 놓으면 AI가 인터넷상 지식으로 그럴싸한 말을 만들어 낸다든가, 의뢰인이 1∼2시간 얘기한 것을 법률 용어로 정리하는 식으로 도와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정신동 교수는 “AI 기술 수준이 올라가면 신입 변호사나 변호사 업무를 보조하는 사무원의 역할이 상당히 축소될 것”이라면서도 “법률은 사회규범이라 AI가 아무리 고도화돼도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 규범적인 가치판단은 결국 사람, 법률가가 할 일”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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