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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2학년생인 딸아이의 학교에서 학부모 참관 수업이 있었다. 작년에도 한 차례 있기는 했으나 온라인 화상 형식이었으니 대면으로 진행되는 이번 수업이 실질적인 첫 참관 수업이었다. 아이가 아홉살이 되도록 딱히 학부모로서의 정체성을 자각하지 못하고 지내던 나는 드디어 내가 학부모의 자격으로 뭔가를 하는구나 싶어 긴장 반 기대 반으로 학교에 갔다.

부모들을 위해 준비했을 동요 합창을 시작으로 스무명 남짓한 아이들이 담임선생님과 이런저런 문답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수업의 하이라이트가 시작되었다. 바로 장래희망 발표 순서였다. 아이들 전원이 번호 순서대로 한 명씩 교단으로 나가 자신이 잘하는 것, 자신이 좋아하는 것, 그래서 장차 되고 싶은 것, 이렇게 세 항목에 대해 발표하는 것이었다.

“제가 잘하는 것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 부르기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것은 아이돌처럼 춤추기입니다. 그래서 제가 되고 싶은 것은 아이돌입니다.”, “제가 잘하는 것은 태권도 격파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것은 사범님에게 태권도를 배우는 것입니다. 제가 되고 싶은 것은 태권도 사범입니다.”

다들 어쩌면 저리도 야무지게 말을 잘할까 감탄하고 있는데 마침내 딸아이 차례가 되었다. “제가 잘하는 것은 친구들 앞에서 시를 읽는 것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것은 시를 쓰는 것입니다.”

나로서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평소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것만 좋아하던 녀석이 뜬금없이 웬 시 타령인가. 그러나 어리둥절한 한편으로 나는 ‘저 녀석이 이제 보니 시인 지망생이었구나’ 싶어 놀랍고 대견한 마음이 컸다. 아이는 씩씩하게 말을 이었다. “그래서 제가 되고 싶은 것은, 청소부입니다!”

나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아이에게 물었다. “시 읽기를 잘하고 시 쓰기를 좋아하는데 꿈이 청소부라는 건 좀 이상하지 않아?” 아이가 눈을 크게 떴다. “왜? 거리를 청소하는 건 착한 일이잖아.” 동문서답이었지만 나는 말을 이었다. “시 읽기와 시 쓰기를 좋아하면 당연히 시인이 되고 싶어야 하는 거 아니야?” 아이의 눈이 더 커졌다. “아닌데? 나는 시는 좋지만 시인 되는 건 싫은데?”

듣고 보니 내 질문이야말로 우문이었다. 사실 어떤 것을 좋아하고 잘한다고 꼭 그것을 장래희망으로 삼으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멋쩍어진 나는 괜히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시를 읽고 시를 쓰면서 거리도 깨끗하게 청소한다면 정말 최고로 멋진 청소부겠다, 그치?”


김미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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