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공무원 출신 더불어민주당 오영환 의원이 내년 22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21대 국회 들어 민주당에서는 우상호 의원 등 중진 의원들의 불출마 선언이 있었지만 초선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오 의원은 이날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무거운 마음으로 긴 고민끝에 이 자리에 섰다. 22대 총선에 출마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오 의원은 회견에서 “소방동료들 희생과 동료들이 지키려 했던 국민들의 인명피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부족함을 인정하고 내려놓을 용기를 냈다. ‘비극을 줄이기 위해 정치에서 제가 역할을 해야 한다’는 오만함도 함께 내려놨다“고 했다.
오 의원은 소방시설법 전부개정안과 화재예방법∙화재조사법 제정안, 소방관 공상추정법 개정안을 자신의 의정활동에서 ‘영광스러운 순간’이라고 말했다. 반복되는 대형 화재 피해를 줄이고, 질병과 부상에 노출된 소방관들을 국가가 돌볼 수 있도록 한 법안들이다. 오 의원은 “감히 혼자의 힘으로 이룬 일들이라 말할 수는 없다“며 “현장에서 느낀 재난안전 환경의 한계를 바꿔가기 위해 직접 법과 제도를 바꿀 수 있었던, 제 삶의 가장 큰 영광된 시간이었다”라고 말했다.
다만 오 의원은 같은 기간 “비극과 절망도 뒤따랐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임기 동안 사망한 고 김국환∙송성환∙신진규∙김동식∙노명래∙권영달∙이형석∙박수동∙조우찬∙성공일 소방관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말하면서 “한 명, 또 한 명. 매년 현장에서 동료들이 쓰러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 2022년 초 소방관 3명이 순직한 평택 물류창고 화재를 언급하면서는 “처음으로 통과시킨 건축법이 시행 되기 전에 발생한 화재였다”며 “그들의 영결식이 끝난 뒤, 많은 노력과 변화에도 불구하고 한발 늦어버린 현실의 한계 앞에 절망했다”고 토로했다.
특히 지난 3월 6일 만 29세인 성 소방관이 전북 전주의 한 주택화재 현장에서 순직한 것을 두고 “더는 버텨낼 여력이 없었다”고 말했다. 성 소방관은 당시 대피한 사람으로부터 “안에 사람이 한 명 더 있다”는 말을 듣고 70대 남성을 구조하기 위해 주택 내부로 진입했지만 결국 그와 함께 숨진 채 발견됐다.
오 의원은 “소방관이던 시절에는 같은 사명을 현장에서 이어가는 것으로 동료를 잃은 비통함을 이겨낼 수 있었지만 지금은 소방동료들의 희생과 그들이 막고자 했던 인명피해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자리에 있다”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에게 고언을 남기기도 했다. 오 의원은 “진정 국민의 삶과 국가의 미래를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인제 그만 손에 든 칼을 내려놓으실 것을 요청드린다”라며 “어떤 세력이든 집권한 이상, 정적들과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 역시 끌어안고 보듬어야 하는 국민일 뿐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민주당도 반성할 부분이 분명 있겠지만 전 집권세력에게 책임을 돌린다고 오늘의 국민 삶이 나아질 수는 없다“며 “상대를 비난하고 혐오하는 시위소리를 어린아이들이 따라부르는 이 시대의 참담함을 멈출 수 있는 것은, 결국 국민 통합을 위해 권력을 손에 쥔 이가 먼저 내미는 화해의 손길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음은 오 의원의 기자회견문 전문.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의정부시 갑 출신 오영환 국회의원입니다.
4월 10일 오늘은 제22대 총선을 일 년 앞둔 날입니다.
저는 무거운 마음으로 긴 고민 끝에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저는 22대 국회의원 총선거에 출마하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국민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
국민 여러분, 저는 대한민국 소방관 출신입니다.
10년에 가까운 현장 소방관으로서의 경험에 비추어 더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다짐으로 정치에 투신했고 많은 의정부 시민들의 성원과 선택으로 이 자리에 설 수 있었습니다.
3년 전, 저의 소방관으로서 마지막 임무는 2019년 독도 앞바다에 추락한 동료 소방항공대원들을 수색하는 일이었습니다.
당선된 직후 제가 처음 찾았던 곳은 저의 동료들과 수많은 순직 소방관들이 묻힌 국립현충원이었습니다. 그 묘역 앞에서 저는 함께 하던 사명을 이어가지 못해 죄송하다고, 그러나 여러분과 함께 꿈꾸던 더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는 세상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드렸습니다.
그 약속처럼 21대 국회에서 생명안전을 위한 의정활동에 최선을 다했고 나름의 많은 성과가 있었습니다.
반복되는 대형화재 피해를 줄이기 위한 소방시설법 전부개정과 화재예방법, 화재조사법 제정을 이뤄낼 수 있었습니다. 또한 많은 현장에서 극도의 위험과 유독물질, 정신적 위협에 노출되는 소방관들이 각종 질병과 부상을 당했을 때 국가가 앞장서 보호토록 하는 소방관 공상추정법 개정을 이뤄냈습니다.
현장에서 느껴왔던 재난 안전 환경의 한계와 그 변화를 위해, 직접 법과 제도를 바꿔나갈 수 있었던 제 삶의 가장 큰 영광된 시간입니다.
감히 혼자의 힘으로 이룬 일들이라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많은 선배 동료 국회의원들의 공감과 협력, 그리고 국민 여러분의 관심과 성원으로 이루어낼 수 있었습니다.
의정부 시민 여러분이, 그리고 정치가 저에게 기회를 줌으로써 이룰 수 있었던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깊이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사회와 역사를 바꾸어 가는 시간, 많은 비극과 절망도 뒤따랐습니다.
故 김국환 소방관. 故 송성한 소방관. 故 신진규 소방관.
故 김동식 소방관. 故 노명래 소방관. 故 권영달 소방관.
故 이형석 소방관. 故 박수동 소방관. 故 조우찬 소방관.
그리고 故 성공일 소방관.
제 마음속에 비석을 세운, 지난 3년간 순직한 소방관들의 이름입니다.
한 명, 또 한 명. 매년 현장에서 동료들이 스러졌습니다.
급류에 휩쓸려 실종된 젊은 구조대원이 수색 끝에 발견됐던 날도, 화재현장에서 후배들을 먼저 내보낸 채 3일 만에 발견된 어느 구조대장의 마지막도, 행복한 신혼생활을 꿈꾸던 젊은 소방관의 영결식도 여전히 가슴에 선명합니다.
힘들게 통과시킨 법이 있었습니다.
2020년 4월 이천 냉동물류창고 화재 대형참사를 겪으며 임기 시작 후 제가 첫 번째로 발의한 법안이었습니다.
반복되는 대형화재의 주된 원인인 가연성 건축자재를 더이상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건축법 개정이었습니다.
저는 20년 동안 전문가들이 주장해온 이 법 하나만 개정해도 향후 수백 명의 희생을 막을 수 있다는 확신으로 강력하게 추진했고, 예상보다 빠른 1년여 만에 본회의에서 통과되었을 때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들었다”는 기분에 자랑스러워 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공사 중이던 한 냉동창고에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이 법이 시행되기 전 이미 지어지고 있던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날 그 자리에서 세 명의 소방관이 순직했습니다.
저는 그들의 영결식이 끝난 뒤, 많은 노력과 변화에도 불구하고 한발 늦어버린 현실의 한계 앞에 절망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이후에도 의정활동을 이어왔고, 많은 의정부 시민들과 국민 앞에, 그리고 저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한 달 전 3월 9일.
주택화재 현장에서 ‘사람이 있다’는 말에 뛰어들어 순직한 만29세, 또 한 명의 젊은 소방관의 유골을 현충원에 묻어야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저는 더이상 버텨낼 여력이 없는 저의 한계를 받아들였습니다.
국민 여러분, 저는 뼛속 깊이 소방관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지난 의정활동의 시간, 159명의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을 비롯해 수많은 화재, 붕괴, 태풍, 수해, 각종 재난 현장에서 유명을 달리하신 희생자들의 얼굴이 가슴에 맺혀있습니다.
소방관으로 근무하던 날엔 동료들의 가슴 아픈 희생 소식 뒤에도 같은 사명을 현장에서 이어가는 것으로 깊은 비통함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재난사고 현장에서 국민의 주검을 수없이 마주하면서도, 소방관의 임무에 더욱 최선을 다함으로써 그 아픔을 버텨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저는 소방동료들의 희생과 그들이 지켜내기 위해 노력해온 이 사회의
수많은 재난사고 인명피해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자리에 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이제 저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내려놓을 용기를 냅니다. 재난으로 인한 비극을 더욱 줄이기 위해서라도 정치에서 제가 계속 역할을 해야 한다는 오만함도 함께 내려놓습니다.
국민 여러분,
21대 국회는 낯선 감염병 사회적 재난으로부터 국민의 삶과 희망을 지켜내야 하는 의무 속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과연 국회가 그 이후의 과정에서 사회적 갈등을 담아 녹여내는 용광로의 역할을 얼마나 충실하게 수행하여 국민께 안정과 신뢰를 드렸는지, 이제는 돌아봐야 할 때라 생각합니다.
오늘날 우리 정치는 상대 진영을 누가 더 효과적으로 오염시키는지를 승패의 잣대로 삼으려 하고 있습니다.
무너진 민생경제와 국민의 고통 속에 현 정부 실정을 지적하는 것조차 방탄으로 매도하고, 모든 문제가 전 정부 탓이냐 현 정부 무능 때문이냐의 극한대립에서 단 한치도 벗어나질 못하며 작은 양보와 타협조차 이루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화를 거부하고 오로지 수사와 감사의 칼부터 들이대는 윤석열 대통령의 오만과 독선, 고집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그러나 2020년 이후 국민이 바라본 국회 역시 국민의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생각합니다.
오로지 진영논리에 기대어 상대를 악마화하기 바쁜, 국민들께서 외면하는 정치 현실에 대해, 책임 있는 한 명의 정치인으로서 결국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습니다.
극단의 갈등 속에서 서로를 적으로 규정하고 배척하는 이들을 설득하고 조정해 낼 정치적 역량을 결국 제 안에서 찾지 못했음을 겸허히 인정하고 받아들입니다.
국민들께서 새로운 정치, 변화에 대한 기대를 걸어주신 정치신인이기에 더 큰 책임을 느끼며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날 또다시 정치개혁이 화두로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책임져야 할 이가 책임지지 않고, 잘못한 이가 사과하지 않고, 오로지 기득권과 자리에 연연하는 모습이 우리 정치에서 개혁되어야 할 첫 번째 대상이라 생각합니다.
책임을 인정하는 이 없이 말만 앞세운 개혁이 무슨 힘이 있는지 국민 여러분께서 묻고 계십니다.
저는 그 물음에 ‘내려놓음’이라는 답을 적습니다.
윤석열 대통령께 한 말씀 고하고 싶습니다.
진정 국민의 삶과 국가의 미래를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이제 그만 손에 든 칼을 내려놓으실 것을 요청드립니다.
이전 정권을 겨냥한 냉혹한 수사의 칼날이 결코 성공한 대통령, 성공한 정부의 요건이 될 수는 없습니다.
상대 정당을 극악한 부패정당으로 매도한다 한들, 내년 선거에서 국민들께서 집권여당을 선택할 것이란 착각을 멈추길 바랍니다.
오히려 검찰과 정권에 대한 불신을 극대화하며 진영 갈등만 더욱 깊어진 채 혐오만 가득한 선거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독재정권으로부터 수차례 생명까지 위협받았지만, 집권 뒤에 모든 원한을 넘어 상대를 용서하며 화해의 손길을 내밀고, 뿌리 깊은 국민 갈등을 치유해냈습니다.
어떤 세력이든 집권한 이상, 정적들과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 역시 끌어안고 보듬어야 하는 국민일 뿐입니다.
우리 당 역시 집권 전후의 시간 동안 갈등 치유와 국민 통합에 얼마나 노력했는지 반성해야 할 부분이 분명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전 집권세력에게 책임을 돌린다고 오늘의 국민 삶이 나아질 수는 없습니다.
고통받는 민생경제와 첨예한 국제정세 속 백척간두에 놓인 오늘날 대한민국은, 이러한 분열과 갈등에서 헤어나오지 않으면 이 험난한 위기를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윤석열 정부와 집권여당은 마땅히 국민의 고통과 국가의 앞날을 두려워하고, 이제는 지도자가 결단해야만 합니다.
상대를 비난하고 혐오하는 시위소리를 어린아이들이 따라부르는 이 시대의 참담함을 멈출 수 있는 것은, 결국 국민 통합을 위해 권력을 손에 쥔 이가 먼저 내미는 화해의 손길일 수밖에 없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지금도 정치의 힘을 믿습니다.
정치를 통해 이 세상에 가장 소중한 생명과 안전을 지켜낼 수 있고 국민의 깊은 상처와 갈등을 치유하며 통합과 화해의 길로 이끌 수도 있습니다.
정치를 통해 우리 아이들에게 더 깨끗하고 회복된 환경을 돌려줄 수도 있으며, 부강한 경제 대국을 만들 수도, 휘청이는 가계경제에 신음하는 국민들께 희망을 선물할 수도 있습니다.
정치의 힘이 더욱 신뢰받을 수 있도록, 저는 약속을 지켜야 할 때가 왔음을 느낍니다.
정치 입문을 제의받던 자리에서 저는 여러 번 거절 끝에 이런 말을 했었습니다.
4년 뒤에는 무조건 다시 소방현장으로 돌아간다고.
여러 책임감으로 한 번 더 도전을 고심했지만, 단 한 순간도 돌아간다는 마음은 변한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현장으로 돌아가는 날을 꿈꾸며 그 꿈의 힘으로 이겨낼 수 있었던 무게에 벅찬 시간이었습니다.
이제 저는 국민을 위해 헌신하던 저의 사명, 제가 있던 곳이자 있어야 할 곳,
국민의 곁을 지키는 소방관으로 저는 돌아가고자 합니다.
소방관 출신으로 처음 국회에 입성했던 만큼, 맡겨주신 역할을 충실히 한 뒤 본연의 사명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정치에 대한 무너진 신뢰 회복에 작은 보탬이라도 될 수 있길 감히 소망합니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와 함께 평범한 우리네 서민 중산층과 민주주의, 평화, 인권, 복지, 평등, 그리고 국민 생명안전의 가치를 대변하는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으로 의정활동을 할 수 있어 제 일생의 가장 큰 보람과 영광입니다.
부족한 저는 내년 정치인으로서의 도전은 멈추겠지만, 21대 국회 마지막 날까지 국민의 생명안전을 더욱 두터이 보호할 수 있는 우리 사회의 변화와 발전을 단 한걸음이라도 더 이루기 위해, 그리고 저와 제 딸이 시민들과 더불어 살아갈 의정부의 행복과 발전을 위해 더욱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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