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0억원대 전세 보증금을 가로챈 혐의를 받는 이른바 ‘건축왕’ 일당에게 범죄단체조직죄를 적용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수사 과정에서 이 죄명이 적용돼 법정에서 인정되면 건축왕 일당은 국내 첫 전세사기 범죄조직이 된다. 이번 사건으로 인한 피해자 수는 481명, 피해 액수는 388억원에 달하는 가운데 전체 고소 건수만 900건이 넘어 피해 규모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23일 경찰 등에 따르면 사기와 공인중개사법 위반 등 혐의를 받는 건축업자 A(61)씨 등 61명의 전세사기 혐의자에 대해 우종수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은 최근 전국 수사지휘부 화상회의에서 “조직적인 전세사기에 범죄단체조직죄 적용을 적극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이런 지시 이후 인천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1계는 A씨 일당을 범죄조직으로 볼 수 있는지를 따지기 위한 법률 검토에 착수했다. 최근 피해자 3명이 극단적 선택을 하면서 경찰 내부에서도 엄벌 의지를 보이기 위해서라도 A씨 일당에게 범죄단체조직죄를 적용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형법 114조의 범죄단체조직죄는 사형, 무기징역, 4년 이상의 징역형에 해당하는 범죄를 저지르려고 단체를 조직하거나 가입해 구성원으로 활동한 경우 적용할 수 있다. 유죄가 인정되면 조직 내 지위와 상관없이 조직원 모두 같은 형량으로 처벌받는다. 예컨대 계좌를 빌려주는 등 사기 범행을 직접 하지 않은 가담자에게도 사기범과 같은 형량 선고가 가능하다.
대법원 판례에선 내부 질서를 유지하는 최소한의 통솔체계와 특정 다수, 동일한 범행 목적, 시간적 계속성 등을 요건으로 한다. ‘조폭’ 등 폭력조직에 주로 적용되던 것에서 벗어나 최근 보이스피싱 조직이나 텔레그램 ‘박사방’ 가담자들에게 적용돼 처벌이 이뤄졌다. 경찰은 건축왕 A씨가 정점에서 공인중개사나 중개보조원 등과 함께 조직적으로 범행한 것으로 보고 이들 사이의 통솔 체계를 집중적으로 분석할 예정이다.
건축왕 일당의 일부 혐의를 먼저 기소한 검찰 공소장에는 A씨가 2010년 설립한 단체에서 회장을 맡아 업무 전반을 총괄했고 기획공무팀, 중개팀, 주택관리팀 등을 두고 공인중개사와 중개보조원까지 조직적으로 범행에 참여시킨 것으로 적혀 있다.
앞서 인천지검 부천지청은 전세자금 대출사기 조직을 적발해 범죄단체조직죄 등으로 기소한 바 있다. 다만, 직접 보증금을 가로챈 조직이 범죄단체로 인정된 사례는 없었다.
법조계 안팎에선 “범행에 가담해 역할을 분담한 만큼 단체로 볼 여지가 크다”는 해석과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 A씨 일당의 사기 혐의부터 입증하는 게 우선”이라는 신중론이 엇갈린다. 이들을 범죄단체로 볼 경우, 단체 구성 시점과 조직원을 규정하는 것도 복잡한 문제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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