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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시대 설탕은 왕이나 귀족들만 즐기는 사치품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1960∼1970년대까지 명절 선물로 주고받을 정도로 귀한 대접을 받았다. 설탕은 인간의 식습관을 변화시킨 것뿐 아니라 인류사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미국의 작가 헨리 홉하우스가 쓴 ‘역사를 바꾼 씨앗 5가지’에도 설탕이 등장한다. 카리브해를 둘러싼 노예무역의 근원도 설탕이다. 콜롬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1492년 이후 스페인, 포르투갈, 영국 등 서유럽 국가들은 쿠바 등 서인도제도에 사탕수수를 심고 아프리카 흑인들을 노예로 부려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흔히 ‘설탕의 소비는 문명의 척도’라고 한다. 문명이 발달하고 국민소득이 올라갈수록 설탕 소비량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만병의 근원인 비만의 주범도 설탕이라는 건 아이러니 하다. ‘악마의 백색가루’로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급기야 노르웨이는 1922년 세계 최초로 비만 등을 예방하기 위해 초콜릿이나 설탕이 함유된 제품에 설탕세를 부과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2016년 가당음료에 설탕세 부과를 권장하면서 도입 국가는 45개국으로 증가했다. 국내에서도 2021년 당류가 함유된 음료에 건강부담금을 부과하는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을 놓고 찬반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최근 설탕값이 천정부지로 뛰고 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올 4월 세계 설탕 가격지수는 149.4로 지난 1월에 비해 27.9% 올랐다. 석 달 사이 28% 폭등했다. 세계 1위 설탕 생산국인 브라질에서 전례 없는 폭우로 생산량이 대폭 감소했다. 중국·태국 등에서도 생산량이 감소하자 2위 수출국 인도가 원당 수출을 규제하고 나서면서 설탕 가격이 12년 만에 최고치로 치솟았다. 국내 제당 3사가 이달 말 설탕 가격 인상을 검토하면서 빵, 과자, 아이스크림 등 식품 가격이 오르는 슈거플레이션(설탕+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물가 관리에 비상이 걸린 정부로서는 고작 업계에 가격 인상 자제를 읍소하는 것 외엔 방도가 없다. 설탕값이 다른 식음료품 가격의 오름세를 자극하는 건 서민들에게는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다. 한국인의 하루 설탕 섭취량은 WHO 권고량의 3.5배에 이른다. 이참에 설탕을 줄이는 쪽으로 식생활 습관을 바꿔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김기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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