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극작가 안톤 체호프 ‘4대 연극’ 꼽혀
김광보 연출 30년 만에 첫 체호프 작품 도전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 중인 연극 ‘벚꽃 동산’은 ‘갈매기’, ‘바냐 아저씨’, ‘세 자매’와 함께 러시아를 대표하는 극작가 안톤 체호프(1860∼1904)의 4대 연극으로 꼽힌다. 고전 명작들이지만 극적인 사건이나 명확한 서사가 있지 않아 연출가와 배우의 역량이 매우 중요하다.
‘벚꽃 동산’으로 연출 데뷔 후 30년 만에 처음 체호프의 작품에 도전한 김광보(59) 국립극단 단장 겸 예술감독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개인적 선호와 거리가 먼) 체호프(작품)에 대해선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며 “그런데 지난해 초 ‘벚꽃 동산’에 나오는 늙은 하인 피르스의 마지막 대사 ‘살긴 살았지만 도무지 산 것 같지 않아’에서 인생의 성찰과 함께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관객이 다양한 인물 군상에 자신의 삶을 투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연출을 맡기로 결심했다”고 덧붙였다.
이 작품은 몰락한 러시아 귀족 집안의 딸이자 벚꽃 동산의 주인인 라네프스카야와 이 집안 농노의 아들이지만 부유한 사업가가 된 로파인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라네프스카야는 소중한 벚꽃 동산마저 경매로 넘어갈 상황에서 로파인의 애정 어린 조언을 대책 없이 외면한다. 결국 집과 벚꽃 동산은 로파인의 손에 넘어가고, 라네프스카야와 가족들은 멀리 떠난다. 김 단장은 “그동안 ‘벚꽃 동산’(작품들)은 라네프스카야의 허황된 모습을 많이 강조했는데 제게는 전혀 달라 보였다”며 ‘희비극’으로 연출했다고 설명했다. 라네프스카야와 로파인 역에는 인기 드라마 ‘열혈사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명품 조연으로 활약한 백지원과 지난해 ‘세인트 조앤’으로 연극 무대에 복귀한 이승주가 각각 맡았다. 두 배우 모두 김 단장이 9년 전 연출한 노르웨이 극작가 입센(1828∼1906)의 ‘사회의 기둥들’에서 처음 함께한 인연이 있다. “돈으로 따질 수 없는, 내가 지키고 싶은 가치에 대한 이야기”라고 설명한 백지원은 출중한 연기력으로 라네프스카야를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이들을 포함한 배우들의 열연과 투명한 유리 저택 등 무대 연출이 돋보인다. 오는 28일까지 공연하며 전석 매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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