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여우주연상 수상자의 철학 담겨
발레리나→배우→액션배우→UN 활동
“모두가 세상을 돕는 현장에서 만나기를”
“유연함을 유지하고, 한계를 인지하고, 자신의 사람을 찾도록 노력합시다.”
올해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양자경(량쯔충·Michelle Yeoh)이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 졸업생들에게 전한 조언이다.
말레이시아 태생의 양자경은 3가지 원칙이 자신의 인생에서 장애물을 극복하고, 어쩌면 자신의 성공을 방해했을 고정관념을 무너뜨리게 해준 가치관이었다고 강조했다. 양자경은 지난 24일(현지시간)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 소재한 하버드대 로스쿨 졸업식 강연에서 “졸업생 여러분의 미래는 아마도 밝겠지만 예측하기 힘든 미래로 뛰어들 것인데, 저도 높은 곳에서 무서운 빈 공간으로 뛰어들었던 적이 많았다”고 밝혔다.
하버드매거진 등 외신에 따르면 양자경의 졸업식 연설은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더스타 등 말레이시아 언론도 28일 양자경이 세계 최고의 대학 졸업생을 상대로 한 연설에 관한 칼럼을 게재하며 공감을 표시했다.
◆ “넘어졌을 때 침착한 태도 중요”
양자경은 조언을 꺼내들기에 앞서 로스쿨 졸업식이라는 것을 고려한 듯, 자신은 법학을 공부하지도 않았으며 변호사 등의 배역을 맡은 적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인생을 도약(뛰어들기)과 다이빙으로 가득 찬 시간이었다고 규정했다. 그녀는 “어떻게 추락(절망)에서 살아남았는지 양자경의 3가지 방법이 있다”며 졸업생들의 박수와 웃음을 끌어냈다.
연설 도입부에 양자경은 자신이 영국 왕립무용학교에서 춤을 공부하던 도중 입은 척추 부상으로 발레리나의 꿈을 접었는지를 이야기했다. 절망 가득한 시간을 보내야 했을 것이다. 그때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던 이는 무용학교의 교장이었다. 교장의 조언 덕분에 양자경은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양자경은 “부상으로 그때 제가 꿈꾸던 삶이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교장선생님 덕분에 저는 상상 너머의 직업과 이력을 찾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당시 교장선생님이 저에게 해준 말은 미래에 대해 유연하게 생각하라는 것이었다”며 “넘어지거나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 긴장을 풀고 충격에 대비하는 게 본능이지만, 사실 가장 안전하게 해야 할 일은 침착함을 유지하고 자신을 둘러싼 세상의 변화에 호기심을 갖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1 원칙으로 삼은 유연함과 침착함 유지를 강조한 것이다.
이러한 태도 덕분에 발레 외에 다른 인생행로가 있다는 것을 수용할 수 있었다. 학창 시절을 마무리한 뒤 양자경은 홍콩 영화와 광고에서 활동할 수 있었다. 1983년 미스월드 대회 출전을 계기로 액션 배우 성룡과 시계 광고를 찍으며 연예계에 입문한 것이다. 배우로 활동을 시작하면서 배역을 제안 받았지만 마음은 허전했다고 했다. 제안 배역이 사실상 천편일률적이었기 때문이엇다. 이를테면 ‘고난에 빠진 순결한 여성’의 이미지를 드러내는 배역이었다.
◆ 외부 한계 무너뜨리며 액션 배우로
양자경은 이 지점에서 제2의 원칙 ‘한계 깨기’를 끄집어낸다. 한계는 자기 스스로 설정한 것과 외부 환경이 설정한 것이 있다고 전제했다. 이번에도 양자경은 자신의 경험에서 설명 방법을 찾았다. 비슷한 배역만 제안 받던 시절 양자경은 영화업계의 고정관념과 외부에서 비롯한 한계를 깨기로 결심했다. 그러면서 한계와 관련해서 내공 깊은 사고의 일면을 펼쳐보였다.
“자신이 설정한 한계는 존중의 경계를 제공하지만, 다른 사람이 설정한 한계는 돌파할 경계일 뿐입니다.”
양자경은 “홍콩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은 젊은 여성으로서, 저는 모든 면에서 한계에 봉착했다”며 “그래서 그동안 남성배우들의 전유물이었던 액션 배우 역할을 하게 해 달라고 영화감독들을 설득했다”고 밝혔다. 영국에서 발레리라를 꿈꿨던 동안 안무를 배웠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안무, 스턴트, 격파, 와이어 작업 등 남성들이 하는 것들을 할 준비가 돼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외부에서 규정한 한계를 뚫고나갈 긴장의 순간이 다가왔다. 하버드대 로스쿨 졸업생들의 가슴을 파고들었을 ‘양자경의 순간’을 따라가 보자.
양자경은 액션 배우로서 능력을 증명할 수 있는 기회를 접했다. 단 한번으로 끝날 수도 있을 증명의 순간을 살리지 못한다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그 영화는 1985년 개봉된 ‘예스 마담’ 시리즈물의 시작을 알린 ‘황가사저’였다.
◆ 예스 마담·네버 다이에서 강한 여성 매력 발산
1980년대에 청춘을 보낸 팬들이라면 기억할 것이다. 당시 영화팬들은 양자경이라는 새로운 배우의 등장에 크게 호응했다.
“알고 보니, 영화팬들은 액션 코미디 영화에서 여성 액션 배우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었던 것이지요. ‘예스 마담’은 그래서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이 될 수도 있던 기회를 살려 한계를 벗어던진 양자경은 새로운 질주에 나설 수 있었다. ‘황가사저’를 시작으로 ‘황가전사’ ‘중화전사’ ‘통천대도’ 등 ‘예스 마담’ 시리즈 4편의 주연을 맡았다.
1990년대 말 제임스 본드의 007영화 ‘네버 다이’에서 본드 걸 배역을 맡았을 때도 양자경은 한계를 돌파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아시아 여배우 최초로 본드 걸 배역을 소화했으며, 대역을 쓰지 않고 직접 액션 연기를 선보인 것이다. 그런 노력 덕분에 아시아 여배우로 성적 측면이 아닌, 강한 여성으로서 매력을 발산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계를 뛰어넘었던 자신의 과거를 설명하던 양자경은 이어 ‘사람’과 ‘협업’에 대해 이야기했다. 양자경은 인생은 ‘제로(o)섬 게임’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성공 스토리의 대부분은 경쟁보다는 협업에 대한 이야기인데, 이런 성공 스토리는 혼자였다면 이룰 수 없었을 것“이라며 ”영화업계의 지지자들은 가족·친구들과 더불어 제가 속한 공동체의 일부“라고 규정했다. 이어 ’저의 공동체는 시간을 초월해 있는데, 저는 저보다 앞에 온 사람들의 어깨 위에 서 있고, 저는 제 뒤에 온 사람들로부터 에너지와 영감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꺼낸 양자경의 제3의 원칙은 ‘사람 챙기기’이다. 양자경은 자신의 성공을 자신의 생각에 공감해준 사람들의 이해와 협력에서 찾았다. 더 깊고 현실적인 여성 캐릭터를 영화 영상에 올릴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생각을 지지해 준 이들의 공감 덕분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모두 주변과 인류에 소중한 무엇인가의 역할을 하자고 제안했다. 양자경은 “주변과 세상에 빛을 비추면 인류 전체에 힘을 싣는 것‘이라며 ”아침에 일터로 나가 일을 해야 하는 이보다 더 좋은 이유를 저는 알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 유엔 친선대사…여성 지위 향상·도움주는 세상 꿈꿔
양자경은 그동안 유엔 개발계획(UNDP) 글로벌 친선대사로 여성지위 향상 등에 관심을 보여 왔다. 여성과 소녀들에게 한계를 지우는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변화의 여정을 이어온 것이다.
“변화의 전제조건은 공감입니다. 다른 사람의 관점을 통해 보는 것은 우리의 동정심을 키우고, 이 동정심은 현장에서 입증 가능한 행동을 주도하게 합니다. 동정심은 우리 모두의 궁극적인 초능력입니다.”
자신에게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안긴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를 3가지 원칙이 구현된 ‘작은 영화’로 비유하는 겸손과 여유도 드러냈다. 이 지점에서 박수가 나왔다. 연설의 마무리는 대략 이랬다.
“(작은 영화는) 장르를 무시하고, 자유로운 기대감을 바탕으로 느슨하게 역할하고, 저예산 영화로 제작되고, 이를 세계적 현상으로 바꾸게 했습니다. 영화는 산업의 구조적 변화를 이끌어내고, 더 많은 독립적인 노력과 아시아의 대표성을 향해 문을 열었습니다. 여러분은 아마도 임박한 졸업식에 대해 느끼는 감정을 지녔을 것입니다. 제 입장에서 (그런 감정을) ‘알 수 없는 공허함을 향한 영광스러운 도약’이라고 할 수 있으며, 저는 이런 감정을 영화에서 느낍니다.”
그러면서 “오늘, 여러분은 (새로운 세상으로) 뛰어듭니다. 느슨하게 여유 있게 하세요. 사랑을 담아서요. 그리고 뛰어들고, 뛰어들고, 다시 뛰어드세요. 나는 여러분 모두가 서로 돕는 세상에서 살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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