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추진했으나 연금개혁 반대 시위로 연기
영국 국왕 찰스 3세가 오는 9월 프랑스 국빈 방문을 추진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찰스 3세는 원래 3월 프랑스에 갈 예정이었으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연금개혁 강행에 반대하는 시위가 격화하고 노조 총파업까지 겹치자 ‘무기한 연기’ 방침을 밝힌 바 있다.
11일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프랑스 매체 BFM TV는 최근 “찰스 3세가 9월 프랑스를 방문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버킹엄궁과 엘리제궁 둘 다 이 보도가 맞는지 틀리는지 확인해주진 않고 있다.
지난해 9월 즉위한 찰스 3세는 국왕이 된 뒤 첫 국빈 방문 대상국으로 프랑스를 택했다. 이는 영국과 프랑스의 오랜 우호 관계, 특히 어머니이자 전임 국왕인 고(故) 엘리자베스 2세가 생전에 프랑스를 각별하게 여긴 점 등을 감안한 결정이었다. 이에 영국 정부는 3월 말 찰스 3세가 먼저 3박4일 일정으로 프랑스를 방문하고 이어 독일로 이동해 2박3일을 보내는 내용의 여행 계획을 수립했다.
프랑스와 더불어 유럽연합(EU)을 이끄는 독일까지 방문 일정에 넣음으로써 영국이 EU 탈퇴, 즉 브렉시트 이후에도 여전히 유럽과의 관계를 중시한다는 점을 보여주려 했다는 분석이다.
그런데 프랑스 정부의 연금개혁 추진이 미처 예상치 못했던 파장을 낳았다. 마크롱 대통령은 근로자들의 정년을 62세에서 64세로 늘림으로써 더 오래 일하고 연금은 더 늦게 받도록 하는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연금개혁안을 마련해 추진했다. 이에 노조와 시민들이 반발하고 여기에 야권 정치인들까지 가세하며 프랑스 전역이 시위로 뒤덮였다. 노조가 총파업을 선언하면서 청소 인력도 철수해 세계 최대 관광지인 파리 시가지가 한때 나뒹구는 쓰레기로 몸살을 앓았다.
마크롱 대통령은 찰스 3세가 즉위 후 첫 국빈 방문 대상국으로 프랑스를 선택한 점을 높이 평가해 엘리제궁 대신 프랑스의 보물이자 세계문화유산인 베르사유궁에서 찰스 3세를 위해 성대한 국빈 만찬을 열기로 했다. 영국 정부와 조율해 찰스 3세 부부가 프랑스 남서부의 유명한 와인 산지인 보르도를 찾아 유기농 포도 재배 현장을 둘러보는 일정도 짰다.
하지만 노조 총파업으로 이런 국빈 방문 프로그램을 온전히 진행하기가 어렵게 됐다. 연금개혁에 반대하는 시민들은 “찰스 3세의 국빈 방문을 방해하겠다”고 선언하기까지 했다.
결국 마크롱 대통령이 외교적 결례를 무릅쓰고 찰스 3세한테 “프랑스 방문을 연기해달라”고 요청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버킹엄궁은 이를 받아들여 일단 프랑스는 건너뛰고 찰스 3세의 독일 국빈 방문만 예정대로 실행에 옮겼다. 프랑스로선 체면을 완전히 구긴 셈이 됐다.
당시 마크롱 대통령은 “여건이 되는 대로 연내에 찰스 3세의 프랑스 국빈 방문을 재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의 연금개혁안이 프랑스 헌법위원회 심사를 거쳐 최종 확정되면서 반대 시위는 잦아든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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