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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 가림막에 안전요원 없어… 시민 목숨 위협하는 도심 공사장 [연중기획-안전이 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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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6-18 09:34:55 수정 : 2023-06-18 11: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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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형 공사현장 안전관리 ‘구멍’

재개발·재건축 등으로 곳곳 공사판
각종 자재·공사차량, 인도·차도 점령
낙하물 사고 등 행인 피해 잇따라
보행자·주변 시설 안전문제에 소홀

불법 주정차·적치물 관리 안돼
적발 땐 과태료 그쳐… 실효성 없어
50억원 이하 소규모 공사현장은
관리요원 배치 규정 全無…대책 시급

#1. 지난 11일 서울 성북구의 한 공사 현장의 부실한 가림막이 가뜩이나 좁은 인도를 절반가량이나 차지해 시민들이 눈살을 찌푸렸다. 30대 최모씨는 “출퇴근 때마다 지나는 길인데 소음이나 먼지는 차치하더라도 안전요원도 없어 사람이 몰리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걱정부터 앞선다”고 말했다.

 

#2. 지난달 4일 오후 압사 참사가 발생했던 곳에서 멀지 않은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신축 건물 공사 현장. 콘크리트펌프카가 콘크리트를 공사 현장에 붓는 커다란 팔 모양의 높이 5∼6m 압송관(붐) 아래를 시민들이 아슬아슬 지나가고 있었다. 안전 설비는 물론 보행자의 통행을 유도하는 안전요원이 한 명도 없었다. 50대 김모씨는 “갑자기 머리 위로 압송관이 쓰러지거나 다른 낙하물이 발생할 수 있을 것 같아 겁난다”며 “이런 공사 현장에 안전요원 한 명 없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3. 지난 4월14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의 한 초등학교 앞 스쿨존(어린이보호구역)도 사정은 비슷했다. 방과 후 걸음을 재촉하던 학생들은 자재와 공사 차량이 점령한 인도와 차도를 피해 이리저리 위태롭게 걸어 다녔다. 소형 포크레인이 인도를 파헤치고, 대형 덤프트럭이 차도를 점유해 운전자와 보행자의 시야를 가린 공사 현장에는 어린이 등의 안전한 통행을 유도하는 공사관계자가 보이지 않았다.

아슬아슬 지난달 4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신축 건물 공사 현장에서 콘크리트펌프카가 콘크리트를 붓는 커다란 팔 모양의 높이 5∼6m 압송관(붐) 아래를 시민들이 아슬아슬 지나가고 있었다. 낙하물이 발생하면 압송관 아래를 걷는 보행자가 크게 다칠 수 있다. 김청중 기자

도시 한복판의 중소형 공사 현장에서 시민 목숨이 위협받고 있다. 현장의 안전 관리 실태가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주변을 지나는 시민의 생명을 겁박하는 도심의 재앙 예정지가 되고 있다.

 

◆인명 피해 쌓이는데 관련 통계 없어

지난 1월 부산 중구 남포동의 신축 건물 공사장에서는 타워 크레인에 실어 고층으로 옮기던 1.3t의 벽돌 더미가 15층 높이에서 50m 아래 바닥으로 쏟아지면서 밑에 있던 20대 노동자가 벽돌에 맞아 숨지고 지나가던 40대와 60대 시민 2명이 다치는 참극이 발생했다.

재개발·재건축 등으로 도심 곳곳에서 아파트, 빌라, 주택, 상가 건물 신축·철거 공사나 도로, 보도 공사가 계속되면서 이런 공사 현장 관련 사건·사고는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달 30일에는 서울 종로구 효제동의 한 철거 현장에서도 가림막이 인도 쪽으로 기울어 길을 걷던 시민이 다쳤다. 종로구청 관계자는 “건물 외벽이 떨어지면서 무게를 견디지 못한 가림막 아래쪽이 기울어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지난 3월29일 울산 남구 신정동의 한 아파트 신축공사 현장에선 37m 높이의 항타기(지반에 말뚝을 박는 장비)가 운전 중 넘어지면서 인근 4층짜리 원룸 건물 등 3개 동이 파손돼 임신부 등 5명이 다쳤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는 공사장 내 안전사고가 아닌 주변 피해에 대해선 따로 통계조차 파악하지 않는다. 시민이 피해를 보더라도 지자체의 관리상 결함을 입증할 수 없어 중대시민재해 판정을 받기가 어렵다.

이송규 한국안전전문가협회 회장(기술사)은 14일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공사장을 비롯한 작업 현장의 안전 문제가 근로자에게만 집중되어 있다 보니 보행자나 주변 시설 안전 문제는 상대적으로 소홀하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창경궁로의 공사장에서 가림막이 인도 쪽으로 기울어져 보행자 안전을 위협하자 관계자들이 보강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안전 위협하는 불법 주정차·적치물

작업 현장 인근에서 시민이 맞닥뜨릴 수 있는 큰 위협 중 하나는 보행 안전을 위협하는 불법 주정차와 적치물이다.

레미콘이나 덤프트럭, 지게차 같은 공사 관련 차량뿐 아니라 현장 인부 등 공사 관계자들이 타고 온 수십 대의 차량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현행법은 도로에서 공작물이나 물건, 그 밖의 시설을 신설·변경·제거하거나 그 밖의 목적으로 점용하려면 관할 관청의 허가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를 어기면 과태료가 부과되지만, 실효성은 거의 없다. 경기 지역 한 구청 관계자는 “대형 공사장에선 의례적으로 소음과 분진 관련 민원이 제기된다”면서도 “현장조사를 나가 불법 여부를 판단하는데, ‘과태료만 내면 된다’는 식의 반응이 다반사”라고 전했다. 서울의 한 자치구 관계자는 “몇 년 전 관내 소규모 공사장에서 용접 불꽃이 주변에 주차돼 있던 차량에 튀어 큰일이 날 뻔한 적도 있었다”며 “공사장이나 철거 현장 인근을 행인이나 주민이 민원을 넣지만 구청 입장에선 미리 단속하기가 어렵고 신고가 들어온 뒤에야 조처를 한다”고 설명했다.

◆시민안전 요원 배치 규정도 없어

중소형 공사 현장에서는 시민의 안전을 관리하는 현장 요원을 따로 배치하는 곳을 보기가 쉽지 않다.

산업안전보건법과 이 법 시행령에 따르면 사업주는 사업장에 안전관리자를 의무적으로 둬야 하지만 공사금액 50억원 이하인 소규모 공사 현장은 해당하지 않는다는 맹점이 있다. 그마저도 안전관리자가 꼭 현장 인근에서 행인 등의 안전을 지키는 개념이라기보다는 산업재해 예방이 목적이라 사실상 시민을 위한 관련 규정은 전무한 것이 21세기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전문가들은 안전 사무가 지자체 내 부서들에 혼재된 점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예컨대 가림막 설치 등을 위한 점용 허가는 건축 관련 부서에서, 안전 설비 등은 안전 담당 부서에서 맡는다. 공사 차량 등의 주정차 문제는 도로 관련 부서에서 담당하는 식이다. 서울의 또 다른 구청 관계자는 “레미콘 같은 공사 차량의 경우 관련 법규가 애매해 민원이 들어와도 구청이 할 수 있는 조치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이 회장은 “국내 공사·철거 현장은 가뜩이나 불법·저가 하도급이 만연해 인건비가 낮다”며 “안전 교육이나 인식 역시 전무하다시피 한 실정”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의무적으로 설치된 가림막도 먼지가 날리는 걸 막는 용도 외에 안전 측면에서 제 역할을 하는지 의문”이라며 “관련 제도부터 엄격히 따져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하성 우석대 교수(소방방재학)는 미국·일본의 사례를 언급하며 안전 교육이 특히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빨리빨리’ 문화가 만연한 현장에 대응해 세밀한 법·제도를 만들지 못한 정부의 책임이 크다”고 지적했다.


수원=오상도 기자, 김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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