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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짐” “더불어돈봉투당”… 도넘은 상대 진영 헐뜯기 [심층기획-‘비아냥 정치’로 물든 여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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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6-24 21:30:00 수정 : 2023-06-25 20:0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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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 정당 ‘재치 대결’이라도 벌이듯이
방송·현수막 등 통해 조롱·멸시 일삼아

“범죄 집단” “尹 뽑은 사람들 너무 싫어”
정당 지지자까지 저격 ‘유권자 모독’도

강성 팬덤만 만족하는 정치 횡행 우려
“정치권 스스로 자기 진영 갇히는 싸움”
한국 정치가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비아냥, 멸시, 조롱의 언어로 물들고 있다. 상대 정당의 이름을 변형해 ‘국민의짐’, ‘일본의힘’, ‘더불어 돈봉투당’, ‘더불어 비리 비호당’, ‘총체적 남국(총체적 난국+김남국) 민주당’ 등이라고 거리낌 없이 선전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마치 ‘재치 대결’이라도 되는 듯 양대 정당이 방송과 현수막 등을 통해 이 같은 비아냥을 앞다퉈 일삼고 있다. 이러한 행태는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진영논리를 더욱 부추길 뿐만 아니라 상대 정당을 지지하는 국민을 정치권이 주도적으로 배척하는 것이어서 각계 우려가 크다. 분열을 조장하면서 말로만 통합을 강조하는 것은 ‘국민 기만’이라는 비판이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뉴시스

◆국민 갈라치기 하는 정치인들

23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민의힘 송상헌 홍보본부장은 지난 18일 페이스북에서 더불어민주당을 “범죄집단”으로 규정했다. 송 본부장의 게시물에는 민주당 김한규 원내대변인의 발언을 소개한 방송 자료화면이 첨부됐다. 거기엔 지난 12일 무소속 윤관석, 이성만 의원에 대한 한동훈 법무부장관의 체포동의요청 이유 설명을 듣고 모욕감을 느낀 민주당 의원들이 많다는 김 대변인 발언이 담겼다.

송 본부장은 여기에 “범죄집단으로 매도하는 게 아니고 범죄집단이 맞으니 굳이 모욕감을 느끼지 마시길”이라고 적었다. 그러자 같은 당 박수영 의원은 송 본부장 글을 본인 계정에 공유하며 “국민의힘 홍보본부장의 예리함”이라고 동조했다.

앞서 판사 출신의 민주당 이수진 의원은 지난달 29일 한 유튜브 방송에서 “저는 요즘 윤석열 그분을 대통령으로 뽑은 사람들이 너무너무 싫어요. 너무 싫어 죽겠어요”라고 했다. “지금도 윤석열하고 사진 찍고 싶다고 그러고, 잘하고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피가 끓죠”라고도 했다.

 

상대 정당을 넘어 그 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를 저격하는 정치권 행태가 도를 넘고 있다. 유권자를 ‘우리 편 아니면 적’으로 보는 이분법적 시각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상대 정당을 범죄집단으로 매도하는 행위는 그 정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에 대한 모독이기도 하다.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채진원 교수는 “공동체를 이루기 위한 소통의 방식이 언어이고, 이는 인간이 동물과 구별되는 점”이라며 “정치가 공공을 위한 목적 대신 타인 비하와 무시, 조롱을 위해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폭력과 다름없다”고 질타했다.

인천대 이준한 교수(정치외교학)는 “외국에서도 정치인이 다른 정치인을 조롱하고 희화화하는 경우가 있지만 조크(농담)로 받아들이고 넘기는 정도인데, 우리는 아예 낙인을 찍으려 든다”고 지적했다. 이어 “서로 잘난 게 없고 잘하는 게 없으니 정치적 프레임을 걸어 유권자들한테 유포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팬덤만 흡족한 ‘팬클럽 정치’

정치권이 주도하는 비아냥과 조롱의 언어가 갖는 부작용은 단순히 정치의 품격을 훼손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우리 사회의 고질적 병폐인 진영논리를 더욱 강화해 결국 각 당의 강성 팬덤만이 만족하는 ‘팬클럽 정치’를 횡행하게 할 것이라는 우려가 정치권 안팎에서 나온다.

남평오 전 국무총리 민정실장은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대화하고 토론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 것이 인간의 태도인데, 그 태도를 정치권이 잃게 하는 시대”라며 “특히 정치가 어려움을 이용해 자기들의 권력 획득에만 매몰돼 있다 보니 말들이 더욱 거칠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남 전 실장은 이어 “정치권 스스로가 자기 진영에 갇히는 싸움을 하고 있다. ‘도대체 왜 정치를 해야 하는가’를 국민이 물었을 때 대답할 수 있는 정치인들이 사라지고 있는 듯하다”고 우려했다.

민주당 권지웅 전 비상대책위원은 “양당이 ‘상대는 없어져야 할 정당’이라고 규정하고 그러한 문화를 받아들이는 모습”이라며 “국정농단 사건 당시 국민의힘이 주장하던 것이 모두 잘못된 것은 아니었는데 문재인정부가 스스로를 ‘적폐청산 정부’라고 규정했다. 그 점에서 민주당도 사실 할 말이 없다”고 했다.

권 전 비대위원은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문제 중 대표적인 것이 높은 자살률, 저출생, 지역 격차, 노인 빈곤이다. 이게 다 격차와 관련된 것들”이라며 “정치가 그 격차를 줄이고 갈등을 완화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오히려 승자 독식에 익숙해져서 갈등을 더 양산하고, 우리 편은 돕고 남은 없애려 하는 것에 선봉이 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지난 대선 때 여야 후보의 득표율 차가 불과 0.73%포인트에 불과했던 점은 유권자들 간 진영갈등이 최고조에 달했음을 시사했다.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양 진영의 적대적 공생관계를 속히 끊어내는 것이 선진 정치로 가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채진원 교수는 “선의의 경쟁을 통해 국민 복리와 공공선에 도달하는 것이 민주주의 시스템”이라며 “좋은 쪽이 아닌 나쁜 쪽으로 경쟁하는 정치를 계속 이어간다면 국민들은 ‘타락 정치’, ‘저질 정치’의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배민영 기자 goodpoin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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