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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미래] 노동조합은 ‘이중구조’를 완화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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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6-23 00:00:51 수정 : 2023-06-23 00: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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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교섭 통해 근로조건 등 향상
미조직 시장간 격차는 더욱 확대
계약직 근로자도 포함 양극화 완화
노조법 등 관련법 개정 논의 필요

우리 사회에서 ‘노동’은 상품이다. 정확히는 일할 수 있는 능력인 ‘노동력’이 상품이다. 노동력은 투자된 시간과 노력 등에 따라 가치가 결정되며 노동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의해 가격이 매겨진다. 가격을 매개로 교환되는 점에서 타 상품과 같으나 다음 세 가지 점에서 구별된다. 첫째, 소유자와 상품이 분리되지 않는다. 매매되는 것은 노동력이지만 소유자를 통해 실현되므로 노동자가 판매되는 것으로 오인된다. 둘째, 사용상 제약이 많다. 근로시간 상한과 가격(임금)의 최저 수준이 법으로 정해지며, 한번 맺은 근로계약은 해지하기 어렵다. 마지막은 가변적 특징이다. 모든 상품의 사용가치는 사전에 정해지나 노동력 가치는 불확실하다. 보상이 공정하면 성과가 높아지고, 업무가 마음에 안 들면 낮아진다. 근로계약 시 성과의 사전 약정이 어려운 특성상 사용자는 노동자의 노력을 유인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활용하는데 이것이 인적자원관리다.

계약 시점에서 공급자(노동자)와 수요자(사용자)의 관계는 대등하나, 계약을 맺는 순간 ‘노동력’의 관리와 처분권은 사용자에게 위임된다. 업무와 장소를 지정하는 것, 성과를 관리하고 생산성을 유인하는 것 모두 사용자 책임이다. 근로자가 열심히 일하지 않는 것도, 노동생산성이 낮은 것도 궁극적 책임은 사용자 몫이다. 노동력 사용의 배타적 권한이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경영학

사업장 내 취업규칙과 근로계약은 상품 교환의 조건인 셈인데, 교섭력 차원에서 사용자의 힘은 근로자의 그것을 압도한다. 기업의 성과, 투자 전략 및 인수합병 등에 관련된 정보를 독점하며, 노동 과정과 조직을 설계하고 여러 계층의 채널을 통해 노동자를 통제한다. 계약상 지위는 대등하지만 힘의 배분은 불균등하다. 이러한 ‘기울기’를 조절하기 위한 헌법적 제도가 ‘노동 삼권’이며 그 핵심 수단이 노동조합이다.

노동조합은 자본주의 시장에서 상품 공급자에게 가격 등 공급 조건 담합을 허용해 준 유일한 제도다. 주유소 주인들이 휘발유 가격을 협의해 결정하면 공정거래법 위반이지만, 노동조합이 노동력 가격을 공동 결정해 구매자와 협상하고 근로조건을 흥정하는 행위는 헌법상 기본권이다. 사용자가 거래 조건을 거부하면 단체행동(파업)도 가능하다.

노동경제학의 대가 프리먼(R. Freeman)과 메도프(J. Medoff)는 역작 ‘노동조합은 무엇을 하는가’에서 노동조합의 이중적 역할에 주목한다. 하나는 독점 효과이며, 다른 하나는 발언 효과(voice effect)다. 독점체로서의 노동조합은 조직 부문 임금을 시장가격 이상으로 올려 노동력 수요를 줄이며, 그 결과 조직 노동시장의 잉여 노동력이 미조직 부문으로 흘러들어 공급을 증가시킨다. 그 영향으로 미조직 시장의 근로 조건과 임금 수준이 악화된다. 발언 기구로서의 노동조합은 단체교섭, 고충 처리 제도 등을 활용해 근로자들의 불평과 불만을 해소하고, 노동자를 노동 과정에 몰입하도록 유인한다. 이는 생산성 향상, 임금 인상, 이직률 감소를 결과하며 조직 내 성별 격차 등 불합리한 관행을 완화한다.

요컨대, 노동력 공급 조건을 결정하는 제도로서 노동조합은 조직된 내부시장의 근로조건을 향상하며 차별을 완화하지만, 무노조 시장의 희생을 초래한다. 노동조합은 이해관계를 조직해 실현하기 쉽지만, 미조직 개인들의 이해관계는 경쟁 속에서 와해되며, 그 결과 조직 부문과 미조직 부문 간 사회경제적 거리는 점점 벌어진다. 무엇보다 우리 노동조합은 사업 또는 사업장 단위로 조직되며 노동조합의 독점적 지위와 기업의 지불능력이 결합되어 이익의 강고한 카르텔을 형성한다. 이 때문에 조직 시장과 미조직 시장 간 격차가 더욱 확대된다.

일부에서 단체교섭 구조의 초기업화가 근로조건 양극화 완화의 해법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증적이지 않으며, 강제할 수단도 없다. 무엇보다 교섭 구조의 탈집중화는 1990년대 이후 지속된 세계적 경향이며, 2000년대 들어 독일 등 여러 나라에서도 산별 협약을 이탈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설령 초기업 협약이 체결된다 해도 현재의 분절과 격차는 해소하기 어렵다. 우리 시장 조건에서 격차 해소를 위한 효과적 수단은 협약임금과 근로조건이 사업장 내 소속 외 근로자와 계약직 근로자 등 모두에게 확장되도록 하는 것이며, 이것을 업종별 공급망에 패턴화하는 것이다. 노동조합법, 근로자참여법 등 관련 법 개정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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